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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하고 사랑스러운 스무 살의 너

by 톡톡홍쌤 홍효정

수능을 보기도 전에 여러 대학을 합격한 딸은 본인이 가고 싶은 곳을 결정했고 학창 시절의 마지막 시험

관문인 수능날을 부담 없는 마음으로 갈 수 있었다.

딸은 이제 대학생이 되어 입학하는 3월까지의 시간이 남았다.

고3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새해가 된 1월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입학하기 전까지만 하고

대학생이 되면 공부에 매진한다는 마음으로 두 달을 하겠다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아르바이트하며 용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이 좋았다.

그해 1월 중순이 되었을 때 갑자기 코로나가 심각한 사태로 말미암아 모든 곳들이 멈춤으로 들어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중국의 심각한 상태가 뉴스에서만 보던 현실이 우리나라에도 급속도로 번지며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거리두기 제한이 생겼다.

급기야 2월에 있는 많은 졸업식과 3월에 있는 입학식은 다 취소가 되었다.






딸은 대학생이 되었지만, 제대로 학교를 갈 수 없는 코로나 학번이 되었다.

딸이 입학한 제과제빵의 학과 특성상 실습을 해야 하는 경우를 빼고 나머지 수업은 줌으로 출석을

참여하는 형태로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간간이 수업을 할 수 있을 때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친구들이 전공을 하기까지의 노력과 애씀을 알게 되었고, 또 실력들도 잘 갖춰진 아이들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실습 중 조별로 나눠서 하는 수업이 있었다.


“엄마, 조별 실습을 하는데 친구들은 진짜 다들 서로 잘나서 의견들이 팽팽해”

“그럴 때 너는 어떻게 하고 있니?”
“응, 나는 그냥 듣고 있고, 아이들 의견이 분분할 때 나는 설거지를 주로 해서 애들이 나를 좋아해”
“그렇구나, 너를 경쟁자로 보지 않는 거네”
“응 그렇지, 내가 자기들 보다 잘하지는 못하는 거 나는 인정해, 그래서 친구들이 많이 알려주고 도와줘”
“그거 참 좋은데, 너는 그 친구가 고맙고, 그 친구는 너를 알려주면서 실력도 느는 거야”


이렇게 대학교에서의 생활은 경쟁하고 치열한 곳에서 한 발을 뒤로 빠져서 보고 있었던

딸의 모습도 나는 응원하고 칭찬해 주었다.

생소하고 어려웠을 전공수업이 낯설고 힘들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만들어 가지고 오는 빵은 맛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온 빵을 먹으면서도 칭찬을 안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귀하고 예쁜 딸이 아까와서 주방일은 알려주지도 않았었는데....

어쩜 이렇게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빵을 만들어노 딸이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고 대견했다.

딸에게는 아낌없이 칭찬세례를 해주었다. 칭찬 듣는 딸은 무척이나 뿌듯해하는 표정이 보기 좋았다.






코로나로 수업을 매일 갈 수 없었던 때였고, 줌으로 대체되는 수업과 실습수업도 잡혀있었지만

코로나 감염자가 늘어나면 그마저도 실습수업이 휴강이 되는 날이 많아졌다.

두 달만 하려고 했던 아르바이트는 입학은 했으나 코로나로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어 아르바이트는

그냥 그대로 유지해도 되겠다 싶었는지 아주 열심히 다녔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가고 수시로 나가는 딸에게 물어보았다.

아르바이트 단톡 방에서 맡은 시간에 일이 생겨 못 한다는 소식이 올라오면 그때마다 본인이 가겠다고

손을 들었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아르바이트 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람, 갑자기 못한다는 사람들이 많아 엄마, 정

말 책임감이 없는 거 같아”
“그럼 그렇게 사람이 없는 시간은 누가 하니?”

“내가 하겠다고 나는 바로 답 글을 달아, 그럼 그들은 고마워해”

“내가 보니 알바 가는 날도 시간도 길던데 그러면 힘들지 않니?”라는 말에

“집에 있으면 잠만 자고 누워 있는데 그것보다는 나가서 돈 버는 게 훨씬 더 나은 거 같아”라고 말했다.


그래 집에 누워서 밤, 낮이 바뀌는 것처럼 지내는 모습이 나도 싫었던 때라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딸의 스무 살은 코로나의 거리두기 시간이 길어져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본인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깨우는 시간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본 나는 딸이 그런 성실함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티는 내지를 못했지만 난생처음

이런 아이였구나 하며 마음으로 당황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런 딸의 모습이 무슨 일을 해도 잘할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과 듬직함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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