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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당 Jul 09. 2021

멋진 크리스마스 카드

회색빛 하늘에서 함박눈이라도 펑펑 내렸으면 참 좋겠는데, 우산이 없어도 좋을만한 겨울 가랑비가 드문드문 내리고 있다.


한해의 

저물녘

눈이 올듯한

잿빛 하늘에서

겨울비 몇 방울 떨어집니다.

내 마음 간간히

적시는 그리움처럼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너무나 조용하게 살며시 다가왔다. 어제는 우리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산타 할아버지로 분장하여 코로나로 부분 등교한 1, 2학년 교실로 찾아다니며 선물을 전해주었다는 미담을 교직원 SNS에서 읽었다. 더구나 오늘 아침에도 등교한 3~6학년과 전 교직원, 우리 지킴이실에도 과자 봉지 선물을 두고 가셨다. 코로나 방역으로 일주일에 하루, 이틀만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멋진 성탄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평소에도 아침마다 오솔길에서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하이 파이브를 해주며 힘을 실어주는 교장 선생님은 진실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분 같다. 왜냐하면 실제의 행동으로 그 마음이 나타나 보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리더십이란 마음과 말이 아닌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이 초등학교에 오게 되어 나보다 연하이지만, 배울 점이 많은 분을 만난 것은 퍽 다행으로 생각된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로 내일부터 3일간 연휴에 들어가기에 나의 마음과 아침의 공기가 한결 가볍게 느껴진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등교하는 3 ~ 6학년생들을 오랜만에 만나니 참으로 반가운 마음이다.    

'잘 있었니! 굿모닝, 헬로! 어서 와라, 오랜만이다'를 길을 건너오는 제각각의 아이들에게 외치면서 즐겁게 교통지도를 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누가 "할아버지" 하면서 부른다. 

돌아다보니 가끔 인사를 나누는 3학년 여학생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웃으면서 예쁜 편지 봉투를 내게 내밀고 있었다. 

"어, 이게 뭐니?"

"제가 편지를 썼어요." 

"아~ 그래, 내게 편지를 쓴 거야?"

"예~"
"그래~, 나중에 교통지도 마치고 읽어보도록 할게. 고마워!"

      

교통지도를 마친 후 지킴이실에 들어와 편지를 꺼내어 보았다. 봉투도 참 예쁘고 여러 색의 칼러 펜으로 적은 글씨도 다채로워서 눈에 금방 들어오는 크리스마스 카드이다. 또한 종이로 직접 만든 산타크루즈 조각과 더불어 작은 초콜릿까지 동봉해 선물로 들어 있었다. 

이장희 '편지'의 노랫말처럼 '한밤을 꼬박 새워 편지를 썼어요.'와 같이 카드에 정성이 듬뿍 묻어났다. 정말 나에게 올 수 없는 값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던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정성을 기울인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마음은 착잡해지기 시작했다.

점심때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내 앞을 지나가면서 그 아이가 인사를 한다.

"할아버지 많이 드세요."

"아~ 그래~ 00이구나, 멋진 카드 잘 보았다. 너도 식사 많이 하여라."  

식사 시간이라 크게 고마움을 표하지 못했지만, 이제 이름을 알게 되었으니 살짝 자주 불러 주는 것으로 편지에 대한 고마움으로 나의 성의를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이 학교에서 지킴이 생활을 한지도 벌써 3년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가 오늘을 포함하여 모두 3 통이었다. 스스로도 아이들에게 인기가 없었던 걸로 가름하게 된다. 

예전에 받은 두 편지는 또래의 남학생이 연필로 편지지에 적은 무미건조한 형식이었다. 하지만 편지를 받는 그 순간은 참 행복하였다. 손에 연필을 쥐고 힘 있게 마음으로 쓴 편지가 요즘 컴퓨터에 찍힌 프린트에 비하면 얼마나 정겨움이 담긴 것인지 우리는 담 박에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집에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생일이면 편지를 적어주었다. 물론 그 이후로 아이들도 내 생일에 편지를 적어 보내주는 게 관례가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삐뚤삐뚤한 손 편지에 별다른 내용이 없어도 감동을 먹곤 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 갈수록 컴퓨터에 프린트한 듯한 벼락치기 편지로 바뀌어 갔으며, 또한 편지 내용보다 함께 동봉하는 지폐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감동이 차츰 줄어져 갔었다. 

    

정말 오랜만에 정성 가득한 어여쁜 손 편지를 받으니, 잔잔한 내 가슴에 감동의 파도가 몰려와 하루 종일 기쁜 마음이 지속된다. 

그러나 모든 선물이나 편지는 당연히 응답이 있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이기에 더욱 마음의 부담이 온다. 답장을 해주어야겠지만 뚜렷하게 적을 내용도 생각나지 않으며, 이에 상응한 선물을 주기도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하교 길 교통지도를 하면서 간간이 운동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데, 멀리 운동장에서 교문으로 걸어오는 00 이가 보인다.       

"00이구나! 오늘 늦게 마쳤구나?"

" 예~." 

"오늘 너무 예쁜 크리스마스 카드를 선물 받아서 사진도 찍어두고, SNS로 내 친구들에게 자랑도 많이 했단다!" 

"예~."

"그리고, 답장을 해 주려고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정말 어렵구나~!"

"아마도 최고의 답장은 할아버지가 더욱 열심히 교통지도를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드는데 어떻겠니?" 

"예, 알겠습니다."

"그래, 앞으로 네 편지의 내용처럼 더욱 열심히 교통지도를 하도록 할게. 오늘 편지 정말 고맙고 오래도록 잘 갖고 있을게!"

"예~ 할아버지도 크리스마스 건강하게 잘 보내세요!"     

"그래 고마워! 조심해서 가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거라!" 

     

최고의 답장을 해주지 못하고 결국 가장 쉬운 말로 해결하였었지만, 나에게 오늘의 감동과 여운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도 00 이 와의 약속을 잘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삭막한 코로나19의 겨울에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손 편지 한 통이 내게 이렇게 큰 행복감을 가져다 졸지 몰랐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일 테니, 나도 누군가에게 예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야겠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한밤을 꼬박 새워 정성 들인 편지를 적어서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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