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와 시장 가는길

by 톡톡홍쌤 홍효정

어릴 때 나는 엄마와 시장을 자주갔다. 시장을 따라 가기위해서 숙제를 부지런히 마치면 신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흥얼거리며 따라가곤 했다.

삼남매 중에 맏이였던 나는 늘 몸이 약했던 연년생 동생에게 엄마를 내줘야했다.

지나고 보니 나는 늘 엄마와 함께 하고 싶고 사랑에 목마른 어린 딸이였다.

시장가는 것을 왜 좋아했을까?

나에게 그 시간은 오롯이 엄마와 함께 걸으며 손잡고 가면서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때 엄마가 나에게 해주는 말은 늘 고맙다, 네가 잘해줘서 엄마가 큰 힘이 된다.

동네사람들이 삼남매 너희들을 칭찬한다. 엄마가 일하면서 힘들 때가 있지만 너희 때문에 산다.

늘 이런 말을 하셨다. 내가 맏이로써 잘하는 모습을 칭찬도 하시며 더불어 동생들과 잘 지내라는 당부의 말씀도 꼭 빼먹지 않았다.

늘 자기 몸을 아끼며 사랑하는 한량 같은 아빠는 가정보다는 바깥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무게는 늘 엄마의 몫이 되어 버렸다.

엄마가 남편복은 없어도 자식복은 있다는 소리를 듣게 하고 싶었다.

어렸지만 조금이나마 그런 말이 엄마를 살아가게 하는 위로와 힘이 되길 바랬다.

어린 나를 붙잡고 하소연 하듯 말하는 엄마는 딸인 나를 든든하게 여겼다.

또한 힘들게 살고 있는 엄마 자신의 삶을 다시금 부여 잡고 싶은 마음이였음을 안다.

엄마의 인생은 남편으로 인해 많이 바뀌고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자식들을 바라보며 자식 때문에 사는 마음으로 의지하는 부분이 많이 컸었다.

나 또한 그런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음식 솜씨 좋기로 소문난 엄마였지만 까탈스러운 입맛을 가진 아빠는 만족하지 않아서 매 식사 때 마다 새로운 것을 올려야 했다. 그런 비유를 다 맞춰내는 엄마가 너무도 안쓰럽고 불쌍했다. 다혈질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아빠를 맞추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동네에서도 아빠의 성격은 유명했다. 그러니 사람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는 재료가 되었던 것을 아빠는 몰랐으니 그렇게 사셨겠지!

생각해 보면 엄마는 맘고생 몸고생 하며 그 시간을 견디며 버텼던 것이다.

시장을 매일 갈 수 밖에 없었던 상황도 이런 입맛 까다로운 아빠 때문이었다.

요즘은 대형마트나 가게가 많아 편하게 장을 볼 수 있는 곳이 많이 생겼다.

아주 아주 가끔은 엄마와 함께 걸어 갔던 그 시장을 가본다.

시장을 가기위해 종종거리며 걸었던 그 길은 꽤 길었던 거리로 기억했는데 성인이 되어 걸어보니 10분정도 걸리는 길이었다.

그 길 위에서 삶의 자리가 녹록치 않았던 나의 젊은 엄마를 기억해본다.

엄마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던 그 길에는 엄마의 마음이 그려져 있다.

시간이 흘렀고 그 길도 그대로인데 나와 함께 다정히 걸어줄 엄마가 없다.


가끔 그 길을 지나칠 때마다 엄마와 함께 걸었던 그 길이 내 기억 속에서는 제일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으로 저장되어 있다.

우리 딸은 나와의 즐거운 추억이 무엇이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 다. 나에게 엄마가 해주었던 것처럼 나도 우리 딸에게 줄 수 있는 행복한 기억의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련한 기억 속의 어린 내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