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언가를 만들어 낼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싶다면, 무언가를 창조해야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생산'을 본능적으로 갈망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산이란, 나를 표현하는 창조 행위를 뜻한다. 즉 나를 닮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물질과 비물질로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의 영혼을 닮은 그 무언가를 생산하는 것이다. 그것이 맛있는 음식이 될 수도 있고, 책이 될 수도 있으며, 독창적인 서비스일 수 있고, 일상적인 제품이 될 수도 있다.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은 나의 삶과 맞닿아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낼 때, 충만감을 느낀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생산자보다는 소비자가 되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마치 '소비할 수 있는 능력'에 무한한 행복과 기쁨이 있을 거라 유혹하는 것이다. 반면에 '만드는 일'은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불확실하다며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정말로 행복은 소비에 있는 걸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이는 우리의 직감으로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소비는 행복의 원천이 아니다. 그저 갈망의 충족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소비는 삶을 좀 더 편안하게 해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생산은 자아실현과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독일계 미국인 정신분석학자이자, 휴머니즘 철학자,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말했다. " 인간은 소비하는 인간으로 남아있는 한, 자신의 공허함과 무력감을 결코 극복할 수 없다. "
따라서 진짜 행복한 사람, 순수한 기쁨을 누리는 자는 소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의 삶을 살아간다. 칭조하는 행위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본능이자, 존재 이유가 되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이 행복의 근원이라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몰입이 인간을 황홀경의 상태로 빠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몰입은 집중하는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어 시간의 흐름도, 주변의 소음과 공간조차 잊어버리는 완벽한 물아일체의 상태를 뜻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마치 물이 흐르듯이 세상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칙센트미하이에 따르면, 이 몰입 상태는 그 자체로 강력한 보상이 된다고 한다.
우리는 '결과물'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과정' 자체에서 오는 순수한 즐거움 때문에 창작에 빠져든다. 화가는 캔버스에 색이 얹어지는 그 순간에, 작가는 문장이 이어지는 그 순간에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무언가를 만들어내면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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