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에서 만난 베니스비엔날레 <썬앤씨>, 브랜드가 예술을 소비하는 방식
지난주 성수동의 어느 빈 건물에서는 휴양지의 해변이 펼쳐졌다.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태양과 바다(Sun & Sea)>였다.
실제 수 톤에 이르는 모래를 깔아 조성된 실내 해변에서 사람들은 일광욕을 즐기고 책을 읽는다. 아이들은 모래놀이를 하고 강아지도 여름날을 즐기고 있다. 그러다 하나둘씩 자기 일상을 노래로 부르는데, 가사와 상황이 어쩐지 불편하고 위태롭다.
오페라 퍼포먼스인 이 작품은 리투아니아 출신 아티스트 루길레 바르즈쥬카이테, 바이바 그라이니테, 리나 라펠리테 세 명이 공동 창작한 것으로,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리투아니아관에서 상연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밝고 느긋한 장면과 부조리한 노래 가사를 대조시키며 기후위기 앞의 위태로운 일상과 소비 중심주의의 문제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은 모른다. 무엇이 얼마나 망가지고 있는지.
한편, 공연장 구조상 퍼포먼스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관객은 마치 어리석은 인간들을 굽어보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 그러나,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는 인간사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뒷골이 서늘해진다.
이 인상적인 작품이 성수동에서 단 5일간 펼쳐진 것은 탬버린즈의 초청 덕이었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는 행보로 보이는데, 기업의 자본 덕에 귀한 작품을 무료로 보게 된 것은 관객으로서 반가운 일이었다. 그러나 진행과 상연 방식에는 의문이 남았다.
이 공연은 탬버린즈의 홍보채널과 SNS로 주로 알려졌고, 예매도 홈페이지에서 이뤄졌다. 정확한 예매 오픈 시간을 공지하지 않아서, 탬버린즈의 인스타그램을 꾸준히 모니터링한 이들만이 예매에 성공할 수 있는 구조였다. 나는 우연히 정보를 알게 됐지만 작품에 관심있을 만한 다른 사람들도 제때 정보를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또한 먼저 다녀온 한 동료의 리뷰에서 보았듯, 홈페이지나 현장 어디에도 작품의 의미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작품 기본 정보도 매우 한정적이었다. 노래하는 오페라 가수들을 배경으로, 입장 시 나눠준 굿즈 인증샷을 찍는 관객들은 이것을 무엇으로 받아들였을까? 드문 기회가 아쉽게 쓰인 대목이다.
얼마 전 GS아트센터에서 열린 윌리엄 켄트리지의 공연과 여러모로 비교되었다. GS는 세계적 거장의 작품을 단 며칠 들여오면서도 장기간의 공개 홍보, 사전 강연, 아티스트 토크, 로비의 추가 작품 설치와 정확한 안내를 준비하며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최근 명품 반열에 오르고자 하는 국내 브랜드, 럭셔리 산업 일각에서 예술의 '이미지'만 이용하는 방식은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예술에서 불친절하거나 난해한 부분은 제거하고 겉모습만 소비할 때, 브랜드도 결국 그만큼의 ‘깊이’로 소비된다. 그렇다면 브랜드 가치 상승이라는 그들의 목적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의미 있는 작품을 들여올 자본과 기획력이 있다면 브랜드로서 취할 것을 정확히 취하고, 고객들에게도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며, 기존 미술계(인접 장르)와의 연결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더 확장했으면 좋았겠다는 뜻이다. 고객(대중)은 일순간 무지해 보여도, 영원히 얄팍한 바보로 머물진 않는다. 깊이 있는 브랜드만이, 성장하는 고객과 오래 갈 수 있다. 브랜드와 고객, 예술과 관객 모두 성장하는 존재이며, 그 성장은 때때로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
패션이나 뷰티처럼 일상적인 영역이더라도 자기만의 헤리티지가 있는 브랜드는 충분히 예술이 될 수 있다. 모두가 알 만한 세계적인 브랜드들을 떠올려보면 공통점이 있다. 타협하지 않는 기준과 오랜 시간 지켜온 신뢰다. 그들은 고객의 안목을 높게 설정하며, 그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지난한 반복과 난해한 과정도 피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납작하게 만들지 않는 일, 진짜 이름을 쌓는 과정이다.
명품(名品)의 "명"은 "이름"이다. 이름을 얻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은 타인이 쌓은 이름을 취하거나 기대는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맥락을 가리고 잠시 취한 이름은 오래가지 못한다. 내부가 점점 더 공허해질 뿐이다. 예술의 언저리에서 브랜드의 가치를 논하는 이들에게 그 "이름"을 채우고 지속하는 핵심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