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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J Oct 29. 2024

내가 김치를 담그는 이유

얼마 전부터는 집에서 김치를 담그지 않고 있다. 갑작스레 찾아온 왼손 관절염 통증으로 무리하게 손쓰기가 힘들기도 하지만, 이제는 좀 귀찮아졌다고 할까?


10년 전에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이민올 때 제일 먼저 했던 걱정이 김치였다. 친정엄마는 캐나다에 김치냉장고는 있냐고 걱정하시고, 시어머니께서는 직접 담가 먹을 수 있도록 갓 빻은 태양초 고춧가루를 챙겨주셨다.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김치를 직접 만들어 본 적이 없다. 그건, 60년 이상은 주부생활을 하신 어머니 세대나 가능한 엄청난 내공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일로 생각했다.

친정엄마는 새우젓만 넣은 아주 심플한 김장을 하시는 편이다. 오히려 맛이 깔끔하고 좋다. 겨울이 오면 항상 담그시는 동치미도 이것저것 많이 들어가는 게 없는 무의 시원한 맛에만 집중하는 원초적인 동치미다. 살얼음 동동 떠있는 동치미 한 그릇을 받아 들 때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시어머니께서는 뭐든 재료가 풍부하시다. 한번 김장을 하면 양도 양이지만, 속에 들어가는 재료만 수십 가지에다, 철마다 배추김치, 무김치, 갓김치, 파김치 등을 만드신다. 그리고는 우리가 한 번씩 시댁에 갈 때마다 엄청난 양의 김치들을 싸주신다. 요리도 잘 못하는 신혼 때는 둘이서 먹기엔 너무 많아 버거운 파김치, 갓김치등을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 가끔씩 꺼내 먹다가 나중엔 너무 시어버려 군내가 나서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버리기 일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

그랬던 내가 캐나다로 이민 갈 때 김치를 직접 담가 보려고, 배추 씻어 물 빼는 커다란 채반과 김치통, 김치 치댈 때 쓰는 제일 큰 스테인리스 다라이 등을 챙겨 왔다. 캐나다 서스캐처원주의 리자이나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했을 때, 그곳엔 그나마 작은 한국마트가 하나 있어서 배추를 한 박스 사 올 수 있었다. 작은 포기배추이긴 하지만 31 포기나 되었는데, 멋모르고 덜컥 사 와버려 무모한 도전인 줄 알면서도 어쨌든 김치를 담가야 했다.

고춧가루는 한국에서 가져온 어머니표 국산 고춧가루, 액젓은 이곳에서 흔한 피시소스로 하고, 천일염, 새우젓 등은 한국마트에서 사 왔다. 며칠간 인터넷을 눈 빠지게 뒤져보며 김장하는 법을 익힌 후 소금물 농도를 체크해 가며 배추를 절여보았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오래 걸리는 배추 절이는 시간에 몇 번이나 배추를 뒤집었다 눌러봤다 하며 싱크대 앞을 떠나질 못했다.

배추 속 양념은 인터넷에서 하라는 대로 다 만들긴 했는데 배추가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중간에 양념이 모자라면 어찌할지 걱정도 되었다. 다 절여진 배추를 깨끗이 씻어 채반에 올려놓고 물을 빼기 시작할 때 즈음에야 이제 겨우 절반은 해냈구나 싶었다. 한국에서 엄마를 도와 김장을 할 때처럼, 배추에 소를 넣고 버무려서 동그랗게 말아 차곡차곡 김치통에 담았다. 그 순간 나 스스로 얼마나 뿌듯하던지.. 처음으로 캐나다에서 해본 김장김치는 다행히도 대성공이었다. 문제는 김치냉장고는 커녕 세컨 냉장고도 없었던 시절에 김치를 이렇게 많이 담가버려 냉장고의 절반이 김치통으로 채워졌던 웃픈 기억이 있다.

그 후로는 너무 힘이 들어서 한꺼번에 많은 양을 하지는 않고, 필요할 때마다 배추 한 두 포기씩만 사서 맛김치 형식으로 담가 먹었다. 김치를 담가 먹은 지 어연 10년째,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긴 후에는 배추 한 박스로 김치 담그기는 늘 해오는 오래된 의식과도 같았다. 한국에 있을 때처럼 꼭 가을에만 김장을 해야 한다는 법도 없고, 배추김치가 먹고 싶을 때, 배추 가격이 좋고 상태가 좋을 때, 그리고 내 에너지가 충분할 때면 으레 배추 한 박스를 사다가 남편 도움을 받아 김치를 담그고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그런 날은 그렇게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만든 김치는 도저히 아까워서 김치찌개 같은 건 못해먹고, 꼭 생김치 반찬으로만 먹게 되고, 김치를 푹 익혀야 하는 김치찜이나 김치찌개, 볶음밥 등을 할 때는 코스코에서 산 12불짜리 캐나다산 김치 한통을 사서 사용하곤 했다.


그러다 손이 아파 김치 담그는 걸 멈췄을 즈음 늘 우리 집 냉장고 한편에는 코스코 종갓집 김치가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게도 의식 같은 김치 담그기가 멈추니, 한식에 꼭 김치가 없어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고, 대신 사이드 디쉬로 당근라페를 만들어 먹고, 김치 같은 짭짤한 반찬이 필요한 식사에서는 오이무침이나 파절임 등으로도 충분히 한 끼 식사가 가능했다. 꼭 김치 반찬이 필요한 경우엔 마트에서 산 종갓집 김치를 꺼내어 접시에 담아서 먹는데, 또 그게 그리 나쁘지 않은 거다. 리자이나 보다 훨씬 큰 도시인 캘거리에 살다 보니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다양하고 맛있는 김치를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다. 그러니 그동안 왜 그렇게 김치에 집착하며 아등바등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나, 일본의 우메보시등도 전통적으로 가정에서 직접 담가 먹었고 지금도 담가 먹는 가정이 있기도 하지만, 이제는 우리나라 김치처럼 상점에서 많이들 구입해서 먹고 있는 추세이지 않나.

한국에서는 김장하는 날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김치를 담그고, 김장이 끝나면 김치와 함께 먹을 수육을 삶아 먹는 것이 하나의 문화였다. 집집마다 손맛과 재료가 다르니 김치 맛도 다르고, 서로 나눠먹는 정이 있었다. 집에서 좋은 재료를 써서 직접 만드는 김치는 당연히 건강하고, 파는 것과 비교가 안되게 맛있다.

나는 이곳 캐나다에서 여럿이 어울려 김장을 할 수 있는 가족도 없으며, 나 혼자만의 의식을 치르듯 묵묵히 김치를 담근다. 늘 한식만 먹는 것도 아니어서 김치가 매 끼니마다 올라와야 하는 필수 반찬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김치 담그는 행위를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기엔 우습다.

10년간 열심히 남편과 아이들에게 맛있는 김치를 먹여주기 위해 노력하다가, 이제 슬슬 갱년기에 접어 들어서면서 음식 만드는 게 조금은 귀찮아진 내게 그럴싸하고도 합리적인 이유가 필요했던 걸까?

간단히 김치를 사 먹는 것에 합의를 본 요즘은 그저 편하고 좋다. 그래도 매번 사 먹을 때마다 내가 담근 김치 맛이 생각나긴 한다.


글쓰기 멤버들과 김치라는 주제로 어제 아침 7시에 모여 함께 한 시간 정도 글을 썼다. 각자 본인이 쓴 글을 읽어 주는데, 멤버 하나가 갑자기 한국에 있는 친정 엄마 생각이 났던지 글을 읽다 말고 울컥하고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결국 주변 다른 멤버들도 함께 눈물이 터져 버렸다. 처음 이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전혀 몰랐다. 김치에 관한 글을 쓸 때 엄마를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 김치는 그렇다. 그냥 한국이고, 친정 엄마다.


그래서 그동안 나도 모르게 내 몸이 부서져라 김치를 담근 건가? 나 이제 안 담가 먹을래 하면서 이런 이유 저런 이유 다 대가며 이거 봐, 꼭 담가 먹을 필요 없잖아? 하면서도 맘 한편이 싸했던 걸까?


손이 조금씩 나아지면 나도 모르게 또 의식을 치르듯 배추 한 박스를 사러 가겠지. 부엌 바닥에 고춧가루 묻혀가며 뻐근한 허리를 겨우 피고 양념 입힌 배춧잎 하나를 뚝 따다 또르르 말아 막내 입에 넣어주면 "어머니, 너무 맛있어요!" 하는 소리를 듣게 되겠지. 차곡차곡 쌓인 김치통을 쓰다듬으며, 이번에도 맛있게 익어라 주문을 외우게 되겠지..


그래.. 나는 어차피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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