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아 Jan 18. 2024

나를 위로해 준 따뜻한 말들

다시 눈이 많이 내리는 12월이 됐다. 작년 이맘때쯤 둘째 아이를 낳고 펑펑 내리는 눈을 조리원에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지금은 두 아이와 함께 돌잔치를 하기 위해서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어떤 모임이든 인원 제한이 걸려 있어서 양가 가족들만 모여서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을 했다. 둘째 아이 예쁜 원피스도 입히고 통통한 발에 하얀색 스타킹을 신고 구두까지 신기니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엄마들은 화려하고 비즈가 박힌 높은 구두를 신고 한껏 멋을 내고 있었지만 나는 원피스에 당당히! 워킹화 운동화를 신었다. 이렇게 운동화를 신고 돌잔치를 하는 게 가당키나 했었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 스스로 혼자 대견해하고 있었다.


'이 고난과 역경을 딛고 돌잔치를 하다니 너무 대단해'


혼자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중간에 아이가 울고 떼를 써서 좀 힘들기는 했지만 식사시간 동안 재우고 난 뒤 컨디션이 좋아져서 돌잡이도 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돌잔치 사회자가 감사한 분들께 인사를 드리라고 해서 아픈 엄마를 많이 도와준 큰 아이와 남편 그리고 양가 가족분들께도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돌잔치를 마무리하는데 갑자기 생각난 한 사람이 있었다. 너무 아픈 시기에 다녔던 한의원의 간호사님이었다.


디스크가 터진 걸 알았지만 수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의원에서 간단한 치료만 받았던 시기였다. 부부가 운영하는 동네의 조그만 한의원이었는데 진료는 남편분이 그리고 접수를 받고 간단한 치료를 도와주는 업무는 사모님(배우자분)이 하는 한의원이었다.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돼서 약을 먹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는 상황을 그 간호사분도 모두 알고 계셨던 상황이었다. 항상 웃는 얼굴로 다정하게 맞이해 주시던 사모님이 어느 날 내 표정이 너무 안 좋은 걸 보시고는 말씀하셨다.


"괜찮아요?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보여요."

"괜찮아요...... 흑......"


물리치료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고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그때 누구라도 괜찮냐고 물어보기만 해도 눈물이 왈칵 나오던 시기였다. 사모님은 전혀 놀라지도 않으셨다. 그저 조용히 내 팔짱을 끼고는 대기실의 안마 의자가 있는 곳을 안내해 주셨다. 그리고는 따뜻한 둥굴레차 한 잔을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있잖아요. 내 이야기 들어봐요. 나는 아들이 둘 있어요. 남편은 병원 하느라 젊은 시절에는 많이 바빴었고 나는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이었어요. 퇴근하고 오면서 친정에 맡겼던 아들 둘을 차에 태우고 한강 다리를 건너서 우리 집으로 향하는 일상의 연속이었어요. 너무 힘들고 지치고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도 않아서 아이들 돌봐주는 도우미 이모님도 없이 내가 모두 케어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유독 너무 힘든 거예요. 한강 다리를 지나고 있는 차 핸들을 틀어 버려서 이 강물에 빠져서 죽고 싶었었요. 이 모든 상황을 끝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냥 다 끝내면 힘들지 않겠지 그리고 더 이상 괴롭지 않을 거 같았었요. 그런 순간이 여러 번 있었던 거 같아요. 그 정도로 많이 지치고 힘들었어요.

 그렇게 그렇게 힘들게 시간은 다 지나고 아이들은 고등학생이 됐거든요? 그런데 지금 그 시절이 너무 그리워요.  힘들었어도 이상하게 그리워요. 어떻게든 시간은 다 지나가니깐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그렇게 버티면 돼요. 알았죠? 힘낼 필요도 없어요 그냥 살면 돼요. 엄마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잘 자라요. 그 시기에는 당연한 거예요. 힘든 게 당연해요."


"감사해요. 그런 이야기 말씀하기 쉽지 않을실텐데 해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너무 주책맞게 아무 때나 울고 이런 사람이 아닌데...... 어디 한 군데 고장 난 사람같이 계속 이러네요."


"아기 낳는 게 얼마나 힘든데요. 낳기만 낳나. 낳아서 키우는 건 몇 배는 더 힘들어요. 그러니깐 너무 힘들면 가끔씩 내가 해준 이야기 생각하면서 고비 넘기면서 살면 돼요. 발마사지기도 하고 천천히 가요. 너무 답답하면 진료 안 봐도 되니깐 그냥 와서 발마사지하고 뜨거운 차 한찬 마시고 가도 돼요."


"너무 감사합니다."


아이 돌잔치를 하고 양가 가족들이 모두 가고 난 뒤 아일랜드 식탁 위에 놓여 있는 한방 크림을 보고는 그 간호사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남편에게 잠깐만 나갔다 온다고 말한 뒤 차를 몰고 그 한의원으로 갔다. 한의원 앞에 마트에서 큼직하고 맛있게 생긴 딸기도 두 박스나 샀다. 다행히 주말에도 진료를 하는 한의원이라서 그때 따뜻한 말씀을 해주신 그 간호사분이 접수를 받고 계셨다.


"어머나! 신아 환자분 아니세요? 다시 또 아프신 거예요?"

"아니요. 많이 좋아졌어요. 여전히 매일 아프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아졌어요. 여기 오는데 운전도 하고 왔는걸요. 다름이 아니라 이거 드리려고요."

"진료도 안 보는데 어쩐 일로 오셨어요?"

"그냥 감사해서요. 그때 울고 불고 정신없이 그냥 가고 다른 병원으로 옮겼는데 그때 해주신 이야기가 내내 힘이 됐어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때 금방이라도 어떻게 무너질거 같은 얼굴이어서 내가 지금 이야기 하는 거지만 내내 조마조마 했었어요.많이 좋아진거 같아서 나도 너무 반갑네요. 감사히 잘 먹을게요. 그리고 우리 다시는 보지 말아요 알았죠?"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감사의 눈물이 흘렀다. 지난 1년간 아파했던 순간순간 항상 손 내밀어 주는 가족들, 그리고 주변의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힘든 시간을 잘 견뎌온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갔던 일상의 소중함들이 이제야 하나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픈 시간들이 힘들기는 했지만 아프지 않으면 몰랐을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음을 이제야 난 깨닫고 있다.


이제는 아픈 시간들로만 기억하지 않고 이 시간들을 교훈 삼아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겠다는 희망적인 생각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여전히 난 매일 아프지만 그래도 이제는 매일 울지 않는다.  



상단사진 : unsplash







이전 08화 발로 키워도 괜찮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