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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 Jul 06. 2024

친절하지 않은 카페에 갑니다.

분주하게 보낸 한 주가 끝나가는 토요일 오후시간이면 나는 아이와 함께 학생들이 북적이는 학원가로 향한다. 

퇴근한 남편이 둘째 아이를 보기로 한건 나만 동의한, 기정 사실화 되어 있는 상태이고 남편은 언제부턴가 퇴근과 동시에 둘째 아이를 전담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가끔씩 이제는 "내가 학원 데려다주라고 물어보지도 않네?"라고 볼멘소리를 하기는 하지만 토요일 아침부터 종종거리며 두 아이의 육아를 한 나에게 오롯이 혼자 지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어 하는 남편의 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배려는 남편에게 늦은 점심을 차려주고는 둘째 아이의 미디어 노출을 허락하는 것이다. 


"나랑 오전 내내 있으면서 책 읽고 그림 그리고 놀았고 밥도 잘 먹었고 낮잠도 잤어. 그러니깐 당신이랑 있을 때는 만화 틀어줘! 내가 일부러 당신 오면 만화 보여주고 당신 쉬게 하려고 미디어 노출 아껴놨었어! 잘했지?"

"그래, 고~오~맙~다!"

"나 다녀올게, 지연이는 티브이 보여주고 자기도 좀 쉬고 있어!"

"그래, 가라. 가버려!"

"아하하하하 안녕"


아이와 차를 타고 학원으로 향하면서 우리만의 루틴이 있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최대한 편안한 마음으로 15분가량의 조용한 시간을 즐기는 순간이다. 멀지 않은 학원에 도착하면 아이는 씩씩하게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인사와 함께 내리면 비로소 내 자유시간이 시작된다. 


서둘러 주차를 하고는 매주 가는 그 '친절하지 않은 카페'에 간다. 작년 봄부터였던 거 같다. 아이의 수업시간이 2시간 남짓 되는 관계로 집에 다녀오기도 애매해서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는 했었다. 책을 읽기도 했고 노트북을 가지고 가서 글을 쓰기도 했으며 이어폰을 끼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도 했다. 근처에는 스타벅스나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많이 있기는 했었지만 이상하게 언제부턴가 그냥 동네 사장님이 운영하는 듯한 작고 조용한 카페에 가고 싶어졌다. 


처음 그 카페 들어간 건 정말 우연이었다. 학원 뒷골목에 주차를 하고는 카페를 찾다 보니 빌딩 뒤쪽에 자리 잡은 작은 카페가 보였다. 커피 맛도 나쁘지 않았고 의자도 비교적 편안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남자 사장님이 무관심해 보였다는 사실이었다. 


언제부턴가 가게 주인이 베푸는 친절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조용히 둘러보고 원하는 물건이 없으면 그냥 조용히 나올 수도 있지만, 사장님이 혹은 직원들이 "도와 드릴까요?"라고 물어보는 순간 빈손으로 나가게 되는 상황이 꽤나 죄송 했던거 같다. 원하는 물건이 없거나 마음에 썩 들지 않는 다면 "감사합니다. 다음에 다시 올게요."라고 하면서 나갈 정도의 융통성 있는 인생을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한구석에서 쿡쿡 튀어 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사장님도 직원들도 모두 열심히 일하는 모습인걸 알고 있기에 미안한 마음도 컸던거 같다. 카페는 물건을 사서 나와야 하는 상점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랜시간 머물기에는 조금 많이 불편한 곳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 들어오게 된 이 카페는 정말 안성맞춤이었다. 노트북을 들고 와서 동영상의 강의를 보거나 숙제를 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었고, 가끔씩 나와 비슷하거나 혹은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와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었다. 그때마다 사장님은 아주 무관심한 얼굴로 주문을 받고 음료를 가져다주고 영혼 없는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를 외치곤 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커피 맛이 좋았다. 무심한 듯 내리는 커피지만 이상하게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매장 보다도 훨씬 더 맛있었다. 그런데 오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이야기를 들었다. 


"카페가 다음 주에 문을 닫아요. 지금 가지고 계신 쿠폰이나 포인트 있으면 모두 소진하셔야 해요."

"네? 카페가 아예 없어지는 건가요? 다른 가게가 들어오는 거예요?"

"네"

"네 알겠습니다."


갑자기 너무 아쉬운 마음에 가슴 한쪽이 시큰해졌다. 이 카페가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작년 봄부터 오기 시작해서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까지 사계절을 카페의 창을 통해서 느끼고 있었다. 기분이 너무 좋은 날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좋은 기분을 느끼고 혼자 히죽히죽 웃기도 했다. 마음이 많이 힘든 날에는 멍하니 영화나 동영상을 보면서 일부러 에너지를 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그리고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은 떠나간 사람들을 그리워하면서 글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이 모든 일들을 다시 이곳에서 재연할 일은 없어진 것이다. 


사방에 널린 건 카페고 또 찾으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괜찮은 카페를 찾을 수는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이렇게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는 고객에서 부담 주지 않고 과한 친절을 베풀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편하게 있다가 갈 수 있도록 해주는 카페와 사장님은 다시 만나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절인연'이라는 단어를 카페에 붙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 카페와 나는 '시절인연'이었나 보다. 


아쉽지만 뭐...... 남아있는 커피쿠폰을 모조리 탈탈 털어서 쓰고 맛있는 스콘도 하나 먹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정말 마지막으로 카페에 있다가 나오면서 사장님께 나지막하게 인사를 전했다. 


"1년 넘게 이 카페에, 매주 토요일에 이 시간에 왔었어요. 없어진다니 많이 아쉽네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신아 고객님, 알고 있어요. 감사했어요. 안녕히 계세요."


흠칫 놀랐다. 이 사장님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 인사 또한 매우 담백하고 쿨했다. 


그래서 더 감사했다. 친근한 관심표현도 없었고, 오래 카페에 머무르고 있어도 눈치 하나 주지 않고 편하게 있게 해 줬던 그 무관심이 오히려 나에게는 더없이 친절한 카페였다. 


아쉽지만 다른 카페를 찾아봐야겠다. 


그런데 그 카페, 겨울에 함박눈 내릴 때 창가에서 보는 바깥 풍경이 너무 멋져서 명당이었는데 그건 좀 많이 아쉬울 거 같다.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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