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울고 이불 밖으로 몸을 끄집어냈다. 침상안정이 최우선이라고는 하지만 무너지는 마음을 안고 누워 있으니 온몸이 이불속으로 빨려 드는 느낌이었다. 굵은 바늘이 꽂혀 있는 팔을 힘겹게 움직이며 병실 밖으로 나갔다. 코로나가 심할 때라서 가족 이외에는 일체의 면회도 금지되어 있었다. 병원의 복도는 쓸쓸하고 고요했다. 한 바퀴 병원을 돌고 난 후에 침대에 올라와서 몸을 뉘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불빛이 깜빡깜빡 위태로웠다. 온갖 불안한 생각이 머리는 휘감고 있었고 한 곳을 응시하면서도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 생각이 뒤엉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끝은, 항상 나였다. 내 잘못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언니 전화가 왔다.
"뭐 해? 있잖아 있잖아 민아가 꿈을 꿨는데 아무래도 태몽 같아. 이모한테 꼭 알려주래!"
"무슨 태몽인데?"
"학원 버스에서 잠깐 졸았는데 슈퍼마켓에서 분홍색에 맛있게 생긴 큼직한 복숭아를 사서,
엄마랑 나랑 기다리고 있는데 줬데. 그러면서 이모 갖다 주라고 그랬데, 이거 분명히 태몽이야!
너 딸인가 봐!"
언니는 아들은 둔 내가 딸을 가졌을 거라는 확신을 하며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복숭아가 예쁘고 큼직하고 먹음직스러웠다는 조카의 설명에 나도 귀가 솔깃해지기는 했다. 언니는 그날 오후에 있었던 사건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대답을 하는 내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던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있었다.
"왜 그래? 왜 이렇게 조용히 이야기해 어디 아파? 입덧이 심해?"
"나 병원이야. 양수가 새고 있데. 조기양막파열인 거 같다고 해서 입원했어 엄마랑 아직 통화 안 했지?"
"어머! 왜! 왜 그런 거지? 난 너무 신나서 알려 주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이유도 뭐 딱히 큰 원인도 알 수가 없데 기다리는 방법 밖에 없다네."
먹고 싶은 건 없는지 필요한 건 없는지 병원에 오겠다고 했지만 면회도 금지되어 있어서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이모 태몽 꿈꿔줘서 너무 고맙다고 조카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민아같이 예쁜 딸아이가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머릿속에서 생각을 지우고 싶었다.
둘째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을지 아무것도 확실한 건 없던 상황이었다. 이런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린다는 거 자체가 불안하고 괜히 섣불리 앞서 가고 싶지 않았다. 말 한마디 생각 한 줄기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금요일 저녁은 그렇게 지나갔다. 조마조마한 주말이 지나가고 월요일에 진료를 보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이동했다. 간호사들이 주말 내내 수시로 큰 통증이나 이상 징후는 없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양수가 세는 느낌도 큰 출혈도 없었지만 진료를 하기 전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담당의사는 첫 번째 진료 순서로 당겨 주었다. 진료를 하는 내내 의사는 신중하고 꼼꼼하게 살피는 모습이었다.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됐다. 주말 동안 억지로라도 마음의 정리도 됐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지 큰 한숨으로 내 마음을 다독이고 있었다.
"음...... 주말에 큰 이벤트 없이 잘 지나간 거 같아서 출근하고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양수가 세는 현상이 멈췄습니다. 많이 위험하셨는데요. 그래서 저도 마음의 준비하라고 까지 말씀드렸는데요.
멈췄어요. 양수가 세는지 확인하는 테스트 용지로 확인했는데 괜찮습니다."
"아 그럼, 괜찮은 거예요? 아기도 잘 놀고 있어요?"
"네, 이런 게 바로 '생명의 신비'인 거 같아요. 다른 말로는 설명이 안 돼요."
실감 나지 않았다. 진료를 보기 전까지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울지 않아야지라고 생각하며 두 손을 꼭 잡고 들어왔던 나였다. 그런데 아기가 괜찮다고 한다. 활발하게 잘 놀고 꿀렁꿀렁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담당의사는 나보다 더 기뻐하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얀 얼굴에 누가 봐도 선하게 생긴 그 담당의사는 본인의 일인 양 기분이 너무 좋다며 소녀처럼 두 손을 맞잡으며 '생명의 신비'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고 있었다.
"다행이에요. 너무 다행이에요. 괜찮다니 다행이에요."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괜찮다니, 괜찮으면 다행이었다. 그걸로 됐다. 둘째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면서도 며칠 동안 별별 생각 다 했던 일이 너무 미안했다. 서운한 네 마음 이제 다 알았다고 예뻐할 거라고 고맙다고 그렇게 인사를 해주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첫째가 생각이 났다. 첫째 아이가 있어서 퇴원해도 되겠냐고 물으니 아직 그래도 완벽하게 마음 놓을 수는 없으니 절대 안정을 취하고 많이 걷지도 말고 그냥 누워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퇴원을 했다.
그 후에도 며칠 간격으로 외래 진료를 봤다. 하지만 조금씩 양수가 세는 반응이 다시 보여서 항생제를 먹고 안정을 취하고 한 달간은 매우 조심해서 생활을 했다. 덜컥하는 마음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며 아이를 믿고 일상적인 하루하루를 살아내려 노력했다.
그렇게 시간은 꾸역꾸역 지나가고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한 달 정도 후에는 완벽하게 양수가 세지 않는다는 결과를 듣고 병원을 나섰다. 사실은 그 한 달에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 속에 없다. 초조했던 내 마음만 기억 날뿐이다.
이제 안심하셔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며 의사는 나지막이 이야기했었다.
"아기가 엄마를 닮은 거 같아요."
둘째가 딸이라는 말인가? 그제야 입원하고 정신없이 언니의 전화를 받았을 때 조카가 이야기해 준 '분홍색 복숭아'태몽이 생각났다. 조카가 큰 역할을 해 줬다. 아픈 이모 힘내라고 그 절망적인 순간에 태몽을 꿔 줬으니, 둘째 아이가 사촌언니의 큰 덕을 본 것이다.
선한 인상의 그 의사는 초음파 진료를 할 때마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아기를 보며 이야기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신아 산모님과 같은 케이스를 많이 봤지만 이렇게 극적으로 양막이 아물거나 막혀서 호전되신 경우는 처음 봤어요. 양수의 양도 꽤 많이 흘렀었는데 정말 사람의 능력으로 안 되는 영역의 일이 있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요. 아기가 한번 더 기회를 줬나 봐요. 잘 품고 있다고 만나자고요. 아직은 아니야 엄마 내가 좀 더 버티다가 나갈게 하고 손발로 꽉 막았나 봐요"
난 이 이벤트 이후로 둘째 아이에 대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원망도 짜증도 부정적인 감정도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이 작고 소중한 아이가 나한테 큰 기회를 한번 더 준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도 모르고 불평만 하고 있던 엄마한테 강력 펀지 한방 제대로 날린 거다. 이제 이 아이를 더 정성스럽게 품고 사랑해 줄 것이다.
늦봄의 날씨는 퇴원하고 나니 초여름 날씨로 바뀌어 있었고 분홍색 복숭아를 보면 설레는 계절이 됐다. 맛있는 복숭아가 나오는 계절이다. '분홍색 복숭아'를 먹으며 선물 같이 내게 온 둘째 아이를 기다릴 것이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날까지 잘 품고 있다가 만날 것이다. 내게 온 두 번째 기회를 이 두 손에 꼭 담고 있다 아이를 만날 것이다.
아이가 커서 내가 어떻게 태어났냐고 물어본다면 '큰 역경과 고난을 딛고 그렇게 내게 온 소중한 아이란다.'라고 무용담처럼 이야기해 줘야겠다.
아이가 손바닥과 발바닥으로 양막을 막았을 거 같은 모습이 그려져 슬그머니 웃음이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