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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냄새나는 박물관

프랑스 파리의 하수도박물관

오랫동안 파리는 내게 해로운 도시였다.

악취와 피부병, 강제 모금하는 사람들을 만난 기억들은 도시 자체에 환멸을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하철과 길거리를 걸으면 찌든 냄새에 눈살을 찌푸렸고, 에펠탑에서 우연히 만난 청년이 건넨 와인을 마시고 하루를 꼬박 앓았다. 루브르로 향하는 길목에선 갑자기 수상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강제로 서명하고 기부금을 종용받았다. 다행히 근처를 지나던 커플이 몸으로 막아주고 ‘얼른 도망쳐요!’라고 소리쳐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도망치듯 떠난 후, 파리는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도시로 새겨졌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흘렀다.     


많은 것이 변했다. 셰익스피어를 가장 좋아하던 영문학도는 대학원에 가서 인류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박물관에서 학예사로 일하게 되었다. 이미 취직한 후에는 다른 박물관이 눈에 들어올 일도 별로 없지만, 신규 박물관 건립 프로젝트 참여를 계기로 시야가 넓어졌다. 국내외 다양한 사례를 참고하고 답사를 다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눈에 띄게 우수한 박물관은 죄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건지. 왜 하필이면!      



# 파리의 지하에는 또 다른 파리가 있다.    

 

답사차 이번에 찾게 된 박물관은 파리의 지하에 있었다. 빅토르 위고의 표현을 빌리자면, “파리의 심연 속”에 있다. 리뷰를 미리 찾아봤을 때, 하수도박물관은 냄새가 난다고 했다. ‘그래도 박물관인데, 얼마나 냄새가 나겠어?’라는 안일했던 마음과, 마스크를 깜빡 잊고 챙기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다.   

  

티켓 오피스 왼쪽으로 들어가면, 좁은 계단길이 나온다.


지상 1층으로 나와 있는 매표소는 박물관의 극히 일부 공간일 뿐이다. 이곳에서 전시 설명을 담은 QR코드 정보를 제공받고, 티켓을 받으면 지하로 내려간다. 나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면서 19세기 초, 같은 길을 걸었을 장발장을 떠올렸다.


장발장은 시체처럼 축 늘어진 마리우스를 어깨에 둘러메고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미끄럽고 역한 냄새가 나는 파리의 하수도였다.


계단 끝에는 티켓 바코드를 인식하고 문이 열리는 개찰구가 있었다. 그 너머에는 파리의 지하에 존재하는 또 다른 파리의 세상이었다. 따뜻하고 기분 좋은 센강변의 정취는 온 데 간 데 없고, 축축하고 눅눅한 공기가 관람객을 맞이했다. 냄새는 처음에 약간 역한 정도였지만, 깊숙이 들어갈수록 완전한 악취였다.    


입구에 들어가면 등장하는 전시실. 전시공간이 따로 구분된 것은 아니지만, 입구 앞 공간에 가장 많은 패널이 붙어있다.

  

놀랍게도 장발장의 시대에도 파리엔 하수도가 있었다. 

1862년 발간된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 속에서 하수도는 장발장에게 고난과 시련인 동시에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구조할 수 있었던 장소였다. 어쩌면 빅토르 위고는 하수도를 소설 속 배경으로 삼은 최초의 작가인지도 모른다. 그에게 하수도는 ‘파리 속의 또 다른 파리’로서 도시의 거리와 골목을 복제했지만 어둡고 음습한 면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공간이었다.  

    

물론 19세기 초반 당시에는 하수도의 길이가 아주 짧았다. 1800년에는 55만 명의 파리 주민을 위해 16km 길이의 하수구가 건설되었다. 그리고 1833년부터 본격적으로 파리 길거리와 분수대의 물을 한데 모으는 것을 목표로 하수 시스템을 개발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 파리는 심각한 위생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특히 다른 도시에 비해 파리의 사망률은 굉장히 높았는데, 바로 콜레라 때문이었다.   

  

19세기 초, 오물로 뒤덮인 파리 길거리에선 돈을 받고 업어주는 직업도 있었다.

 

콜레라는 위생과 관련된 질병이다. 물을 잘 끓여 마시기만 해도 예방이 가능하다. 그러나 파리의 길거리에는 오물과 분뇨로 가득 찬 물이 둥둥 떠다니고, 산업폐기물이 강으로 흘러나가고, 공장의 검은 연기는 대기오염을 유발했다. 얼마나 길거리가 지저분했는지, 길을 걸을 때 발목까지 차오르는 더러운 물을 피하려고 업어서 이동시켜 주는 일거리도 있었다.     


19세기의 파리 사람들은 왜 오물을 끌어안고 살았을까? 

재미있게도 그들은 집에서 생기는 오물을 ‘거름’으로 여겼다. 다시 활용할 가치가 있는 자원을 그냥 버리게 되면 손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오히려 하수도 시스템을 통해 버려진 오물은 농업용 관개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파리 사람들은 폐수 처리가 곧 토지를 비옥하게 만든다는 걸 금방 알게 되었다.     


체계적인 상하수도 시설이 만들어지고 난 뒤, 파리는 전염병과 더러운 길거리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오늘날 파리의 시스템을 구축한 오스만 남작은 1854년 유진 벨그렁(Eugène Belgrand)이란 인물을 파리 상하수도 국장으로 임명했다. 엔지니어였던 유진 벨그렁은 1865년부터 파리에 물을 공급하는 샘물 집수지를 설치하고, 항상 깨끗한 물을 도시로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물을 공급하고, 다시 회수하고, 또 분배하는 순환이 가능했다. 그가 만들었던 하수 정화처리 장치는 오늘날까지도 사용하고 있으니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길거리에서 발생하는 물을 지하로 모으는 지하수도를 보여준다.
하수도를 개발할 당시 일했던 노동자들의 영상이 전시실에서 반복된다.
하수도 작업장은 더럽고 위험한 장소였다. 노동자들은 복장과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일했다.


19세기 하수도는 장발장의 탈출로 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렸던 1867년 이후, 하수도는 관광지처럼 개발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지하세계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들은 마차, 전기보트, 자동차를 타고 지하도를 산책했다. 상상 속 동물이 사는 곳, 지상의 골목길을 닮은 또 다른 거리,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의 뒤집힌 세상(The Upside Down)처럼 환상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1867년이라면, 프랑스 해군이 강화도를 침략한 병인양요 바로 다음 해인데, 조선은 아직도 지하에 머물며 프랑스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상이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1975년 정식으로 개관한 하수도박물관은 관람객이 500m 정도를 걸을 수 있게 한다. 걷다 보면 미로 같은 통로와 들쑥날쑥한 전시 때문에 혼란스럽다. 사실, 문제는 전시가 아니었다. 어둡고, 냄새나고, 축축한 공간에서 혼자만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무서워졌다.     


핑크색 괴물이 하수도에 살고 있는 엽서 속 우르바누스의 일러스트. 귀엽다.


그저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찬찬히 전시 패널을 더 읽어보고 싶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출구 바로 앞에 있는 뮤지엄샵이 발목을 잡았다. 나는 박물관에서 개발한 상품을 너무나 좋아한다. 어떤 박물관이든 꼭 한 가지 이상 굿즈를 구매한다. 탈출하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직원이 나에게 손짓을 했다. 원래 어린이에게만 증정하는 기념품인데, 하나 골라서 가져가라고 한다. 거리 예술가 코덱스 우르바누스(Codex Urbanus)가 그린 일러스트가 있는 엽서였다. 이게 바로 성서에 등장하는 바다괴물, 리바이어던일까?



# 하수도박물관 앞엔 알마교가 있다.    

  

지상으로 올라오니 장발장의 1862년으로부터 84년이 흘렀다.

하수도박물관에서 빠져나오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묵묵히 흐르는 센강 위로 작은 다리, 알마교(Pont de l'Alma)가 버티고 섰다.    


하수도박물관에서 바라본 알마교의 모습이다.

 

고독한 의사는 위태롭게 비틀거리는 한 여인의 팔을 붙잡았다.
“분명히 저기로 뛰어들려는 거지요?”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의사는 계속해서 말했다.
“11월은 너무 일러요. 물이 몹시 차요.”
의사는 성냥불을 켜고 알제리 외인부대의 검은 담배를 폈다.
여인은 그에게 담배 한 대를 부탁했다.


1946년 발간된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Arc de Triomphe)>의 첫 장면이다. 센강에 몸을 던져 자살하려는 조앙 마두, 그리고 나치 강제수용소를 피해 파리에 밀입국한 외과의사 라비크는 이곳에서 처음 만났다. 알마교를 건넌 후, 방사형으로 뻗어 나온 길목을 하나 골라 걷다 보면 개선문이 나올 것이다.   

  

알마교는 나폴레옹 3세가 크림전쟁에서 러시아에 승리한 걸 기념하며 만든 다리였다. 전쟁에서 공을 세운 군인들의 동상을 장식했는데, 홍수 수위를 측정하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다. 물이 범람하면, 하수도박물관도 덩달아 출입이 금지된다.     


지상에 나와있는 하수도박물관 외관이다. 1층엔 매표소뿐이다.


그로부터 다시, 77년이 지났다.

2023년에 만난 파리는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듯했다. 이제 지하철에서도 예전만큼 냄새가 나지 않고, 강제 모금을 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일도 없었다. 코로나 감염병 이후, 부랑자나 야바위꾼도 줄었다고 하니, 관광객에게 좋은 소식이다. 마치 하수도를 개발하고 콜레라가 사라진 것처럼, 코로나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마스크도 없이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는 파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 박스 안은 소설 속 장면을 재구성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하수도박물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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