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샤뜨 Aug 29. 2024

전자렌지 없는 삶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결혼하면서 처음 살림을 장만할 때는 대리점에서 다른 가전들과 함께 광파오븐도 사려고 했다. 그런데 싸이즈가 맞지 않아서 못 사고 10년째 없이 살고 있다. 


강한 의지를 갖고 의도한 일은 아니었다. 우리엄마도 전자제품을 싫어하셔서 세탁기도 없이 살고 계시는데 아마도 그 영향이 있기는 하지만 엄마처럼 극단적으로 문명의 이기를 멀리할 생각은 없다.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 전자레인지를 소유한 것은 자취할 때였는데 그때 아주 저렴한 빨간색 렌지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냉동만두를 사와서 렌지에 데웠는데 중간은 익고 테두리는 덜 익은 상태가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아 그 다음부터는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우리남편은 전자렌지 좀 사자고 가끔 조른다. 퇴근 후 집에 와서 뭘 좀 먹고 싶은데 다 요리해야하는 식재료뿐이라 간단하게 허기채울 것은 라면밖에 없단다. 게다가 과자나 빵 등 식품을 쟁여놓는다거나 반찬을 일주일치씩 만들어놓는 스타일도 아니니 최대한 간단하게 먹을 건 계란후라이나 라면뿐인거다. 


나도 몇 번 고민은 했었고 지금도 가끔 검색해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검색만 10년째인 이유가 몇 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과학적 근거없이 아무 이유없이 ‘그냥’ 몸에 해로울 것 같아서다. 여기저기 검색해보면 전자파 괜찮다. 해롭지 않다. 그렇게 따지면 먹을 거 하나도 없다지만, 보통 플라스틱으로 된 그릇에 데울 때가 많은데 “그냥” ‘상식적으로’ 플라스틱에 열을 가하면 좋지 않을 것 같다. 


두번째는 가뜩이나 요리도 못하는데 그나마도 인스턴트 일색일까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남편과 딸에게 매일 7첩반상으로 상다리 휘어지게는 못 차려줘도 몸에 해로운 음식은 주면 안 될 것 같은, 살림에 특히나 게으른 내가 편리하다는 이유로 매일 전자레인지에 툭 넣고 띡 눌러서 윙~하고 돌리다가 삐비빅 소리 나면 접시에 휙 담아서 내놓는 일상이 무섭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왠지 가전회사에 끌려서 소비하는 기분이랄까. 이건 내 성격탓이 큰 것도 같은데 우리엄마도 그랬고 다들 전자레인지 없이 억겁의 시간을 잘 살아오지 않았던가. 물론 세월이 변하고 또 변했지만 전자레인지가 결코 필수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이슨에서 무선청소기를 출시해 히트를 치고 새로운 형태의 가전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엘지와 삼성은 이 시류에 편승하여 각 가정의 유선청소기를 고물화시키며 무선청소기를 판매할 명분이 생긴 샘이다. 건조기도 있으면 편하다고 한다. 내가 안 써봐서 그럴 것이고 건조기가 있다면 7,8월이 빨리 지나가길 기도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지만 꼭 “굳이” 사야할 품목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자레인지가 없으니 생선도 후라이팬에 구워야하고, 즉석밥은 꿈도 못 꾸며, 냉동식품은 찜기가 귀찮아서 안 먹게 되고, 남은 반찬 데우기가 마땅치 않으니 매끼 새로 반찬을 만든다. 아주 비효율적이며, 이렇게 전자레인지 없는 삶이 가능한 것은 내가 집에 있는 주부이기 때문임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인스턴트로 끼니를 떼울 때도 많으니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동안은 조절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그리고 복직하게 되면 아마도 전자레인지를 사게 될 것 같다. 딸래미에게 아직은 후라이팬으로 요리를 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전자레인지 없는 삶이라는 글을 쓰면서, 쓸떼없이 거창하게 내가 주도하는 소비에 대해 생각해본다. 유행이라서, 이쁘니까, 이게 최신이라고 하니까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꼭 필요한 것에만지출하는, 아주 ‘주체적인(고집스런)’ 소비생활을 꿈꿔본다.  

작가의 이전글 40대 아줌마가 열심히 책 읽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