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집에서 그리 가깝지 않다. 어른 걸음으로는 10분 남짓 그리고 아이들 걸음으로는 15~20분 정도 소요된다. 날씨에 따라 가깝게도 멀게도 느껴질 수 있는 그런 거리에 초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6교시까지 마치고 집에 온 날이면 친구들과 시끌벅적 떠들면서 뛰고 걷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하굣길을 완성하고 왔을 것이다. 그리고 간식도 하나 먹고 왔겠다. 집에 와서 간단하게 씻고 나오면 아이의 눈이 풀리고 있는 기운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내 못 본 척하고 "과일 좀 줄까? 간식 더 안 먹어도 되겠어?"라고 물어보면서 다음 스케줄이 있음을 암묵적으로 주지시킨다.
알고 있다.
아이도 많이 피곤할 것이다.
하교하고 오면 책을 보고 싶어 하고 책을 보면 스르르 잠이 드는 코스를 알고 있기에 잠이 들 때쯤에 다음 숙제가 기다리고 있음을 부담스럽지 않게 밀어 넣어야 한다.
오늘도 이런 생각으로 어느 타이밍에 맞춰서 다음 숙제를 알려줘야 하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라?'
벌써 잠이 들었다.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피구를 하면서 하얗게 불태웠다고 하더니만 씻고 나오니 피곤했던 거 같다. 일단 오늘 학원에 가기 전에 해야 할 숙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데 다행히 오늘은 월요일이고 어제 일요일 오후 늦게까지 아이를 달달 볶은 덕분에 남아 있는 숙제는 없는 거 같다.
그렇다면 좀 더 재워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모르는 척 선풍기를 발밑으로 향하게 해서 틀어 주었다. 가까이서 보니 진짜 많이 컸다. 이제는 곰같이 커서 자고 있는 모습만 봐도 '와 진짜 옆집 총각이 다 됐네'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태어나서 얼마 되지도 않은 신생아를 품고 집으로 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조금 있으면 중학교에 가겠다며 어설프게 큰 교복을 맞춰 입고 오는 날이 올 것이다.
몇 일 전 아이를 꾸중하는 일이 있었고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서로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아이는 항상 잠들기 전에 자신의 잠자리를 봐달라고 물도 한잔 주고 이불도 덮어주고 불도 꺼주는 그 일련의 과정들을 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날의 분위기는 짐짓 심상치 않았기에 남편과 나는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안 좋은 감정을 가진 채로 잠자리에 드는 건 정말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라던데 엄마인 나도 아직 철이 덜 들었나 싶다.
"나 잠자리 봐줘."
"그냥 자! 네가 무슨 애야? 다 컸는데 무슨 잠자리를 봐달라고 난리야 그냥 자!"
"으앙~~ 나 아직 애야~ 내가 뭘 다 컸어 나 아직 애야!"
아이는 큰 소리를 내면서 서럽게 울었다. 순간 너무 황당하고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웃겨서 피식 웃음이 나올 뻔했는데 오늘까지는 그래도 이 삼엄하고 험악한 분위기를 유지해야 했다.
"빨리 자!"
불을 끄고 문을 쾅! 닫고 나와버렸다.
아 정말 나이 마흔이 넘어서 아들이 내민 손을 이렇게 유치하게 뿌리치는 엄마의 모습이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는 소파에 드러누워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오늘은 중대한 사안으로 혼난 만큼 나 역시도 아이에게 금방 친절해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직은 정말 단순한 아이구나 하는 생각에 슬며시 미안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일을 생각하는 와중에 20~30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학원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들여다 보고 잠도 좀 깨고 가야 하니 이제 아이를 깨울 시간이다.
엄청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일어나야 하니 한 걸음씩 다가간다.
그리고 조용히 귀속말로 이야기한다.
"그만 자야 할 거 같은데, 잠도 깰 겸 수박 먹을래?"
아이가 찌뿌둥한 몸을 기지개를 켜면서 일으킨다.
"씨 없는 쪽으로 줘"
그래 알았다. 이 놈아. 씨 없는 수박으로 대령하겠다.
아...... 상전이 따로 없다. 그래도 다행이다. 아직은 먹을 걸로 통하는 시기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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