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공부를 하면서, 그리고 공무원이 된 후 자주 가는 유일한 카페가 있는데, 원래는 분명 수험생카페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현직자들의 글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아마도 공직생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왜 이렇게 다들 힘들어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개인적으로 생각해보았다.
우리나라는 입시로 인해 공부는 19살까지만 하면 된다고 주입시키며 죽어라 시키고 또 어영부영 달려왔는데, 어버버 대학에 들어와보니 현실은 진짜 공부를 시작해야하고 더 열심히 해야한다. 하지만 19살까지 강의 듣고 학원 다니고 문제 풀고 외우고 시험보는 '수동적'인 20년을 살면서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고, 그저 부모님의 추천이나 인터넷등으로 숙고없이 선택해버린 전공은 계륵과도 같은 존재가 되버린다. 그렇게 적성에 맞지도 않는 공부를 4년 정도 꾸역꾸역 하다보니 졸업은 닥쳤는데 먹고살 일이 막막해보이니 '공무원'이라는 공부의 연장선을 택하게 되는 것 같다. 늘 하던 일이였기 때문에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일이라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강의 듣고 문제 풀고 시험 보고...
영혼을 갈아넣어 합격을 하고 들어간 공직은 맨땅에 헤딩이라면 다행이고 거의 산을 옮기는 수준의 난도를 갖고 있다. 법령을 적절하게 적용하는 업무도 어렵지만, 그것보다도 공부에 집중하느라 다양한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사내 대인관계나 민원인과의 대화등에서 더욱 어려움이 배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주'무관이라는 것이 '주인 주'를 쓰지만 실제로 일하다보면 '두루 주'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만큼 자신의 업무는 물론 공직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희생을 강요하는 Generalised Specialist를 원한다.
이런 현실을 깨달을 때쯤 비로소 많은 MZ공무원들이 지난 날을 뒤돌아보며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물론 후회와 미련이 대부분이다. 분명 열심히 살았고 달려왔고 부모님이 그렇게 자랑하시는 공무원도 되었는데 뒤돌아보니 나는 공무원을 그다지 하고싶어하지 않았던 것 같고, 이 직업이 이런 노가다인지도 몰랐고, 이렇게 박봉인지 자취를 시작해보니 피눈물이 나고 년차 되면 편해진다는데 편해지기 전에 내 목숨이 불편해질 것 같다.
정작 이제꺽 내가 원해서 했던 일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때 30여년 가까이 살면서 처음 용기내어 면직을 한다. 나의 MZ동기도 입사 3주일만에 그만두었다. 그 동기가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 살지는 이 때도 정해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뿌연 미래만이 짐작될 뿐이다.
내가 마흔둘에 처음 입직해보니, 많은 나이에서 오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보다는 그래도 짬이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더 자주 들었다. 이직을 취미로 하며 직장생활도 10년 넘게 했었고, 알바는 수십개를 했고, 애도 낳고 살았더니 민원인들의 소리가 조금 더 잘 들렸고 대략적인 업무흐름도 조금은 더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의 돈을 내 주머니로 갖고 오는 일이 얼마나 치사하고 더러운 일인지, 월급은 일했다고 주는 것이 아니라 간과 쓸게를 빼놓은 값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왠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지옥에서 탈출하기위해 4일에 한 번씩 머리 감아가며 치열하게 공부하였는데, 이것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갓 대학졸업하거나 20대 후반, 30대초반인 사람들은 세상에 기회가 널렸다. 스스로가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없는 것이지, 찾아보면 기회는 정말 많다. 공무원이 다가 아닐뿐더러,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인생이 끝난 것도 아니다.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의 인생이 불쌍할 뿐이다.
진로고민은 공무원 공부 시작전에 치열하게 하자.
1. 이것 아니면 먹고살 일이 진짜 없는지,
2. 공직에 대한 사명감이 1%라도 있는지(어떤 직업이든 돈 벌려고 하지만, 하다보면 사명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3. 못 놀아본 나의 청춘에 후회와 미련이 없는지
4. 일하다가 죽을만큼 힘들고 짜증나도 다른 직업에 대한 미련은 없는지
5. 30년 되는 시간동안 즐겁게는 바라지도 않고 꾸역꾸역 버텨나갈 자신은 있는지 등등...
공무원은 나이제한이 없는 직업이다. 나이가 많으면 힘들겠지하는 걱정만 있는 직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 시작전에 다양한 경험을 해보길 권한다. 박스도 접어보고, 하루종일 서서 옷도 팔아보고, 철판도 닦아보면서 열심히 놀아라. 진짜 원없이 놀아라. 이제 다 놀았으니 공부해야겠다 생각들면 그 때 하면 된다. 놀다보면 어느 순간 재미없고 연애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걸 알게 된다. 돈도 원없이 써봐라. 돌려막기만 안 하고 빚만 안 지면 된다. (대신 그 기간이 1년 남짓이길 바란다)
공무원의 찐현실을 보고 그 때 후회하지말고, 공부 시작전에 할 거 다 해보고 이제 됐다 할 때 들어와서 피 터지게 1~2년 하면 된다. 그 때도 후회 된다면 이 역시 미련없이 그만 두면 된다. 다시 새 길 찾으면 된다.
부처님의 말씀 중에, 해와 달은 각자의 시간에 빛난다는 말이 있다. 꽃도 피는 계절이 다르듯이,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인스타 사진 한장으로 비교하며 우울해하지 말고 각자의 트랙에서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