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일과 후엔 이렇게 또 다른 분들과 어울려 판을 벌이시는군요?”
내가 초임책임자로 처음 부임했던 강서지역 @@@지점으로 다시 복귀하여 부장이란 직책을 달고 영업에 매진하던 시절이었다. 오늘 우리 모임을 목격한 같은 지점 심 과장이 한마디 보탰다. 퇴근 후 점포 뒤편 단골 한정식집에서 우리 범 자금부 팀 멤버들이 고스톱판을 벌이고 있는 자리에서였다. 나는 이 심 과장의 멘트를 질책이 아닌 작은 칭찬으로 들었다. 일과 후에도 인맥관리 내지 일종의 영업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이해를 한 직원의 평가로 보였다.
“그래도 영업을 쭈욱 하시던 분들은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지 않나요?”
내 연고법인 공기업체 자금팀장이 지점장과 내게 한마디 툭 던졌다. 나는 40대 중후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 팀장이 그간 자신들 거래처 직원들의 과거 이력을 죽 살펴온 살아 있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로 보였다.
“금융기관 영업직원들은 ‘월화수목금금금’을 이어가야 하는 숙명을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닙니까?” 외부에서 영입된 우리 회사 어느 지역본부장의 평소 소견이었다. 근무일이 아닌 주말에도 영업실적을 올리기 위한 활동을 계속해야 살아남는다는 어쩌면 서글픈 현실을 직시한 면이 있었다.
영업점근무 경력은 주특기가 될 수 없고, 사원시절 처음 본부로 진입 시 근무한 부서가 직장생활 내내 주특기가 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쩌다 보니 영업직이 내 평생의 본분이 되었다.
직원이 강원도나 제주도등 일천 리 이상의 먼 곳으로 날아가더라도 따라나설 수 있는 고객과 자산이 얼마나 되느냐가 영업직원의 경쟁력의 척도였다. 평생충성고객의 확보여부가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의 관건이었다.
우리 회사 이른바 VIP PB 제도란 것은 우주(세상)에서 가장 불공정한 제도임이 분명했다. 과거 ’ 석사장교제도’는 5 공비리의 전형적인 한 꼭지였다. 내가 만약 대법관이 되어 위헌법률심판을 할 수 있는 자리에 가게 된다면 나는 이 제도야말로 헌법상 평등권을 위반했다고 주저함이 없이 결정을 내릴거란 한 부장판사의 지적이 떠올랐다. VIP PB 제도 역시 불공평성에선 역시 석사장교제도에 못지않았다.
이런 VIP팀장 대비 자산의 열세등을 극복하기 위해선 보다 강한 영업마인드를 더욱 확실히 장착할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젊은 여직원들에 완장을 채워주고 우량고객들을 노골적으로 밀어주는 제도였다. 게다가 특정한 영업점에 계속해서 장기간 근속의 기회를 주고 전보 시에도 근거리 점포로 우선 배치했다. 이러다 보니 고객이 관리자를 따라 대거 이동하는 폐해가 비일비재했다. 자신들의 업무능력이나 지식, 고객 상담능력이 뛰어나다는 착각을 하도록 도와주는 제도였다. 그러니 이 PB팀장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의 점포장도 우습게 아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타직원 대비 상대적으로 월등한 영업실적을 거양하여 엄청난 인센티브를 챙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땅 짚고 헤엄치기에 다름이 아니었다.
이들은 남직원들과 달리 병역의 의무에서 자유롭다 보니 같은 연배의 남직원들보다 승진 등에서 엄청난 혜택을 받는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이는 남직원들에 관한 엄연한 역차별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는 상대적으로 고령인 남자직원들을 밀어내는 제도로 악용되고 있었다. 본래의 도입취지가 그것일 수 있어 보였다. 직장에서의 ‘메기’ 역할을 맡기는 것이 분명했다. 때론 실적이 부진함에도 오직 VIP PB 팀장을 역임했다는 이유만으로 희망퇴직 대상에서 빼주는 어마어마한 혜택도 누렸다. 상대적으로 고령 장기근속한 남자직원들을 우선적으로 밀어내는 구조조정수단의 하나로 일정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내가 연고가 있는 지방점포 지점에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운전을 취미삼은 외곽법인 영업활동’ 주요 영업타깃은 새마을금고, 신협, 기타 공기업 등이었다. 방문시마다 내 애마 하얀색 아반떼엔 늘 판촉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한 곳을 방문할 때마다 최소 두 개 내지 두 세트를 전달하는 것이 요령이자 작은 영업노하우였다. 적어도 이사장과 실무책임자의 몫을 챙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더하여 현재는 거래가 없지만 향후엔 거래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잠재고객에게도 과감히 최소한 2개(세트)를 건네기도 했다.
외부에서 영업점 내로 결려오는 ‘인콜’의 조기수신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일부 양아치 같은 직원들은 이를 두고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욕심이 너무 과하다고 빈정거리기도 했다. 이런 코로를 수신하지 않고 패싱 하던 직원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들은 상담능력이 없음을 자인하거나 기본직무를 유기하는 것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았다. 때론 이런 인골을 적극적으로 케치하고 소통을 이어가다 보면 대박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이런 경우엔 양아치군에 속한 직원들은 그 비난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영업마인드가 부족한 중생들의 적절치 못한 시기와 질투의 발현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