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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먼트 Oct 25. 2024

1.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

(소설) 내가 태어난 날 나는 죽으려 했다

분주하고 요란한 아침.

지하철 신호에 서둘러 달리는 사람들.

짜증 섞인 경적을 울리며 도로를 타는 무법자들.

저마다 목적지가 있으니까 저리 급한 거겠지.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살을 시도한 지 18년째다.

오늘도 어김없이 죽는 걸 실패하고 버스를 기다렸다.

양쪽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들리는 ‘넌 특별해’나 ‘너는 참 소중한 사람이야’ 같은 마음에 와닿지 않는 노랫말을 무심히 넘겼다.

작은 화면에 몰입해 최대한 감정을 꾹꾹 밟아보았다.

억지로 만든 손가락 미소는 비참했다.

내 표정만 보면 죽으려는 사람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관리해 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때 갑자기 죽어 최대한 충격에 빠뜨리는 게 최종 목표이기 때문이다.

“엄마 보고 싶다….”

열 달 동안 나를 뱃속에 품어주셨지만, 한 번 안아보기도 전에 엄마는 떠났다.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운명이 아닐까? 날카로운 쇠붙이에 긁힌 상처가 있는 왼쪽 손목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사는 고통에 비하면 이건 별거 아닌데…”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닌데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됐다. 엄마의 품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신이 있다면 그 느낌을 한 번이라도 선사해 주었으면 한다.

어느덧 버스가 오자 슬그머니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교통 카드를 찍었다.

- 삑

- 학생입니다.

출근길과 등굣길이 늘 그렇듯 항상 버스 안은 분주했다. 다리가 아파왔다. 바로 앞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여기 앉으라며 토닥였다.

어쩌면 내가 제일 약자 아닐까?

사회, 집 어디에서도 섞일 수 없는 이방인.

외면하고 싶은 현실에 눈을 감고 부모님을 떠올렸다.

장난감 회사를 차리는 게 꿈이었던 남자는 2000년, 쉽진 않지만 소규모로 장난감 사업을 꾸릴 수 있었다. 그는 어릴 적 친부모 없이 보육원에서 생활했다.

“가족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하고 욕심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게 가장 큰 소원이었다. 보육원에서 나갈 나이가 되자 마음 편히 머물 곳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큰 공포가 밀려왔다. 세상은 무서운 곳 같았다. 당장이라도 누가 날 해칠 것 같았다.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닌데….”

태어난 게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은 차가운 잣대를 들이밀었다. 그동안 생활했던 아동복지시설은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지 않았고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행동하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런데 정작 사회에 던져지니 주변에 물어볼 어른이 없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계속 방황하다 2호선에 몸을 실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같은 역을 세 번 지날 때까지 꼼짝하지 않았다. 막막했다.

잠실역에서 우연히 군복 입은 두 남자를 봤다. 머리가 번뜩였다. 바로 입대했다. 힘들어도 안정된 생활공간이 있는 게 중요했으니까.

제대 후 대학 진학은 생각하지 않고 대형 마트에서 장난감 판매 업무를 주 6일 하게 됐다. 노력해도 업무 과정은 쉽지 않았고, 직장 스트레스를 견디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명절이면 직장에서 가족들이랑 맛있는 것을 먹으라며 상여금과 가끔은 칫솔 세트, 실적이 좋은 날에는 먹거리를 주었다. 직원들은 서로 본가가 어딘지 물어보며 차편 마련에 애를 먹고는 했다.

 옆 자리에 앉은 사수는 “아 내려가기 싫다”라며 배부른 소리를 하자 기가 막힐 정도였다. 돌아갈 안식처조차 사라져 버린 그는 누굴 전혀 탓할 수도 없고 원망하기도 어려웠다. 그냥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고 느꼈다.

거센 장마가 계속됐던 어느 날.

불 꺼진 건물 앞에서 주저앉아 울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아닌 것 같아 주체할 수 없는 우울함에 자살을 선택하려고 한다.

“이만이면 잘 견뎠어”

이제는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서울 날씨와 한강 물 온도를 보기 시작했다. 축 늘어진 어깨 뒤로 누가 말을 건넸다.

“저… 괜찮으세요?”

불 꺼진 가게에서 한 여자가 나왔다.

머리망을 하고 따스한 온기를 줄 것 같은 첫인상.

알고 보니 남자가 주저앉아서 울고 있던 가게의 사장님이었다. 마감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서럽게 우는 남자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녀는 차마 무시할 수 없어 물이라도 한잔 건넸다.

처음이었다.

이 단순한 호의가 남자에게는 아직 세상이 살 만한, 따듯한 세상이라고 느끼게 했다. 그녀 덕분에 내일을 살 희망이 생긴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눈물이 걷힌 후 바라본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을 때 처음으로 누군가 건네준 호의에 감사했다. 

땀이 나서 축 늘어진 정장과 언제 그랬듯 닳아버린 구두는 치열하게 살아온 그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 후 일부러라도 그 가게 마감 시간에 맞춰 가곤 했다.

비가 와도 불볕더위여도 여자에게 한마디 말을 건네보고 싶었다.

밥 먹을 때도 잠잘 때도 계속 그녀 생각만 났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눈 내리는 겨울.

남자는 변함없이 가게 앞을 서성거렸다.

“뭐 하고 계세요?”

남자는 화들짝 놀라 넘어졌다.

괜찮냐며 손을 잡아 일으키는 여인의 온기에 심장이 미칠 듯 뛰었다.

“아… 저 운동! 산책하다가!”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떠오른 말이었다.

여자는 다 알고 있다는 듯 웃었다.

“괜찮으시면 저, 요 앞 정거장까지 데려다주실래요?”

남자는 고갤 끄덕였다.

“오늘 첫눈 내린 거 아세요?”

여인은 남자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추워서 그런 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남자의 볼과 귀는 빨갛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추운데 어서 들어가세요.”

그는 본의 아니게 툭툭거렸다.

“내일 가게로 놀러 와요! 겨울맞이 새로운 빵이 나올 거예요!”

남자는 버스 타고 가는 여자의 모습을 지켜보다 ‘나이스!’하고 외쳤다. 우스꽝스럽게 신나 하는 그 모습이 버스 백미러에 고스란히 맺혔다.

남자는 평소보다 10분 일찍 그녀의 가게로 갔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걱정되는 마음에 서둘러 주변을 돌았다.

“꺅!”

비명이 들리는 곳으로 곧장 달려갔다.

그녀가 취한 단골손님의 구애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마감하고 쓰레기를 버리려는 찰나에 곤란한 상황에 빠진 것이었다.

취객은 강제로 스킨십을 시도했다. 소리 내면 죽여버릴 거라며 그녀의 입을 막았다.

남자는 망설임 없이 취객의 등을 발로 찼다.

“뭐, 뭐 하는 새끼야!”

“이 여자 애인이다, 왜!”

그녀는 남자의 뒤에 숨었다.

남자는 취객의 멱살을 잡았다.

“내 여자 앞에 얼씬도 하지 마, 죽여버리기 전에.”

남자의 눈빛은 야생 호랑이 같았다. 취객은 바지에 오줌을 싸고 도망쳤다.

“저… 고마워요.”

그녀는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남자는 그녀를 안고 토닥였다.

그는 사람 소리가 가득한 편의점에 들러 물을 사 건넸다. 여자는 어떻게 보답해야 하냐며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제가 먼저 빚졌는데요 뭘.”

그날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유명 가수 서태지의 컴백으로 일본 대중문화 3차 개방과 중국행 한류열풍이 불어왔다. 인터넷 문화의 발달로 그녀와 싸이월드 일촌을 맺어 매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녀가 적은 방명록을 보며 ‘빵명록’이라는 별명을 만들기도 했다.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행복을 구워주는 여자가 참 귀여워 보였다. 출근할 때도, 점심을 먹을 때도 늘 그녀 생각만 났다.

 “벚꽃 보러 갈래요?”

 그녀가 수줍게 건넨 첫마디였다. 남자는 너무 좋아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유행하는 스타일도 찾아보고 좀 더 신경 쓰고자 향수도 새로 샀다. 

 함께 걸으며 닿을락 말락 하는 손등 사이로 용기 내 손을 잡았다. 문득 바라본 여자의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자도 부끄러운 나머지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 잇몸을 가렸다. 

 “꽃잎을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 대요”

그 말을 들은 남자는 한껏 갖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꽃잎을 잡으려 했다. 이래저래 노력해도 안 잡히는 벚꽃은 마음을 더 애타게 했다.

 힘이 다 빠진 그는 벤치에 앉아 한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제야 여자가 떠올라 바라봤지만 그녀는 귀엽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푸흣’ 소리에 웃는 그녀는 손바닥을 펴 벚꽃 잎을 보여주었다. 남자는 부끄러운 마음에 손을 휘저으며 빨개진 얼굴을 진정시켰다.

 “우리 사귈래요?”

 그녀가 건넨 말은 남자의 마음에 꽃을 피워 주었다. 너무 설레고 행복해서 바로 끄덕였다. 

 모를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 다 알고 있었다. 매일같이 빵집에 와서 빵을 사가고, 어떤 하루는 창문 밖에서 서성이며 그녀를 걱정한 모습.

 식자재가 배달 와 발주목록을 확인하는 사이 몇 번이나 먼저 말을 걸어보려는 남자가 귀엽게 느껴졌다. 바쁘고 힘든 출근길에도 남자가 와 주기를 새삼 기대했다. 그렇게 여자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되어 준 것이다.

그렇게 둘은 사귀게 되었다.

남자의 인품과 성실함에 반한 여자는 몇 달 뒤에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든 빵을 맛있게 먹어주는 남자에게 이제는 밥을 차려주고 싶었다. 든든한 편이 되어주고 싶었다. 

 남자도 매일같이 밤길을 데려다주면서 여자에게 가장 든든한 편이자 울타리가 되어 주고 싶었다. 둘의 마음은 점점 더 커져갔다.

 “나랑 결혼해 줄래?”

 바닷가에서 건넨 프러포즈는 그야말로 낭만 그 자체였다. 수줍은 얼굴로 끄덕이는 그녀가 고마워 단숨에 안아버렸다.

 이후 결혼준비를 하기 위해 상견례 인사 날짜를 잡으려 했지만, 여자의 부모님이 엄청나게 반대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완강했다.

“제발 허락해 주세요.”

남자는 매번 여자의 부모님 가게에 가서 일을 도우며 호감을 사려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허락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랑을 포기할 순 없었다.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허락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집을 나가겠다는 엄청난 포부를 비춘다.

 청송같이 굳건한 부모님의 모습에 여자도 짐을 싸서 나가버린다. 남자의 자취방에서 나타난 그녀는 물에 빠진 생쥐 그 자체였다.

“나 집 나왔어”

남자는 당황스럽다가도 걱정이 되었다. 여자를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자신은 오랫동안 가족을 그리워하고 바랬던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놓아주고 싶었다.

“돌아가”

“왜?”

“우리는 여기까지야”

 여자는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도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온 것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난 너 없이는 못 산다며 울고불고 빌었다. 비가 오는 것인지 자신이 우는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야”

 남자는 그동안 가족을 바라왔다. 사랑하는 사람과 모두에게 축하받는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 

혼주석이 비어있는 결혼식은 자기 하나로 벅차고 충분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놓아줄 줄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문을 닫아버렸다.

 하염없이 몇 시간을 홀로 울었다. 창문을 바라보니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아유! 뭐 하는 거야 얼른 안 치우고”

문 너머로 옆집 할머니의 잔소리가 들렸다. 당황스럽고 놀란 마음에 현관문을 여니 여자가 그대로 서 있었다.

“너... 안 간 거야?”

여자는 끄덕였다. 얼마나 울었는지 딸꾹질을 했다. 서둘러 들어오라고 한 뒤에 물 한 잔을 건넸다. 

남자는 그동안 살아온 일들을 다 이야기했다. 여자는 울며 아무 말 없이 그를 안아주었다.

“이제는 내가 네 가족이야”

둘은 혼인 신고를 했다. 이제는 법적으로 정식 부부가 되었다.

그렇게 2001년 9월이 됐고, 모은 돈으로 간소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11월에는 아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아빠가 된 거야?”

남자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셋이 함께 할 날을 기대했지만….     

맞다, 이 두 사람이 내 부모님이다.     

2002년 6월 1일, 한 산부인과에서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교통사고로 인해 피가 철철 흐르는 여인, 막달이 다 되었는지 배는 만삭이다. 아직 의식이 있기에 CPR을 했으나 환자가 뜻밖의 말을 했다.

“아기… 아기… 먼저.”

흐려져 가는 목소리가 제시한 선택지.

산모의 간절한 모습에 의사는 긴급 제왕절개를 준비하라며 간호사들과 함께 분만실로 들어갔다. 산모의 맥박이랑 호흡이 불안정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정신을 잃지 않았다. 젖 먹던 힘을 다했다. 머리가 보인다는 간호사의 말에 더 힘을 주었다.

소원이 통한 것인지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산모는 눈물을 흘리며 삐-소리와 함께 영원한 잠에 빠졌다.

회사에서 튀어와 아내의 곁을 끝까지 지킨 남자는 울부짖었다.

아기를 안아 든 아내. 그런 아내의 다리를 주물러주는 남편. 애썼다며 미역국을 끓이는 시어머니. 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클리셰인만큼 나에게도 이런 풍경이 평범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셋이 함께하는 미래는 흩날리는 모래처럼 사라졌다.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영안실에서 고이 잠든 여자는 숨을 쉬지 않았다. 이미 차가워지고 있었다. 미약하게 남은 여인의 손을 잡은 남자는 미친 사람처럼 부들거렸다.

“차라리 나를 데려가세요.”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제발 소원을 들어줘.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진정하라고 했지만, 이성을 잃은 지 오랜 남자는 현실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남자는 신생아실에 누워 웃고 있는 아이를 보며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내의 곁을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과 네가 없었으면 죽지 않았을 거라는 분노가 동시에 턱 끝까지 차올랐다.

“아빠~?”

신생아실의 간호사가 아기를 안으며 복화술을 했다. 창밖의 남자에게 인사하자 아기는 웃었다. 그 모습에 안 좋은 생각을 했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미안해….”

깊은 슬픔에 빠진 남자를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은 그저 환히 빛나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자 하염없이 아내가 그리워졌다. 만약 엄마가 살고 내가 죽었다면 현실이 달라졌을까.

나는 어디에도 축하받지 못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가 되었다.

잠시 감았던 눈을 뜨며 현실을 직시했다.

출근길과 등굣길, 사람들과 자동차 경적과 북적북적한 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이 있다면 분명 나일 것이다.

나로 인해 모든 것을 망쳤으니 되돌리려 한다.

그러니 내가 태어난 날 나는 죽을 것이다.

저마다 목적지가 분명해 보인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건 나밖에 없는 듯했다. 아무래도 진짜 ‘친한’ 사람이 있거나 인간관계에서 말하는 ‘적’이 없어서 그런가 싶다. 

사회에 비하면 학교는 별거 아니라며 더 많은 사람을 만날 거라 훈수를 두는 사람이 있다. 그 별거 아닌 곳이 나한테는 지옥 같다. 진짜 가고 싶지 않은데 몸은 서둘러 버스를 타러 가고 있었다.

내가 참 밉고 또 싫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17살 김지안이다.

검고 긴 물결 머리에 키는 평균 정도, 정상 체형에 쌍꺼풀 있고 화장기는 없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예쁘고 착해서 인기도 많고 공부도 잘할 거 같아 보인다고 말하지만, 다 잘못된 판단이다.

- 이번 역은 사랑 여자 고등학교, 사랑 여자 고등학교입니다.

하차 벨을 누르고 일어났다.

뒷문으로 내려 가장 먼저 본 풍경은 화려했다. 내 기분과 정반대였다.

나랑 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서로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며 걷고 있다. 여고다 보니 정문 앞까지 데려다주는 남학생도 많이 보였다.

그들을 쳐다보다 다시 땅바닥으로 시선을 내렸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모른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공부가 아니라 사람 때문에 힘들다. 여자아이들은 신체적 폭력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공격한다. 그래서 증거를 잡기도 처벌하기도 매우 어렵다.

정문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또 지옥 같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탕처럼 달콤하고 좋은 사람들이라 생각해 믿었지만 아니었다. 

 지금부터 나의 이야기는 평생의 트라우마를 안겨 준 시작, 1학년 5반과 2학년 5반에서의 이야기이다. 

2018년 3월 2일, 등교 첫날. 문 앞에 배치된 반 배정 표에 ‘1학년 5반 6번 김지안’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열고 들어가니 아직은 수줍고 낯선 표정들이 가득하다. 

 새로운 시작인지라 기대감이 들고,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에 한껏 들떠 있던 나였다. 처음부터 반 아이들과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아니었다. 내 생각과 달리 반 애들은 나를 좋게 생각한 것 같지  않다. 딱히 시비를 걸거나 싸운 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첫인상이나 은연중에 만들어 내는 관심 대상에 속하게 된 것 같다.

긴장되는 와중에도 번호순으로 차례대로 앉았다. 정적이 흐르고 조용한 분위기 사이 누군가 침묵을 깼다.

“안녕? 나는 김은영이라고 해”

 내 앞에 앉은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인지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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