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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 Jan 03. 2024

나 혼자서는 아이 둘 못 키워......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하던 남편이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금부터 써 내려가는 이야기는 내 머릿속에는 전혀 없는 그날의 일들이다.


평소에는 출근하는 남편에게 혹은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잘하지 않는다. 아주 급한 일이 있다면 전화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기곤 하는데, 그날의 나는 평소와는 달랐다고 한다. 큰 아이를 등교시키고 출근하는 남편에게 1분에 한 번꼴로 전화를 하면서 횡설 수설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남편이 조금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큰 아이에 대해서 물어보고 둘째 아이에 대해서도 물어보는데 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않고 알 수 없는 이야기만 늘어놨다고 했다.


남편이 화제를 돌리려고 물어봤다고 한다.


"오늘 장모님 오시지? 언제쯤 오시려나. 당신 힘든데 빨리 오시면 좋겠다. 버스 타고 오시는 거야?"

"엄마? 엄마 오시겠지. 오늘 오신다고 했어. 아빠랑 같이 차 타고 오시겠지."

"...... 장인어른?"

"어, 엄마가 아빠랑 같이 차 타고 오지 누구랑 같이 와."

"어...... 장인어른이랑 같이 오신다고 했어?"

"어 왜 그래?"

"아니야, 알았어 잠깐 끊어봐."


남편은 많이 놀랐다고 했다.


왜냐하면, 친정아버지는 2년 전에 돌아가셨다.


난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남편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다행히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계시는 동안 아이의 일상을 보기 위해 설치했던 홈 cctv가 있었고, 전화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티브이를 켜지도 눕지도 않고 정자세로 앉아서 창가만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도 계속 전화를 했다고 한다. 지금도 전혀 내 기억 속에 없는 일들이다. 전화를 했다는 것도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힘든 순간이어서 나 스스로 기억을 통째로 지워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정엄마가 도착하셔서 둘째 아이를 챙기고 집 청소를 도와주셨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돌아왔다.


"어? 왜 왔어? 뭐 두고 갔어?"

"아니, 나가자 나가서 나랑 점심 먹고 오자, 당신 좋아하는 레스토랑 예약해 놨어.

장모님, 저희 좀 나가서 점심 먹고 올게요 죄송해요 금방 다녀올게요."


엄마는 흔쾌히 다녀오라고 말씀하셨다.


"어 다녀와 바람도 쐬고 천천히 다녀와 걱정하지 말고, 지연이 내가 보고 있을게"


남편이 빨리 나가자고 재촉하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 사실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지 않았다. 밖을 나서는 일도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하는 것도 모든 게 무기력했었다.


"알았어 알았어 지연이 분유만 좀 먹이고 트림시키고 가야지."


급하게 둘째 아이를 세워 안고 등을 두들기는 나를 보며 남편은 울고 있었다. 내가 기억나는 것은 둘째 아이를 안고 있는 나를 보며 남편은 차오르는 눈물을 참고 빨개진 코를 감추려 연신 훌쩍거렸던 장면이다. 이상했지만 더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날의 기억은 이 단편적인 장면이 다였다.


지금도 이 장면과 남편의 얼굴만 어렴풋이 기억이 날 뿐이다.


둘째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남편과 둘이 나가서 점심도 먹고 하교하는 첫째 아이도 데리고 왔다. 봄 날씨가 완연한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좋아하는 화이트소스의 파스타를 먹으면서 나는 눈물을 먹는지 파스타를 먹는지 모를 정도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냥 이유없이 계속 눈물이 흘렀다. 레스토랑의 break time이라서 남편과 나 둘만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누가 보면 시련당한 비련의 여주인공 마냥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파스타 접시를 반도 비우지 못했다.


남편은 그런 나에게 왜 우는 거냐 뭐가 힘든 거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날씨가 좋은 데 가고 싶은 곳은 없는지 하고 싶은 일은 없는지...... 그리고 보고 싶은 사람은 없는지 묻기만 했었다.


아마도 돌아가신 아빠를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안타까워서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그냥 바라보기만 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남편은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나 혼자서는 아이 둘 다 못 키워, 알지? 그러니깐 어디 가면 안 돼.

나 혼자 못한다고 그러니깐 아무튼 당신 없으면 안 된다고 알았지?"

"무슨 소리야 앞뒤 없이 가긴 어딜 가"

"그러니깐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나 혼자 못한다고......"


남편은 그날 왜 그렇게 돌아왔냐고 물은 내 물음에 '그냥' 이라고만 답했다. 그리고는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든 뒤에 다음 날 아침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출근을 했다. 그날 이후로 남편은 많이 달라졌다. 예전과는 달리 전화도 자주 하고 지난날의 일들에 대해서 많이 물어봤다.


허리 통증과 함께 내 기분이 많이 힘들어 보이는 날에는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며 억지로라도 나가서 커피 한잔이라도 마시고 올 수 있게 등 떠밀듯이 내보내곤 했다. 다행히 그 이후로 중요한 사건을 통째로 기억 못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6~7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남편이 지나가듯이 그때 자신이 왜 출근하다가 돌아왔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세세한 상황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던 상태였다. 그 날 이후로 남편은 내가 말하는 허리 통증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했고,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심적으로 내가 아주 많이 불안한 상태였다는 것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 날이 지속되자 남편은 정신건강의학과를 가보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하지만 나 자신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음의 병이 생겼으니 약을 먹고 치료하면 되는 거라고 몸이 아픈 거랑 똑같은 상황이라고 말은 했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내가 이겨 보겠다며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크게 좋아지지는 않았다.


내 상태는 많이 불안정했었다. 남편은 친정엄마나 본인이 없을 때 내가 심각한 상황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들에게 당부를 했다고 한다.


엄마를 잘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때까지도 난 아들이 받는 상처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 자신이 너무 힘에 겨워서 아파하고 있는 아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들의 불안감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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