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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y 15. 2023

우리 남편은 공무원이라서요

 소방서 구급대 근무는 4조 2교대로 돌아간다. 하루는 주간, 다음날은 야간, 야간 근무 후 이틀은 쉰다. 한참 손 많이 가는 시기에 애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많아서 좋다. 하지만 매일 같이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딸내미 등하교를 시키고 있으면 으레 집에서 노는 남편이구나 하는 오해를 산다. 엄마들이 직접 이야기는 않아도 시선이 느껴진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뭐 못 볼 거 본 사람처럼 호다닥 시선을 피한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비슷한 또래의 자식 키우는 다른 소방관 동료도 그렇단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학교갈 땐 꼭 깨끗하게 차려입고 간다고(그게 더 노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


 아침시간에 두 딸이 모두 학교와 유치원을 가기 때문에 네 식구가 복작대며 집을 나선다. 첫째를 먼저 학교에 데려다주고, 남은 세 식구가 둘째 유치원으로 향한다. 그러다 얼마 전에는 둘째의 유치원 친구와 그 아이 엄마를 가는 길에 만나서 함께 등원한 일이 있었다.

 유치원 체육대회 참석하세요? 자연스럽게 주워섬기는 양이 말 깨나 하는 사람 같았다.

 네. 안 가고 싶었는데 오라네요.

 딱 봐도 운동 잘하실 것 같아요. 슬쩍 훑더니 말했다.

 아뇨, 응원단장 해달라더라고요.

 아아. 일을 그럼, 밤에 하시나 봐요? 이번에는 아내 쪽을 보며 물었다.

 네. 밤에도 하고 낮에도 하고 그래요. 답하고는 아내는 별 말이 없었다. 그렇게 침묵을 지키고 있으려니까 친구 엄마가 또 한마디 했다.

 우리 남편은 공무원이라서요, 체육대회 못 갈 것 같아요.

 그러시구나, 같이 오면 좋을 텐데.

 그러게 말이에요. 저도 낮엔 학생들 과외하느라 바빠서, 다행히 그날은 수업이 없네요.

 대단하시네요.

 뭘요. 그럼 체육대회 날 봬요.

 네. 그때 봬요.


 아내와 둘만 남아 걸어오는 길에 물었다. 왜 아무 말 안 했어?

 뭘?

 나 뭔 일 하는지.

 얘기하는 거 안 좋아하잖아.

 그건 그렇지. 없던 눈치가 생겼네?

 뭐래.

 예전에는 우리 남편이 공무원이란 얘기가 아내의 입에서도 종종 나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슨 공무원이냐 물으면 아내는 소방관이라 답했고, 훌륭한 일 하시네요! 아니면 위험해서 걱정되시겠어요! 두 가지 반응이 돌아왔다. 훌륭한 일 한다는 소리는 내가 듣기 싫어하고 위험하단 말은 아내가 듣기 싫어한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그냥 입을 다문다.


 소방에 벼슬아치 ‘관’ 자, 즉 나랏일 하는 공무원의 의미가 붙은 역사는 오래지 않았다. 옛날 어른들은 그냥 포수, 투수하듯이 소방수라고 했다. 소방은 어디 붙여 놓아도 애매한 느낌이었는지 한때는 경찰 조직 밑에 편성되기도 했고, 면사무소의 말단 직원들이 현재의 소방관들이 하는 일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조직의 태생부터가 낮은 음자리다. 예로부터 펜 깨나 굴렸던 ‘관’의 사회에 소방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소방수는 소방관이 되었고, 조직원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최근엔 국가직 전환까지 되었다. 물론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된다.

 머리에 맞지 않는 감투는 소방 조직의 근본을 뒤흔들었다. 조직 내부에 전형적인 관료사회의 그림자가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문서를 위한 문서, 행정을 위한 행정이 당연한 듯 자리를 잡았고, 배 나온 소방관들도 거기에 비례해서 늘어났다. 각 관할의 수장들은 임기를 마치기 전에 마치 정치인들 하듯이 성과를 내려고 아래 직원들을 잡아 돌렸다. 우리끼리 쉬쉬하기 때문에 소방관을 영웅시하는 국민들은 알 길이 없는 민낯이다.


 군인이 전쟁에 대비해 육체와 정신을 철저히 무장하듯, 소방관은 불 잘 끄고 사람 잘 구하는 걸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관(官)의 멋에 취해서 우리의 뿌리인 수(手)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와이프가 우리 남편 공무원이라 말 안 해도 섭섭하지 않을 만큼, 깊고 낮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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