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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겐 테토 현상에 대한 단상

소외된 에겐, 여성혐오인가?

by 최그린

요즘 어딜 가나 에겐, 테토 하는 통에 은은하게 스트레스다. 자신의 성격을 규명하고 분류하려는 수요가 강하다는 것은 MBTI 유행부터 자명하지만 왜 갑자기 16가지에서 2가지로 퇴화해 버린 건지. 잠깐 고개를 들 뻔했던 사주 유행이 차라리 낫겠다. 여성호르몬과 남성호르몬으로 명명되는 에겐/테토의 분류가 비과학적이고 성 이분법적이라는 점은 너무 당연해서 굳이 짚어낼 필요도 없지만, 주변인들이 이 분류에 대해 떠드는 것을 지켜보면 흥미로운 현상이 관찰된다.


20250610500006.jpg @nezzo-toon(왼쪽)과 @poomang-official


여초 환경에 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이 테스트를 권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100% 여성인 동시에 테스트에서 '테토' 라벨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여성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살짝 희화화하듯 과시하며, 에겐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여성상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같은 '테토녀'들끼리 재미있게 이야기한다. '에겐녀'가 자신이 얼마나 에겐력이 높은지 이야기하거나 테스트를 권하는 모습은 본 적 없다.

남성들 또한 자신이 '테토'임을 은근하게 내보이고 싶어 한다. 정확히는 '에겐남'으로 불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테토남들이 테스트를 권하지 않는 이유는 테스트에 대해 적극적으로 떠벌리는 행위가 조금 에겐스럽다고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최근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 햇살이 뜨거워도 양산을 쓰고 다니면 에겐남처럼 보이기 때문에 양산을 기피하는 양상이 있다고 한다. 인스타그램에서도 "남편이 ~하면 에겐남 같아 보인다고 싫대요" 라는 글들이 왕왕 보이는 걸 보면 '에겐남은 안돼!' 라는 신종 맨박스가 생겨난 듯하다.


에겐남을 환영하는 단 하나의 집단은 앞서 서술한 '테토녀'들이다. 자신의 테토력을 자랑하는 테토녀에게 남편 혹은 남자친구가 있으면, 그의 테스트 결과가 '에겐남'이었을 경우 수다는 풍성해진다. 자신은 테토인데 남자 쪽은 에겐이기 때문에 얼마나 전통적 성역할이 뒤집어져 있는지 각자의 성향을 대조적으로 묘사한다. 남성들은 에겐남이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기에 이러한 성향은 남성들의 파트너들에 의해 떠벌려진다.


주위에 남성 표집단은 많지 않지만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남성들도 대체로 테토녀보다는 에겐녀를 이상형으로 꼽는 것 같다. 내조와 섬세함으로 대표되는 '여성성'을 상대에게 원하지만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약간의 수치를 동반하는 일이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고 있다. 여성성을 열등하고 보조적인 것으로 여기는 '너는 남자도 아니다' 시절에서 몇 걸음 벗어나지 못했구나. MBTI가 그립다.


*개인에 따른 예외는 있을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흐름에 대해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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