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이 피었습니다. 아주 알록달록합니다. 노랗고 빨갛고 파랗고 거무스름하기까지 하네요. 다행입니다. 무지개색은 면했으니까요. 거울 속 제 뒷모습에 쓴웃음을 지어졌습니다.
며칠 전 평소와 다름없는 새벽 시간을 맞았습니다. 간단 씨를 깨우러 아무거나 군의 방(아직 잠자리 독립이 안 됐어요.)으로 들어가는 순간 휘청했습니다. 한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허공을 거닐다 육중한 몸이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손을 뻗었습니다. 뻗은 손도 힘이 안 들어갔습니다. 갑자기 손과 발이 주인의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투쟁이라도 벌린 건지요. 허공을 향해 지푸라기라도 잡을 요량으로 허둥거리다 2층 침대 계단 난간을 잡으려다 몸이 반바퀴 돌았고 등에서부터 엉덩이로 계단을 제대로 훑으며 방바닥에 착지했습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고통이 대단했습니다. 입 밖으로 말도 뱉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한참을 그 자리에 누워 아픔이 잦아들기를 기다렸습니다. 5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정신이 깨어나는 느낌과 동시에 서러워졌습니다. 요란하게 넘어졌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도 질렀는데 두 남자는 세상 편안하게 잠을 잡니다. 한 집에 살지만 이렇게 골로 가도 모르겠구나 싶더라고요.
겨우 정신을 차리고 간단 씨를 깨워 밖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조금 전 있었던 상황을 이야기하며 섭섭한 마음을 내 보였습니다. 오히려 간단 씨가 더 황당해했습니다. 도저히 넘어질 이유가 없는데 이해되지 않는다면서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순간 일어난 일이라 저도 상황이 파악되지 않습니다. 요즘 매일같이 제가 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신이 잠시 외출 중이란 푯말을 걸어야 할 판입니다.
간단 씨는 상처 난 곳에 약을 발라주며 큰 상처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아팠습니다. 붓기도 제법 느껴졌고 살짝만 스쳐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듯했습니다. 샤워를 위해 욕실 거울 앞에 선 순간 놀랐습니다. 등에서부터 엉덩이까지 2차선 고속도로가 생겼고 주위로 피멍이 들었습니다. 입고 있었던 잠옷과 속옷까지 찢어졌고요. 근데 큰 상처가 아니라니요. 간단 씨의 말에 상당히 섭섭했나 봅니다. 그때부터 몸의 컨디션은 바닥을 기어 다니다 주말인 오늘 절정을 맞았습니다.
미열이 계속 기분 나쁘게 붙어 있습니다. 온몸은 간밤에 두들겨 맞은 것 같이 아프고 무겁고요. 기침까지 제대로 몸살감기에 걸린 것 같습니다. 아침에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잠들었다 일어나니 머리맡에 감기약이랑 새우깡 한 봉지가 놓여있습니다. 아무거나 군이 엄마가 좋아하는 것 먹으면 기운 차릴 것 같아서 사 왔다는군요. 역시 사람을 위로할 줄 아는 아이입니다.
간단 씨가 사 온 쓴 약 덕인지 아무거나 군이 사 온 짭조름하고 유난히 더 맛있었던 새우깡 덕인지 오후는 한결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오전까지 아팠던 제가 이상하다 할 정도였습니다. 아무튼, 저는 후자일 거란 확신을 가집니다. 위로는 그 사람의 내면을 알아채는 거니까요. 새우깡이 약보다 나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