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대처법
모두에게 친절하려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마라.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남에게 헌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
(Baltasar Gracián, 스페인의 철학자)
진실되지 않은 사람에게 함부로 호의를 베풀어서는 안 된다. 이는 단순히 호의를 무시당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기준 없는 호의와 친절은 악인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악인에게 사로잡혀 생존의 문제까지 직결될 수 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남에게 친절하라"라고 배운다. 타인에게 베푸는 호의는 곧 나의 인격이며,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등불이라고 믿는다. 내가 진심을 다해 상대를 대하면, 언젠가 상대방도 나에게 진심으로 보답할 것이라는 '선의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것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아름다운 윤리 도덕이다.
그러나 현실은 동화책과 다르다.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타인의 친절을 '감사함'이 아닌 '약점'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런 '호의의 간극'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진실되지 않은 사람들은 당신의 호의를 당연한 권리인 양 착취하고, 가면 뒤에 숨어 교묘하게 이득만 취한다.
그들에게 쏟은 정성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 과연 맹목적인 친절이 진정한 미덕일까? 오히려 그것은 그들의 기만적인 행동을 강화하는 '무익한 행위'가 아닐까? 따라서 착한 사람에게 필요한 진정한 지혜는 '무조건적인 친절'이 아니라 '사람을 가려 베푸는 분별력'이 된다.
진실되지 않은 사람에게 호의를 거두는 것은 냉정함이 아니다. 그것은 착한 당신의 지키는 현명한 태도이다. 또한 당신을 진정으로 아껴주는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기 위한 용기 있는 선택이다. 이제 우리는 친절과 호의가 독이 되지 않도록, 나르시시스트와 악인들을 솎아내야 한다.
심리학으로 본 '착취의 메커니즘'
많은 사람들이 "내가 더 잘해주면 저 사람도 변하겠지"라고 기대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심리학적으로 진실성이 결여된 사람들, 특히 나르시시스트 성향이나 마키아벨리즘(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성향)을 가진 이들은 타인을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도구'로 인식한다.
애덤 그랜트 펜실베이니아 와튼 스쿨 교수의 저서 《기브 앤 테이크》에 따르면, 사람은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1. 기버(Giver): 대가 없이 베푸는 사람
2. 테이커(Taker):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사람
3. 매처(Matcher): 받은 만큼 돌려주는 사람
여기서 문제가 되는 유형은 테이커다. 즉 진실되지 않은 사람의 전형적인 유형이 '테이커'인 셈이다. 이들은 타인의 호의를 '내가 잘나서 받은 당연한 대우'로 받아들인다. 타인의 호의를 응당 받아야 할 '당연함'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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