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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장 Aug 16. 2024

고통의 양면성

때론 괴롭지만 완전해지는 기회이자 인생 그 자체

가끔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왜 내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 난 늘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할까. 그럴 때 우리는 가족이나 친구 또는 지인이나 자신의 종교 지도자에게 하소연을 한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힘내", "어쩌겠니, 이겨내야지", "시간이 지나가면 나아질꺼야", "너만 힘든거 아니야"가 있다. 어떤 위로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기대했던 대답을 들어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가장 싫은 위로의 말은 이거다.

"시간이 지나면 이것도 하나의 추억(또는 사건)으로 기억될거야"

이는 더 반발심을 불러 일으킨다. 당장 지금 힘들어 죽겠다는 사람 앞에서 미래에 괜찮아질 거라는 막연하고 무책임한 위로는 너무나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위 사람이 힘들다고 하소연할 때 나중에 괜찮아질 거라는 말은 특히나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힘들다는 사람 앞에서 가장 좋은 대답은 그냥 "힘들구나" 한마디다. 어차피 본인 인생의 문제는 본인이 해결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잠깐 이런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 앞에서 더 할 말이 무엇이 있으랴.


이 글에서 전제하고 싶은 한가지가 있다. 비극적인 사고로 가족을 잃은 그런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이들이 아닌 일반적인 인생의 수많은 고비와 문제들을 다룬다는 점이다. 전쟁과 천재지변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은 그 무엇으로도 위로와 해결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물론 종교가 있다면 평생 관리하며 다룰 수는 있더라도 말이다.


사실 모든 고통이나 갈등의 깊은 감정은 자기만이 가장 잘 알고, 문제의 해결책 또한 본인이 가장 잘 안다. 따라서 누구에게 의지하거나 누군가가 나의 고통을 분담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다. 왜 그럴까. 단순하다. 남은 남이고, 나는 나이기 때문이다. 남은 나의 문제에 대해 공감은 가능하지만 결국 내 상황속의 나는 나만이 알고 내가 풀어가야 할 숙제이다.


정호승 시인은 한 강연에서 고통이 있어야 생명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으며,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공감한다. 인생 자체가 고통인데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은 마치 인생을 부정하려는 마음과 다름아니다. 어쩔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불안이나 걱정이 앞선다면 당장 그 일을 진척시키는 게 도움이 된다. 담당자에게 연락을 하고, 관련 자료를 모으고, 일을 진행시키자. 일단 시작하면 불안은 반이 날라간다. 불안, 걱정, 근심, 고통 모두 회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한정된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찾아서 하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절망만 한다면 나아지지 않는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 시에서는 저절로 붉어질 리 없고, 혼자 둥글어질 리 없는 대추를 통해 인생과 세상 이치에 대한 통찰을 발견한다. 대추 한 알은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가 담겨져 있고 수많은 밤과 땡볕을 견딘 결정체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수많은 모진 날들 속에서 모욕과 수치도 겪었고, 나름의 산전수전 공중전을 모두 거친 인생 아닌가. 멀쩡한 보이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내면에는 누구에게도 말 못할 사연과 슬픔이 스며있다. 우리는 그런 존재다. 대추와 똑같이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인고의 세월을 거쳐 성숙해진 존재다.


위기는 동시에 기회라는 말을 참 많이 듣는다. 이는 결과론적으로 위기 상황에서 잘 대처하여 좋은 성과가 나왔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위기를 맞아 더 큰 수렁에 빠지거나 실패했을 경우 위기는 기회라는 말은 모순이며 때론 가학적이기까지 하다. 위기는 위기일 뿐이다. 위기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나중에 멋있게 정의할 뿐이다. 마치 성공한 사람이 나중에 인터뷰할 때 위기의 순간들이 모두 성공의 요인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종합해보면 고통이 꼭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고통을 통해 배우고 성숙해지며 나아진 적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통을 겪을수록 그 속성을 알아가고 고진감래의 맛을 알고, 고난을 견딜 힘도 생기게 된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고통은 고통이다. 죽을 때까지 계속될 고통의 굴레 속에서 우리 모두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참고하는 건 물론이고 철학과 종교를 섭렵하며 더 나은 대응과 태도를 통해 헤쳐나갈 뿐이다.


고통은 고통이다. 하지만 고통을 이해하고 다루려는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역으로 기회삼고 할 일을 찾아 더 나은 인생을 꾸려갈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고통속에서도 더 나은 삶과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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