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임신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30대 초반에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던 첫째와는 달리 어마어마한 입덧을 하면서도 챙겨야 하는 첫째가 있었고, 코로나로 나와 아이는 24시간 꼭 붙어있었던 상황이었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입덧을 심하게 하면서도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을 무렵까지도 일을 했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 지긋지긋한 입덧 기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아이의 삼시 세 끼를 챙겨야 했고 집안일과 공부도 봐주느라 편히 누워서 쉴 수도 없었다. 입덧은 점점 심해지고 과일 몇 종류와 차가운 우유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넘기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몸무게는 6~7kg이 순식간에 빠지고 음식을 하다가도 화장실로 달려가서 변기를 붙잡고 씨름하는 일상이었다.
아이는 이런 나를 보며 엄마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닌지 금방이라고 눈물이 터질 거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내 모습이 괜찮은 꼴이 아니었다.
"엄마 괜찮아? 아파? 왜 그래?"
"아니야 괜찮아...... 우웩~ 화장실 문 닫아."
몸무게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까지 내려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이는 5월이 다 돼서야 처음으로 초등학교 문턱을 넘게 되었고 아이를 보내고는 소파에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드는 일상이었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한숨 돌리고 있는데 갑자기 '퍽!' 하는 느낌과 함께 아래쪽으로 무언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뭐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화장실에 가서 상황을 살펴봤는데 무언가 주르륵 더 많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고 직감했다. 양수가 흐른다. 이거 큰일이다.
바로 다른 학원에 가야 하는 아이의 가방을 학원 선생님께 전달해 드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운전을 하는 도중에 느낌이 왔다. 더 심각한 수준으로 양수가 흐르고 있었다. 운전을 하고 가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은 그때 들었다. 택시나 구급차를 불렀어야 했는데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운전을 하고 나온 거지 반쯤 정신 나간 상태로 운전을 해서 주차를 하고 허공을 달리는 듯 정신없는 상태로 병원에 들어갔다.
"응급이에요. 16주 밖에 안 됐는데 양수가 흐르는 거 같아요."
울음이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이야기했다. 극한 상황에 처하면 신기할 정도로 나는 침착하거나 냉정해지는데 그런 평소의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는지 모르겠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부여잡고 있었다. 병원 접수처 직원은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접수하고 기다리세요."
'양수가 센다고 위험한 상황이라고!' 소리 치며 미친 듯이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최대한 이성을 붙잡았다. 남편한테 전화를 했다. 지금 일단 병원에 왔는데 상황이 심상치 않아서 와봐야 할거 같다고 했다. 침착하게 말하는 나와는 달리 이 사람 나보다 더 당황한 듯했다.
"알았어, 일단 끊어 출발할게 조심하고 있어."
일단 접수를 하고 담당의사의 방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순서를 당겨 주었고 남편이 도착하기 전에 진료를 보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내진을 하러 가던 순간 '왈칵'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아...... 가망이 없겠다.'
그 순간 모든 것을 체념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절망감이 순식간에 나를 집어삼켰다. 움직이지 못하고 얼음처럼 굳어버린 나를 간호사가 진정시키고 부축해서 이동을 도와주었다.
진찰을 하고 내 앞에 앉은 의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양수가 세고 있어요. 조기양막파열 같아요. 쉽게 말하면 양막이 구멍이 났거나 찢어져서 양수가 세고 있는 거예요. 아직은 아이가 뱃속에서 놀 정도의 양수는 있지만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16주면 아이가 너무 작고 주수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리면서 지켜보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더 위험한 건 양막파열로 산모가 감염이 되면 패혈증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빨리 입원하고 항생제 맞으셔야 해요. 일단 입원 수속부터 하세요."
일단 걷지도 말고 크게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며 휠체어를 준비해 주었고 휠체어에 앉은 채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이 사색이 돼서 뛰어 왔다.
"양수가 센다고, 마음에 준비하래. 16주라서 할 수 있는 게 없데...... 어떡해......"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눈물이 흘렀다.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부터 난 한 번도 아이의 존재에 대해서 축복하거나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시 시작해야 할 육아는 내게 큰 부담과 두려움이었고, 몇 년 만에 찾아온 평화로운 일상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 안달 난 사람처럼 매사 뾰족하게 굴고 있었다. 그렇게 선물처럼 나에게 온 아이를 나는 외면하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천하의 나쁜 엄마였다.
"어떡해, 내가 너무 축복해주지 않고 싫은 내색 비쳐서 이렇게 됐나 봐. 내가 너무 나빴어...... 내가 너무 했었어 한 번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어. 내가 그랬었다고......"
미친 사람처럼 병원 복도에서 휠체어를 타고 그렇게 하염없이 울었다. 한 번도 어루만져 보지 못한 둘째를 안아보지도 못할까 봐. 두 손으로 배를 부여잡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상황이 심각했던지 담당의사가 병원장님께 연락을 했고 병원장님께 다시 한번 진료를 봤다. 그리고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일단 상당한 양의 양수가 흘렀고 이런 경우 대부분 예우가 좋지 않습니다. 힘드시겠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산모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입원하시고 항생제 맞으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겠습니다."
담당의사와 같은 진단이었다. 남편은 입원수속을 마치고 오면서 1인실로 잡았다고 했다. 다인실로 가면 아기 낳은 산모들이랑 같이 있으면서 심적으로 불편할 수도 있을 거 같으니 1인실에서 일단 쉬고 있으라고 했다. 친정엄마가 급히 오셔서 첫째 아이를 돌봐주셨고 남편은 첫째 아이를 잠깐 보고 오겠다며 집으로 갔다.
오롯이 나 혼자 남은 시간이었다. 뱃 속의 아이는 아직도 본인의 존재를 잊지 말라는 듯 전과 똑같은 강도의 입덧으로 내가 아직은 임산부 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해주었다. 아이를 낳고 8년 동안 키우면서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이 그렇게 소중했는데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고요함은 지난날 나의 잘못에 대한 형벌 같은 느낌이었다. 끝도 없는 절망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지켜봐야 하는 나의 무기력함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그때 조금만 덜 무리했더라면 내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을 일어나지 않았을까 수없이 생각하고 지난날의 나의 과오에 대해서 스스로를 벌주고 있었다.
간호사들은 수시로 들어오면서 혈압을 체크하고 과다출혈은 없는지 출혈 양을 체크하고 있었다. 잘 보고 있다가 이상이 있으면 바로 벨을 눌러야 한다고 신신당부하고 있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네 그럴게요"라고 답하고 돌아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장난감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목놓아 엉엉 울었다. 아무도 없었고 그냥 우는 일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에게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 하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실체도 없는 그 누군가를 원망하며 그렇게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