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가 태어난 날 나는 죽으려 했다
“야, 강소원 되게 웃기지 않냐?”
교실에 들어오자 내 뒤에서 소원을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들어왔는데 관심 없는 걸 보니 자기들만의 새로운 표적을 잡은 듯했다.
일상처럼 선동으로 반 분위기를 흐리는 눈살 찌푸려지는 모습은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젠 소원이까지 건드리려 하다니. 책상 아래 주먹을 꾹 쥐었다.
‘근데, 내가 나서도 될까?’
악마의 속삭임이 들렸다. 여기서 나서다가 다시 내가 주 표적이 되면?
‘한심해.’
뻔히 아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내가 힘들 때 도와준 사람한테 무슨 생각을 한 거야.’
“걔 여자 좋아하는 거 같더라?”
은영의 목소리였다.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아이들도 귀를 쫑긋 세웠다.
역시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려 아이들 사이의 여론을 장악하는 데 도가 튼 김은영답다. 친구가 많아 보인다는 것 자체가 권력이고 정당성을 내포한다.
“누군데?”
“알아?”
은영은 슬그머니 나를 쳐다봤다.
“누구처럼”
“아~.”
방관자들이 추임새를 넣었다. 또다시 ‘누구처럼’이라며 조롱한다. 이름이 있고 언급하지 않아도 누군지 다 알지만 처벌하기 어려운 화법이었다. 이제는 내가 아니라 소원이를 지목한다.
내가 누군가와 친하게 지내는 게 그렇게 싫어?
어떤 사람에겐 추억이 가득한 10대 시절이 나에게는 악몽의 무덤이다.
“뭐야? 분위기 왜 이래.”
교실 문을 박차고 소원이 들어왔다. 그녀의 한 마디에 분위기는 더 싸해졌다.
소원이도 기시감을 느꼈는지 내게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난 대답할 수 없었다.
은영은 계속 나를 걸고넘어졌다.
“쟤 예전에 겉돌았잖아, 중학교 때도 찐따였대.”
자신이 승리했다는 듯 깔깔 웃으며 반 분위기를 장악했다.
“야.”
나는 책상을 치며 은영에게 다가갔다.
더 이상당하고 있지 않겠어.
“그런 거 아니거든?”
“뭐가 아니야, 내가 다 봤는데.”
은영은 당황한 것 같았지만, 이내 가식을 떨며 화내도 만만하게만 보인다며 한번 찐따는 영원한 찐따라는 말과 함께 기세를 꺾지 않았다.
“누가 동성을 좋아하든 네가 욕할 거리는 아닌 거 같은데?”
온몸이 떨렸지만, 주먹을 꽉 쥐었다. 긴장하고 흥분될수록 계속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소원이, 나 도와준 고마운 친구야. 너 같은 애가 따돌릴 때 유일하게 다가와 준 친구라고.”
내가 화내고 소리 지르는 모습에 반 아이들 모두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때 우리 반 9번, 무쌍인 금자영이 다가와 애들한테 짜증 내지 말고 좋게 말하라고 했다.
그동안 내가 화풀이 대상이 될 때는 한마디도 안 하다가 이제 나선다고?
“내가 따돌림당할 때 넌 뭐 했는데?”
“뭐?”
“너도 똑같아, 항상 김은영 편만 들었잖아.”
나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도저히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 눈물까지 날 지경이었다.
“방관자 주제에.”
방관하고 거리를 둔다고 죄가 없는 게 아니다.
엮이면 자신만 손해라는 인식 때문에 불의에 나서는 사람이 없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회에서는 오지랖 넓게 이것저것 참견하며 엮이면 피곤할 일이 훨씬 많다. 하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 모습이 얍삽하고 비윤리적으로 보인다.
누군가는 그냥 놔두면 알아서 흘러가고 조용해질 거라고 말한다. 자기 혼자 나선다고 해결되지 않을 걸 아니까. 그러는 사이 피해자는 끝없는 트라우마에 짓눌린다.
이은성은 상황 파악이 안 된 듯 내 말투를 따라 했다.
최보리는 과장되게 박장대소했다.
“이은성, 너 패럴림픽 때 왜 그랬어?”
우리 반은 패럴림픽 하키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다. 단체 사진을 찍어야 해서 은성 옆에 섰는데,
“아 진짜!”
은성은 다른 아이들 옆으로 가버렸다.
한 번은 같은 짝이 된 적이 있는데 질색한 적도 있다.
“야 어디서 쓰레기 냄새 안 나? 내 옆자린 듯~.”
그만하라니까 ‘너한테 한 거 아닌데 찔렸어?’라며 날 이상한 사람으로 몰았다. 한 대 치고 싶었지만, 여자애들 싸움에서 폭력을 쓰면 동정받기 어려워진다.
또 나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심해서 봄이면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참고 참다가 재채기를 작게 한 번 했는데, 은성은 시끄러우니까 꺼지라고 했다.
쾅!
그동안 쌓였던 악감정이 일시에 폭발해 사물함을 주먹으로 치고 밖으로 나와 매점 뒤 계단을 내려가 쓰레기 버리는 곳으로 향했다. 여기 있으면 아무도 못 찾겠지.
이렇게 화를 내니 속이 시원했다.
‘교실로 가면 날 더 욕하고 있겠지.’
후폭풍이 무서웠다.
왜 학교폭력 가해자는 죗값을 치르지 않을까? 피해자는 인생이 무너지는데.
보이지도 아물지도 않은 상처를 홀로 안고 살아가는 그 자체도 용기다. 다시 상처받을까 봐 무서워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 그럴 때마다 극복해야 한다며 강요받는다. 세상은 아직도 옛날 일에서 못 벗어났다며 날 비정상으로 몰아간다.
계속되는 악순환이다.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왜 이러는 거지, 도대체.”
이 좁은 공간, 인생에서 아주 짧은 부분은 학창 시절. 왜 그렇게 누군가를 짓밟고 괴롭히는 걸까?
“괜찮아?”
소원이가 머리 한쪽을 넘기며 내게 다가왔다.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소원은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다독였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소원이는 처음으로 자기 얘기를 해주었다.
“걔네들, 생각이 진짜 짧은 거 같아. 찐따라는 말 유래도 모르면서.”
6ㆍ25 전쟁 당시 일본은 지뢰를 밟고 다리 잃은 군인들을 다리병신이라는 뜻의 '침바(ちんば)'라고 불렀다. 이 발음이 변형되어 찐따가 되었다.
이 뜻을 알아도 지금처럼 가볍게 말할 수 있을까? 저렇게 세상 재밌게 학교 다니는 것 자체가 타인의 숭고한 희생이 있기 때문이다.
소원은 나를 바라보다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나도 여고를 나왔거든? 그때 동성을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어.”
말이 좀 이상한데. 소원이가 전학생이었나?
“나한테 용기 내서 말했었는데 엿들었던 애가 있었나 봐. 그 이후로 찐따, 왕따로 몰렸어.”
소원이는 눈을 감고 그때를 회상했다. 안경 쓴 여선생님이 ‘니들 뛰지 마!’라고 소리치고, 두발규정이 심할 때라 선도부 언니들이 자 가져와서 재고 머리카락 자르고.
내 단짝 친구 송미, 학교 뒤편에서 너만 알고 있으라며 같은 반에 예쁘장하다고 소문난 연희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연희는 단발머리에 눈이 엄청나게 크고 예뻐서 다른 남고 오빠들도 우리 학교에 와서 구경할 정도였다.
마침 그때 정부가 처음으로 수행평가 제도를 도입해 학습 수행 과정을 확대했다. 얘는 학업적인 부분에서도 우수했다. 공부도 잘하고 착하기까지 하니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송미는 연희를 남몰래 좋아하고 있다고 내게 말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송미의 아버지 회사가 부도났다. 당장 다음 달 학비 내기를 빠듯해했다. 그 사실을 알고 부모님께 요청드려봤지만 “먹고살기도 바쁜데 무슨!”이라며 혼쭐이 났다.
다음 날, 담임 선생님께서 송미를 찾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서둘러 채비를 하거라’는 비극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필요할 때 쓰기 위해 모아둔 자금을 동업자가 갖고 도망간 것이다.
송미의 어머니는 망연자실하며 울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외동이라서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힘든 상황에 기댈 곳이 없었다.
같이 죽자며 말하는 어머니의 말에 흔들렸다. 아니 살고 싶었다. 당장 내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 순간 한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연희’다. 내일 죽는 한이 있더라도 연희에게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걸 엿들은 누군가가 연희에게 그 사실을 전했다.
다음 날 학교에서는 송미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자기네들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증거를 잡기 위해 날 소환했다.
“강소원, 너 그때 들었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남 이야기를 마음대로 떠벌리던 애는 친하지도 않은 날 붙잡고 늘어졌다. 당황한 나머지 ‘들은 적 없다’고 거짓말했다.
연희의 부모님이 항의까지 했다. 명문대 유망주이자 학교의 자랑인 애라며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선생님들은 송미 편을 들었지만, 송미는 경멸과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내가 성별이 달랐다면 너와 이루어졌을까?”
소수에 대한 가혹한 시선이 결국, 송미를 세상과 이별하게 만들어버렸다.
“다르다는 이유로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어.”
소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내 소원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지 않는 거야.”
이제는 내가 다독여 주고 싶었다.
소원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은 것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들은 걸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녀도 곁에서 묵묵히 들어주는 존재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왜 소원이가 내게 다가왔는지 이젠 알 것 같았다. 괜스레 미안하고 고마웠다.
“넌 정말 멋있는 사람인 것 같아.”
소원이야말로 멋있고 강한 사람이었다. 남다른 사람, 누군가는 특이하다고 하겠지만 자신의 생각이 확고한 사람은 별처럼 빛난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명분의 비속어가 존재하는 것 같다.
동성을 좋아한다고 해서 문제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동성을 다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친한 사이여도 ‘너 레즈냐? 아님 게이야?’라는 말을 들으면 불쾌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지는 만큼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 개인을 포함해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예전에는 왼손잡이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억지로 교정하려고 야만적인 짓을 했다. 지금은 어느 쪽 손으로 밥 먹든 신경 쓰지 않는다.
현 사회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은 불분명하다. 세부적으로 판단한다면 완벽한 정상은 없다. 산의 정상도 높이와 기울기, 해발고도가 달라 정확히 규정하지 않은 것처럼 신이 존재한다면 모두의 소원을 들어주길, 감히 바랐다.
“그러니까, 너도 살아.”
소원의 촉촉한 눈가로 진심이 느껴졌다.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애정을 쏟아 주는데, 가슴이 울렁였다.
“오늘 큰 장마가 지나면 내일 뜨는 해가 더 예쁘겠다.”
소원은 볼에 이슬처럼 맺힌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녀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눈물자국을 지우기 위해 화장실에서 세수했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출처 불명의 슬픔들을 씻어냈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아직도 이유 모를 미움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다수를 상대하기 지친 나머지 곧장 교실로 향했다.
문을 열려는 순간, 은영과 소원의 대화가 들렸다.
“김지안이 너 갖고 노는 거야, 잘 생각해.”
“그러는 넌 지안이가 니 화풀이 대상이냐?”
은영은 기가 찬다는 듯 비웃었다.
“우리랑 어울릴 기회야. 찐따랑 어울리면 급 낮아지는 거 한순간이야.”
“적당히 해.”
소원은 정색했다.
“이야~. 나도 강소원 같은 친구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은영은 계속 비꼬았다. 소원은 팔짱을 끼고 강경하게 말했다.
“그런 사람을 바라지 말고 네가 먼저 되든가.”
소원은 머리를 배배 꼬며 구부정한 태도로 말했다.
“아~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는구나. 가르쳐줄까?”
소원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모습에 은영은 기가 죽었는지 얼굴이 빨개졌다.
그동안 다른 애들이 대우해 주니 몰랐던 모양이다. 자존심이 생명인 은영은 분을 못 이겨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네가 김지안 엄마냐?”
반 아이들은 구경하기 바빴다.
“그래, 나 김지안 엄마다. 왜!”
반 아이들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려고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었다.
“야, 여기 싸운다!”
옆 반에도 소문이 나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난 소원이가 동물원의 동물처럼 되는 걸 막고 싶었다.
“그만해.”
나는 소원이에게 화를 냈다. 처음 보는 나의 냉정한 모습에 소원이는 당황했다.
“지안아….”
너까지 이런 일 당하는 게 싫어. 비난은 내가 받겠어.
“그만해. 제발, 다 그만하라고!”
하나뿐인 내 편에게 돌을 던졌다.
잠깐 맛보았던 일상의 행복과 이별이구나.
수군수군.
“자기편 들어준 애한테 저러냐….”
안수연도 “거봐, 쟤 저럴 줄 알았지.”라며 몰아갔다. 금자영과 그의 절친 이유민까지. “수연이 꼴 당한다며” 나를 저격했다.
이 상황의 원인은 은영이다. 당장이라도 은영의 뺨을 때리고 싶었다.
“내가 실수로 네 발을 밟은 게 그렇게 잘못한 거야?”
맞다. 사실 나는 은영과 단짝 친구였다. 새 신발을 자랑하고 있던 은영의 발을 밟은 걸 시작으로 내가 만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괴롭힘 당하기 시작했다.
“복수는 안 하겠지만 김은영 너, 평생 용서하지 않을 거야.”
수업 전에 핸드폰을 걷으면 나한테만 성을 붙여 화냈던 것.
조별 과제 할 때 예의 지켜 이야기해도 싸한 말투로 따돌린 것.
프린트물을 일부러 던진다거나 새로 산 하복에 걸레를 던진 것.
급식도 못 먹게 하고, “자리 있어”라며 내 의자를 뒤로 젖힌 것.
용기 내서 급식받으러 갔더니 식판을 확 밀어 내 머리에 부은 것.
“내가 아팠던 만큼 너도 돌려받자.”
울부짖으려던 찰나 마지막 7교시 종이 울렸다.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자 약속했다는 듯 상황이 종료됐다.
소원이는 고개를 돌려 창문만 바라봤다.
나는 먼저 말 걸기가 조심스러워 교과서로 얼굴을 가렸다.
수업에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주인공 인희가 가족에게 이별을 고하는 모습을 다루었다. ‘엄마 연수 사랑해’ 그리고 ‘엄마 얼굴은 잊어도 네가 배 속에서 태어난 건 잊지 마’라는 대사에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았다. 내 얘기 같았다.
길게 느껴진 50분 수업이 끝났다.
나는 다들 종례 준비를 할 때 소원에게 용기 내 말을 걸었다.
“소원아.”
“왜?”
소원이는 상처받은 표정이었다.
감정이 앞서는 상황에서 대화를 나누는 건 관계에 독이 될 거 같았다.
카카오톡으로 사과하고 싶었다. 번호를 물어봤지만, 대답은 뜻밖이었다.
“나 휴대폰 없어.”
‘더 말 섞기 싫어서 핑계 대는 건가?’
어안이 벙벙한데, 소원이가 ‘먼저 가볼게. 내일 보자’라며 자리를 나섰다.
***
집에 가는 길.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집에 마음이 더 복잡해져 서둘러 컵에 얼음을 가득 채워 물을 마셨다.
컵을 치우다 우연히 사진 한 장이 발에 밟혔다.
사진에는 젊은 시절의 임신한 엄마와 아빠가 있었다.
[우리 세 가족 건강하고 행복하기]
우리 셋의 흔적이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구나.
“나 오늘 너무 힘들었어.”
엄마 아빠 품에 안겨 울고 싶은데 어디에도 내 편이 없어.
야속해서 사진을 품에 안고 한참 울었다.
“엄마, 왜 나만 두고 갔어?”
내 편은 없는 암울한 세상이 밉다. 학교 끝나고 비 오면 부모님이 데리러 와 주는 친구들이 부럽다. 참관 수업 때마다 우리 엄마라며 자랑하는 모습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같이 인사드리는 와중에도 엄마가 있었으면 바랬다.
중학생 때 처음 생리가 터져서 놀라고 무서웠다. 보건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바쁘다며 거절당했다. 계속 피가 흐르는 나를 지나가던 영어 선생님이 도와주셨다.
엄마가 있었다면 같이 떡볶이도 먹고 빙수도 먹으며 학교에서 힘든 일 있었다고 다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손잡고 함께 서울 야경도 구경하고.
“처음으로 친구 사귀었는데 싸웠어.”
엄마 사진을 꼭 잡고 빌었다.
잘 되게 해달라고, 이젠 행복하게 해 달라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