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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 Dec 18. 2023

'우두둑' 디스크가 터졌습니다.

다시 시작된 육아는 첫째 아이를 키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겨웠다. 코로나로 집에서 옴쌀 달싹 못하는 상황에서 다시 갓난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편 퇴근이 늦은 날이었다. 하루종일 아이 둘을 챙기느라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둘째 딸아이의 목욕을 시키고 화장실 바닥에 놓여 있는 아기 욕조를 들다가 허리에 무리가 갔다. 수유 중이었기 때문에 급한 대로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며칠이 지나니 다행히 크게 아프지 않았다.


며칠 뒤, 나아졌다고 생각한 허리로 목욕을 시키고 일어나는 순간 '헉' 소리와 함께 허리에 통증을 느꼈다.


"헉! 으악! 악! 허리 나갔어!"

"왜 그래, 앉아 있다가 일어나면서 아기 들어 올리지 말라고 했잖아,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으아악! 어떡해 허리 나간 거 같아."


이로써 절망이 시작됐다. 이 한순간의 무지한 움직임이 나에게 어떤 큰 절망으로 다가 올진 예상도 하지 못했었다.




첫째 아이가 어렸을 때도 척추 4-5번 사이에 디스크가 터져서 오른쪽 다리의 마비증세까지 겪고 수술을 해야 하나  6개월 정도 많이 고생했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사이드에 놓여있는 모니터를 보고 앉아 있는 자세가 틀어져 있어서 허리통증으로 치료를 계속 받아 왔었다.   


처음 허리를 다쳤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세지기 시작했다. 일단 둘째 아이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세로 주저앉을 수도 없었다. 어마어마한 통증이었는데 그래도 아이를 떨어뜨리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혼자였으면 바로 쓰러져서 실신했을 거 같은 정도의 통증이었다. 간신히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침대에 쓰러졌다.


씻긴 뒤 바닥에 내려놓은 아이는 왜 갑자기 안아주지 않느냐며 팔다리를 버둥버둥 움직이고 울기 시작했다.

다시 아이를 안을 수가 없었다. 누워있는데도 온몸을 잠깐이라도 움직이면 비명을 지를듯한 통증이 허리와 다리 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응급실에 가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어서 둘째 아이를 재우고 병원에 가려고 했으나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일단 코로나가 심한 상황이었기에 응급실에 가거나 병원에 입원을 하려면 코로나 검사와 함께 음성이 확인이 돼야 입원할 수 있었다. 남편은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고 아이 둘을 두고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순간 극심한 통증과 함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두려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100일도 되지 않은 아기가 있는데 아기를 계속 안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허리를 안 쓰고 누워서 치료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허리를 다치고 괜찮아졌다고 생각한 지 1달도 안 돼서 어떻게 또 다칠 수가 있는지 자책하고 있었다.


그날 밤, 단 1분도 자지 못하고 꼬박 새벽 5시까지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갑자기 숨을 쉬기도 앉아 있기도 힘들어졌다. 가빠지는 숨을 쉬려고 노력했지만 누워 있는 몸위로 누군가 짓누르는듯한 느낌과 통증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고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데 아기를 안는 것도, 큰아이를 챙기는 것도, 허리를 굽히는 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쌔근쌔근 곤히 자고 있는 60일 된 아이가 누워 있는 침대 옆에서 하지 말아야 할 생각까지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난 단 한 번도 내 삶을 쉬이 여긴 적이 없었다. 감당할 수 없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입이 떡 벌어지는 극심한 통증과 함께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두면 내가 나 자신을 제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는 콜센터를 찾아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다면 내가 정말 큰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다.


'개인 정보 보호법에 의거하여 모든 통화 기록은 녹음되며......' 콜센터의 안내멘트가 흘러나왔다. 망설이다가 전화를 끊고 말았다. 섣불리 통화를 하고 기록을 남기면 정말 나 자신이 무너질 것 같았다. 가빠진 숨을 몰아쉬며 최대한 잠을 청해보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밤을 새우고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에 남편이 괜찮냐고 물으며 다가왔다.


"너무 아파...... 꼼짝도 못 하겠어.

아기 모유도 주고 성연이 아침도 챙겨줘야 하는데 어떻게  해, 어떡하냐고......"


아...... 정말 어떡하나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익숙지 않은 삶이었다. 오롯이 나 혼자 둘을 잘 케어할 수 있다고 씩씩했던 나였는데 아이 보는 것이 두려워졌다. 아이를 는 것이 무서워졌다.


둘째 아이가 100일도 되기 전이었다.





상단사진 출처 : unsplash





상단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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