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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형식만 피드백 주는 리더

by MZ세대 인사팀장

중요한 전사 인센티브 보상안, 세일즈 인센티브 지급액처럼 대표 보고까지 올라갈 문서를 준비할 때면 나는 더 단단해진다. 그런데 요즘 상위 리더의 피드백은 내용이 아니라 단어 몇 개, 표의 위치, 문장을 위에 둘지 아래에 둘지 같은 형식에서 멈춘다. “완성도 70~80%”라는 말까지 곁들여진다. 아이러니한 건, 내가 “왜 이렇게 썼는지” 설명하면 결국 수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켠에서 질문이 올라온다. 그녀는 왜 그럴까. 그리고 나는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나름의 가설을 세워본다. 첫째, 경영진 보고는 작은 표현 하나가 바깥으로 퍼질 때 리스크가 될 수 있으니 “틀리지 않도록” 형식을 다듬는 데 과잉의 에너지를 쓰는 경우가 있다. 정확함이 적확함을 압도할 때 문서는 안전하지만 둔감해진다. 둘째, 내용에 깊이 개입하기 어려울수록 누구나 건드릴 수 있는 형식을 만지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셋째, 몇 가지를 고쳐주고 “완성도 70~80%”라고 말하는 방식은 상징적으로 권위를 행사하기 쉬운 언어다. 넷째, “대표가 보기 좋은 문서”를 형식의 정답으로 오해한다. 많은 대표는 보기 좋음이 아니라 결정하기 좋음을 원한다. 마지막으로, 팀에 심리적 안전감이 부족하면 내용 논쟁 대신 형식 이야기로 흘러가기 쉽다.

문제는 이런 피드백이 남기는 흔적이다. 표의 위치를 옮기는 동안 우리는 가정과 대안의 타당성을 논의할 시간을 잃는다. “70~80%”라는 말은 미완성의 신호로 남아 HR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무엇보다, 리더의 피드백이 다음 사이클의 더 나은 의사결정 구조를 설계하는 데 쓰이지 못하면, 나와 조직의 성장은 멈춘다.


최근 그 리더가 상위 리더에게 낮은 평가를 받고, 동료평가도 낮았다. 그래서 내가 견제받는다고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람의 의도를 단정하기보다, 반복되는 행동에 대한 경계를 분명히 하기로 했다. 내 성장과 조직의 결정을 방해하는 방식에는 “아니오”라고 말하고, 대신 더 좋은 대화를 제안한다. 만약 이 경계가 지속적으로 무시된다면, 환경을 바꾸는 선택—역할 조정이든 이직이든—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리더의 피드백은 팀의 시간을 어디에 쓰게 만드는지로 평가받아야 한다. 단어 몇 개, 표 위치 몇 칸을 넘어, 더 정확하고 더 용감한 결정을 향해 우리를 밀어 주는 피드백을 원한다. 내가 할 일은 그 기준을 문서로, 대화로, 나의 선택으로 꾸준히 드러내는 것이다. 형식은 중요하다. 하지만 형식이 본질을 가릴 때, 나는 본질을 선택하겠다. 나의 성장을 막는 피드백에 머물지 않고, 나와 팀을 앞으로 움직이는 피드백을 요구하겠다. 그것이 HR 리더로서, 그리고 일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지킬 최소한의 프로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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