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가 태어난 날 나는 죽으려 했다
2019년 6월 1일
어김없이 생일이 또 찾아왔다.
은영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가 보인다.
정작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외로웠다.
겨우 잠을 청하고 학교로 갔다. 2학년 5반, 분명 내가 속한 반이지만
가고 싶지 않았다.
귀신처럼 하염없이 복도를 떠돌았다.
담임 선생님은 참 좋으신 분이다. 언제나 학생에게 지극정성이다. 내게도 애정을 많이 주었다. 그게 반 아이들은 내키지 않은 듯했다. 학교에서는 왕따 문제를 중요시해 ‘따돌리면 안 돼’나 ‘왕따는 범죄야’라고 한다. ‘멈춰!’라는 이상한 운동도 한동안 유행했는데, 해결되는 건 없었다.
아침조례가 끝난 후 선생님이 들어와 칠판에 학습 목표를 적으며 수업을 시작했다. 1교시는 국어였다. 국어를 배우면 주제를 알아야 한다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한다. 내 주제에... 행복을 바라도 되는 걸까?
“얘들아~,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문학 작품을 배워볼 거야. 주인공 인희부터, 은영이가 읽어볼까?”
은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교과서를 낭독했다. 귀를 여는 또렷한 목소리가 교실을 채웠다.
내용은 이랬다.
오늘 생일인 인희가 가족과 외식하고 집에 돌아오지만, 치매 걸린 시어머니의 난폭한 행동에 상처받게 된 상황.
“잘 읽었어. 주인공인 인희에게 동그라미 치자.”
아이들의 손이 분주해졌다. 필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주인공은 동그라미, 반동 인물은 세모로 표시해 사건을 쉽게 알아보는 방법이다.
나는 수업이 정말 유익하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본문을 읽고 주인공의 상황에 감정 이입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건 인희의 감정 변화야. 누가 먼저 발표해 볼까?”
난 손을 들어볼까 고민했다. 내 뒷자리에 앉은 수연이 손을 들었다.
“인희가 자기 생일이라서 들떴는데 반동 인물 때문에 행복했던 상황이 무의미해졌어요.”
아이들이 손뼉을 쳤다.
“정말 잘했어.”
선생님이 수연이를 칭찬하자 반 분위기가 더 올라갔다.
“오늘 은영이 생일이에요!”
“어머 정말?”
“감사합니다.”
은영이는 수줍은 듯 대답했다. 자기 생일 챙겨준다고 싫어할 사람은 없다. 나도 생일이었지만, 가만히 있었다.
들뜬 교실이 점점 부담스러워지는데, 생각지 못한 변수가 생겼다.
“오늘 지안이도 생일이지? 축하해~.”
선생님이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던 것이었다.
반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시에 입을 다물었다. 싸해지는 반 분위기에 선생님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표정에 떠오른 생각은 이거였다.
왜 꼽사리 껴?
눈치 없냐?
은영이를 축하하는 자리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몰아갔다.
이 상황이 너무 숨 막히고 괴로워 빨리 수업이 끝나기를 바랐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밖에 없다고 한다. 나는 아니었다. 이런 날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집단에 어울리지 못하면 문제가 있는 거라고 함부로 말한다.
달은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
달이 원해서 도는 걸까?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소속감’을 느끼고 싶고 ‘어울리고 싶은 욕구’가 당연히 있었다. 함께 어울리고 싶은데 허락된 것이 없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싫어하는 애가 자꾸 친해지려고 하면 짜증 날 것이다.
계속 배척하는 데 억지로 구겨 넣으면 고통만 남을 뿐이다.
사람들은 매번 내가 잘못했고, 내 책임이라고 말했다.
다수가 주는 위압감은 생각 이상으로 위력이 세다. 내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걸 듣는 것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
교실 커튼 너머로 햇살이 들어왔다.
반 아이들은 하하 호호 모여 있고 나는 혼자 엎드려 시간이 지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김지안”
날 부른 애는 채안나. 우리 반 모범생이다. 오밀조밀하게 예쁘게 생겨서 아이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그녀의 언니는 우리 학교 최초 한국대 합격자다. 그래서 안나는 언니의 후광을 입고 선생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중요한 건 얘도 나를 싫어한다.
“무슨 일이야?”
나는 자다 일어난 척했다. 안나는 나를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너 과학부장 아니야? 선생님이 저번에 프린트물 걷어오라 그랬는데.”
잊고 있었다. 또 애들이 욕할 거리를 제공할 뻔했다.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나는 서둘러 교무실로 갔다. 선생님은 유인물을 건네며 다음 주에 있을 수행평가를 공지해 달라고 부탁했다.
“네! 알겠습니다.”
정중히 인사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안나랑 그렇게 친한 건 아니었지만, 걔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줬다는 게 내심 기뻤다. 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 같아 기뻐 서둘러 교실로 향했다.
내가 있는 교실은 5층이다.
계단을 오르던 중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여러 반 아이들이 모여 뭐라 말하고 있었다.
내용이 뭔지 궁금해 엿들었다.
“진짜 웃기지 않냐?”
“그니까.”
“진짜 아, 김지안 죽어버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남의눈을 의식하는 게 습관이 되어 생겨버린 공포심과 경계심이 다시 나를 집어삼켰다.
“니들 뭐야?”
나는 용기를 내어 계단을 박찼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눈물이 맺히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꺄아아악! 들었어, 쟤!”
은영이 요란하게 소리를 질렀다. 가담해서 내 욕을 한 걸 뻔히 봤는데 아닌 척하며 김세희를 가리켰다.
“내가 뭘?”
안경을 쓰고 긴 생머리에 작은 키를 가진 세희는 나와 관련 없는 사건을 나와 엮어 흔히 말하는 ‘정치질’을 주도한 아이다. 나를 제물로 삼아 자신이 스포트라이트 받는 걸 즐겼다.
“김세희.”
“뭐.”
얘는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한다. 그러니 꿀릴 이유가 없었다.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는데?”
나를 경멸하는 눈빛과 피하는 태도는 여전했다.
도대체 날 무슨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궁금했다.
세희는 벌레 보듯이 날 비웃었다. 그 함의는 명확했다. 날 자기 아랫급으로 보는 것이다. 다수가 자기편이라는 생각에 아주 기세등등했다.
“애들이 다 너 싫어하는 거 몰라?”
나는 황당해서 맞받아쳤다.
“그 애들이 누군데?”
지금 또 도망가서는 안 된다. 여기서도 도피하면 정말 뒤가 없을 것 같았다.
“아, 내가 왜 말해야 하는데?”
“봐, 말 못 하잖아. 날 싫어하는 애들이 대체 누구냐고!”
돌아오는 답은 어이없었다. 친구를 팔 순 없단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데 다수 핑계를 댄다면 높은 확률로 거짓이다. 비난하는 그 사람만 나를 싫어하는 것이다. 그런 핑계를 댄다는 건 자신이 비도덕적이고 양심에 찔릴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든 회피하기 위함이다.
한심하기도, 불쌍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다간 악몽이 더 심해질 거다.
“그런 짓 좀 그만해.”
용기를 내서 노력한다고 다 좋은 결과를 내진 못한다. 자주 배신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주저앉을 순 없다.
“넌 범죄자야”
그 말을 끝으로 교실로 돌아왔다. 속이 시원했다. 복도에서 ‘세희야 괜찮아?’라고 누가 위로하는 소리가 들렸다. 환멸이 들었다.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데, 부반장인 이유빈이 나타났다.
“야, 김지안.”
유빈은 늘 나를 피했다.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다.
왜 날 부르지?
“선생님이 교무실로 오래.”
“아, 알려줘서 고마워.”
교무실에서 수업 준비하던 선생님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 세희랑 복도에서 일 있었다며?”
가슴이 철렁했다. 벌써 소문이 퍼졌다고?
“무슨 말씀이세요?”
담임 선생님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애들이 얘기해 주더라. 세희가 복도에서 너를 죽여버리겠다고 했다며?”
어느샌가 옆에 세희가 있었다. 걔와 함께 선생님을 마주하고 있자니 정말 불편했다.
“아 선생님, 저 안 그랬어요, 지안이랑 저랑 짱친이에요.”
세희가 갑자기 팔짱을 꼈다.
가식적인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
“지안아.”
선생님과 눈을 마주쳤다. 솔직하게 말해보라는 함의가 느껴졌다.
괴롭힌다고, 당장이라도 죽고 싶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선생님께 얘기했다는 게 새로운 괴롭힘의 명분이 될 게 명백했다.
“애들이… 오해했나 봐요.”
그러자 선생님이 활짝 웃었다.
“그래? 그런 일 없었다니 다행이구나.”
선생님은 우리 둘을 마주 보게 했다.
“둘이 손잡고 악수.”
이게 뭐 하는 짓이지. 화해시키는 거야 지금? 이런 이상한 걸로?
나도 세희도 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
학교가 학폭 사건으로 시끄럽지 않게, 일 키우지 말고 단순한 애들 싸움으로 넘기려는 그 의도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학교의 어른이라는 사람이 그저 자기 보신에만 열중하다니.
“지안아.”
세희가 손을 내밀었다.
“어, 어.”
정말 싫었지만, 안 하다간 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무서웠다.
내가 손을 잡자, 선생님은 둘이 화해했으니 얼른 교실로 돌아가라며 손짓했다.
세희와 함께 각자의 교실로 돌아가는 길. 피곤했다. 더는 세희를 포함한 학교 애들과 엮이기 싫었다.
“아 진짜 더러워.”
세희는 얼굴을 찡그렸다. 내가 벌벌 떨기를 바라는 거다.
그럴수록 난 오기가 생겼다. 내 약한 모습을 보는 게 목적인 거다. 내가 상처 입고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다. 다시는 얘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겠어.
다짐하듯 안 들리게 혼잣말했다. 계속 되뇌지 않으면 나를 잃어버릴 것 같았다.
이미 수업 시간이 지나있었다. 복도는 조용했고 교실 안은 북적거렸다.
“하, 진짜 피곤해….”
교실 문을 열려는 순간, 창가 너머로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지안 진짜 나대지 않냐?”
“오지랖 개쩔어.”
“아 그니까 가스트레스 받음.”
손이 벌벌 떨렸다. 도망가고 싶었다.
문을 열자 모두 나를 쳐다봤다.
“헐, 쟤 왔다.”
“와 뭐냐 진심? 다 들은 거 아냐?”
나는 은영의 앞으로 걸어갔다. 모든 일의 배후는 다 얘다.
오늘만큼은, 항상 당하는 먹잇감이 아닌 싸움에서 이겨서 평범한 사랑고등학교 2학년 5반 6번 김지안이라는 내 진짜 모습을 돌려받고 싶었다.
“뭐?”
김은영이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책상에는 마스카라와 방금 라이터로 지진 뷰러, 각양각색의 팔레트가 있었다.
“너 왜 자꾸 나한테 무례해? 내가 잘못한 거 있음 비판을 해.”
김은영은 코웃음 쳤다.
“잘못? 하하하.”
모두가 따라 웃었다. 순식간에 교실은 교도소로 변했고, 김은영은 방장처럼 보였다. 한 명을 주축으로 하는 위계질서에서 약자로 낙인찍힌 나는 어디에서도 보호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숨이 막혔다.
“넌 있잖아.”
은영은 나를 노려보았다. 나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니 존재 자체가 그냥 잘못이야.”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열심히 견디자고, 괜찮다며 스스로 다독이던 일이 모두 무의미해졌다. 끝내 난 벼랑 끝에 내몰렸다.
“아….”
더 이상 말할 힘도 없었고 다수의 중압감을 이겨내기 힘들었다. 내가 왕따 당하는 게 아니라 유치한 동급생들과 거리를 둔 거라는 정신 승리도 결국 한계를 맞이했다.
“네가 그래서 아빠가 없는 거고, 엄마가 죽은 거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네가 뭔데 부모님을 들먹여?
하지만 끝내 화내지 못했다.
무슨 오기였는지 7교시까지 버텼다.
수업이 끝나고 청소 시간이 다가오자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뭐라도 하려 했다.
난 칠판 담당이었는데, 하필 그동안 쓰던 학급 공용 걸레를 누가 바꾼 것 같았다. 내가 쓰던 게 어느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실수할까 봐 애들에게 물어봐도 묵묵부답이었다.
“나 이거 써도 돼?”
흰색 걸레를 집어 들며 말했다. 쓰라고 하니 썼다.
칠판을 닦던 도중 누가 나를 불렀다.
김은영이었다.
“왜?”
“왜 내 걸레 써?”
은영이 나를 죽일 듯 쳐다봤다.
“이거 나랑 주희가 교탁 닦을 때 쓰는 건데? 네가 뭔데 이걸 쓰고 지랄이야.”
“난 애들한테 물어보고 쓴 건데?”
“우리가 언제?”
이은성과 그녀의 짝 민아영이 모르는 체했다.
“난 들은 적 없는데? 큭큭.”
“야, 김지안. 또 말 지어냈지?”
“피해의식 오지네.”
은영은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니야, 정말 안 그랬어.”
“거짓말하지 마, 걸레년아.”
은영이 걸레를 던졌다. 반 아이들도 당황했다.
내 교복에 걸레 물이 스며들었다.
뚝 뚝 떨어지는 물과 함께 내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수치스러워 교실을 떠났다.
은영이가 너무 밉고 싫었다. 내가 반박하고 도와달라 그러면 다들 ‘너한테 쌓인 게 많나 봐’, ‘네가 미운가 봐’라며 은영의 행동을 정당화하면서 참으라고만 했다. 내가 변해야 한다며, 그래야 은영이도 안 그럴 거라고.
진짜 변해야 하는 건 김은영이다.
책가방도 없이 집까지 걸어갔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물 범벅인 옷을 벗을 힘조차 없었다. 다 포기하고 싶었고 내가 아팠던 만큼 은영이 아프길 바랐다.
학교는 작은 사회가 아니다. 가혹한 먹이 사슬이다.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동물들만 가득한 곳이다.
나는 최하위 피식자고 다른 아이들은 포식자다. 내가 하나라도 실수하면 제일 먼저 공격해 주도권을 잡고 싶어 한다.
날 심하게 괴롭힐수록 그들은 박수받는다. 나는 환경적 영향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고, 다수를 바꿀 수 없으니 결국 자책하고 자해했다.
반 아이들한테 나는 친구가 아니라 서커스 구경물이다. 잘해야 하고 실수하면 안 되고, 사육하기 위해 자기네들끼리 경쟁하며 나를 때릴수록 격한 호응을 얻는 유흥거리다.
“헉. 헉….”
정신 차려보니 다리 위였다.
지나가는 차들과 다리 위를 건너는 분주한 사람들.
오늘따라 한강은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하염없이 울었다. 삶이 여기서 끝났으면 좋겠다.
“죽고 싶어.”
잠깐만 참으면 다 끝날 거야. 지금 죽는다면 내일은 오지 않겠지.
하지만 물밑이 안 보이는 강물을 보자 공포에 사로잡혔다.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
그래도 지옥 같은 학교보다 나을 거야.
신발을 벗고
난간에 올라갔다.
“이제 다 끝이야, 수고 많았어.”
나 자신에게 속삭였다.
마음 한구석에 살고 싶다는 미약한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삶의 매 순간 서럽지 않은 적이 없지만, 오늘은 유난히 더 서러웠다.
내가 태어난 날이라 그런 걸까.
6월 1일이 전 세계에서 나만 생일이었으면 좋겠다.
이루어질 수 없는 마지막 소원을 빌었다. 지금 김은영은 반 아이들에게 축하받고 있겠지, 솔직히 부럽다.
나, 착하게 살았는데….
다음 생이 있다면 사랑 많이 받는 그런 삶이 되기를.
덥고 습한 여름날.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소원을 외치며
나는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