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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 비극 전집> 1, 2, 3

로마인이 쓴 그리스 비극

by 우 재


한동안 책이 읽히지 않았다. 책이 읽히지 않는 동안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며 글 보다 이미지 놀음을 하며 리듬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마침내 그림 놀이에 조금 배가 찼는지 다시 책이 손에 잡힌다. 작년 말에 장장 두 달에 걸쳐 물 건너온 한국 책들을 받아놓고도 책이 읽히지 않아 책꽂이에 잘 모셔 두고 눈인사만 나누고 있었는데 다행히 거의 일년만에 책이 다시 잡혔다. 그렇게 잡은 책이 <세네카 비극 전집 1~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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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폭 보다 케이스 폭을 줄여서 디자인 하여 책을 꺼내기 편하도록 한 것이 좋았다.








워낙 그리스 신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리스 비극을 읽다보면 가슴이 뻐근해지면서 마음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이상한 감정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느낌을 "카타르시스"라고 표현한 것은 아닌가 싶다.


사실 그리스 신화를 읽다보면 열불이 치솟을 때가 많다. 그리스 시대의 여성 억압문화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여성을 많이 탄압했던 조선 중종왕 이후의 우리 여성억압사를 보는 것 같아 감정이입이 강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악녀를 등장시켜 왜 그 여성이 응징당하는지를 보여주는 스토리가 많다. 남편을 배신하거나 아버지를 배신하여 자기 인생 뿐 아니라 나라도 휘청이게 하는 여성들을 응징하는.... 그런데 그 이면을 보면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가부장제를 지탱해야할 기제이자 억압해야할 대상으로 보는 그 시대의 문화가 짙게 반영되어 있다. 한마디로 가부장제의 편향된 시선으로 그 문화에서 살아남고자 고군분투했던 여성들을 당대의 기존 문화에 반기를 든 악녀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시대적 배경에서 주체성 강한 여성은 사회를 문란케 하니 척결되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조선시대 여성 잔혹사와 똑닮았는지, 그럼에도 그리스 신화는 2천몇백년 전에 쓰여졌지만 우리나라는 최근까지도 벌어지던 일이니 이 시대적 갭에 허탈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아니러니컬하게도 나는 이런 비극들을 읽다보면 그 시대의 남성들이 가졌던 불안 심리가 극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가부장제가 성립되기 이전, 여성이 문화의 주체였던 선사시대의 우주적, 자연적 여성성이 엿보인다. 여성성을 우주와 자연의 섭리를 읽어내는 은유로써 숭상했던 시대의 메타포적인 여성성을 가부장제로 뒤엎으려니 그 이전까지의 여성적 이미지를 전도시키고, 또 의미를 왜곡시켜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 신화를 비롯하여 전사집단 문화가 남긴 신화들을 읽다보면 우주적 여성성을 뒤집기 위해 남성들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여성성을 왜곡하고 탄압했는지가 곳곳에 드러난다. 특히 문자가 발명된 이후로는 가부장제를 인간이 따라야할 삶의 법칙인양 문자화시켜 역사 내내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삼았다. 그럼에도 신화의 행간에는 이전 시대의 우주적, 자연적, 주체적 여성성의 빛살이 곳곳에서 배어나오고 있으니 그 빛살에 눈이 부실 때가 있다. 처음 신화를 공부하던 때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오랜 세월 신화를 공부하다 보니 이젠 매 행간마다 왜곡된 것이 무엇인지 보인다.


어떤 문화도 그 이전의 문화의 영향없이 독자적으로 탄생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문자가 발명된 이후 작성되기 시작한 인류의 역사를 보면 문명과 문화라는 것이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문자기록은 그 이전까지 장구한 세월동안 유지해온 우주적 여성성을 근간으로 했던 문화에 대해서 철저히 단절하고 남성 중심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전의 토대없이 새로운 창조가 가능한가? 따라서 가부장적, 전사들의 세계관으로 가치관을 바꾸더라도 그것의 토대가 되어줄 토대가 필요했으니 그 이전까지의 인류의 토대였던 여성적 문화에서 사용하던 세계관과 이미지와 의미를 전복시켜 가부장 문화의 토대로 삼기 시작했던 것이다. (인류학, 고고학, 신화학, 선사미술사 등, 예를 들자면 너무 많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따라서 남성들의 전쟁 문화로 세계가 바뀌면서 여성성은 철저하게 왜곡하고, 실제로 사회도 여성을 억압하는 문화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하물며 여성이 가진 생산성까지도 남성의 것으로 빼앗아가면서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식의 교육을 동서양 불문하고 가르치고 배우도록 했으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이런 말도 안되는 가르침을 베풀었을까. 그리스 신화에도 아테나 여신이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나고, 디오니소스가 아버지의 허벅다리에서 자라 태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잉태했던 어머니들은 뱃 속에 아이를 품은 상태에서 죽었고, 그 씨앗을 꺼내 제우스가 자기 머리에서, 또 허벅다리에서 키워 태어나게 했다는 것 아닌가! 얼마나 얄팍한 스토리인가? 그것을 마치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독자들도 그렇게 생각하며 읽고 배워왔지만 의도가 너무 뻔하지 않은가! 가장 궁극의 여성성 마저 남자의 것으로 독차지 하려는....


나 역시 그 가르침을 아무렇지 않게 배우며 자란 세대이지만 지금은 그 가르침이 가진 가부장적 의미가 무엇이며, 이렇게까지 해서 여성을 옥죄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너무 잘 안다. 아마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젊은 남성들의 극우화 경향도 이에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많은 전문가들이 진단하듯 세상이 양의 세계에서 음의 세계로, 남성적 문화에서 여성적 문화로, 문자의 문화에서 이미지의 문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나타나는 현상일 터이다. 그러나 여기서 또 잘못 해석하면 안되는 것이 여성이 남성 위에 올라서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된다. 여성성이 세상의 주된 세계관이었을 때 여성성은 남성성을 억압하지 않았다. 고고학적, 인류학적 증거로 밝혀진 것처럼 모권 중심의 세계였지만 남성성은 억압되지 않았다고 하지 않은가. (반론이 있을 것이다. 세상이 단순했던 시대라느니, 경쟁이 없었던 시대라느니, 등 등...




세네카의 비극에 대해 이야기 하려다 서론이 길었다. 세네카는 기원전에 태어나 기원 1세기를 살다간 로마의 철학자이다. 한 때 네로의 스승이기도 했지만 네로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 책을 번역한 강대진 교수의 해설을 보니 세네카의 비극 작품들은 지금까지 훼손없이 오롯이 남아 전하는 로마의 유일한 작품이라고 한다.


나는 예전에 로마의 시인들이 쓴 다른 작품들도 읽었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이아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도 읽었지만 세네카의 비극은 처음 접했다. 세네카의 비극은 다른 그리스 비극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 비극 작품들, 로마의 작가들이 쓴 다른 작품들은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세네카의 비극은 스토리가 좀 더 촘촘하고 대사량이 상당하다는 차이가 있다. 강대진 교수도 과연 이 작품들이 공연용으로 쓰였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대사량이 많고 길어서 혹시 읽기용으로 쓴 것인가 하는 의문도 있다고 한다.


작품을 읽다 보면 놀랍기도 하고 소름 끼치는 장면도 있다. 다른 신화나 비극 작품에서는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고 언급만 하고 지나가던 부분을 세네카는 마치 프로파일러가 촘촘히 사건을 파헤치듯이 자세하게 묘사하곤 한다. 예를 들어 탄탈로스 가문(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도 탄탈로스 가문)에서 일어난 비극을 다룬 작품 <튀에스테스>를 읽다보면 아트레우스가 튀에스테스의 아들들을 잡아 국을 끓이는 장면이 있는데, 아트레우스가 아이들을 어떻게 잡는지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 <메데이아>나 <파이드라>의 심리 묘사가 상당히 치밀하다. 마치 요즘의 심리 스릴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세네카의 비극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그리스 비극에 비해 왜 그들이 그렇게 해야했는지 그들의 행위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느낌을 받는다. 로마가 그리스 시대에 비해 여성들에게 덜 억압적이었던 시대 분위기가 반영된 것일 터이다.


또 세네카의 작품에서는 영웅에게 주어지던 찬탄들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비꼬는 듯한 장면들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 역사 내내 영웅으로 찬탄하던 헤라클레스에 대해 여성들의 입을 통해 통렬하게 비꼰다. 종종 헤라클레스는 광기를 일으켜 주변 사람들을 자기가 들고 다니던 올리브 방망이로 때려 죽이곤 했다. 가장 비극적이었던 광기는 헤라가 보낸 광기 때문에 자기의 처자식을 때려 죽인 일이었다. 그리스 비극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광기를 보낸 헤라를 일방적으로 욕할 뿐 처자식을 죽인 헤라클레스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힘에 의해 불가항력적으로 저지른 불행한 일로 묘사한다. 그런데 세네카는 헤라클레스가 새로운 여인에게 홀리면 광기를 가장해서 처자식을 때려죽이곤 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인데 세네카의 표현을 읽으면서 '오호!'하며 눈이 번쩍했다. 남자가 남자의 심리를 잘 안다고, 아마도 세네카는 헤라클레스의 광기를 진짜가 아니라 귀찮은 것을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그것을 이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미 헤라클레스의 영광 조차도 세네카에게는 가식이자 허식으로 보이는 것이다. 정복왕이라는 알렉산더나 콤모두스 같은 로마황제 조차도 헤라클레스를 흠모하여 그를 흉내내었는데, 세네카의 이 작품은 일찌기 이런 세태를 비웃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알렉산더나 세네카 보다 100여년 후의 황제였던 콤모두스는 헤라클레스를 흠모하여 그가 걸치고 다니던 사자 가죽과 올리브 곤봉을 든 모습으로 그려지거나 조각된 작품이 현재에도 남아 전한다.




이래저래 오랜만에 로마 작가가 쓴 그리스 비극을 읽었다. 전체 10작품이 실려있는데, 그중 마지막으로 실린 <옥타비아>라는 작품은 세네카 당대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실제 세네카가 작품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세네카가 쓴 작품이 아닐 것이라는 연구가 많다고 하는데, 그 시대에 권력을 두고 벌어지던 암투가 얼마나 치열하고 비열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한편으로 현재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지난 정권기에 벌어진 음습했던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오랜만에 좋은 작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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