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배경음악. 네모의 꿈
*들으며 읽으시면 더 좋아요:)
나의 세상은 언제나 네모였다.
날카로운 직선과 각진 모서리로 빚어진, 단단하고도 방어적인 세계.
어릴 때부터 유독 네모난 공간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네모난 책상과 창문, 그리고 닫힌 문 뒤의 내 방. 그런 공간에서 나는 안전을 찾았다. 틀을 정해 관계를 맺는 것이 편했고, 세상과 사람 사이에 경계를 두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20대까지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곡을 꼽으라면 늘 ‘네모의 꿈’을 언급했다.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군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건지 몰라."
어린 시절부터 듣던 그 가사는 나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주고 있었다. 세상이 둥글다 해도, 내가 속한 세상은 분명 네모였다. 직선과 각이 만들어내는 안정감이 편했고, 그 속에서 숨쉬었다. 난 경계를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네모의 꿈을 꾸고 있었다.
대학 시절, 사진 수업에서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주제로 과제를 받았다. 난 네모난 창문과 건물, 사물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도시를 이루는 대부분의 풍경은 각진 모양이었다. 네모난 프레임 안에 그 세상을 담으며 나 역시 직선과 각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속해 있다고 느꼈다.
내 인간관계도 네모와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과는 각 꼭지점에 위치한 채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계를 맺었다. 직선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그 선 사이의 거리만큼을 계산하며 적당한 위치를 유지했다. 네모의 안정감은 나를 보호했지만, 동시에 사람들과 연결되지 못하게 만들었다. 관계는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쉽게 좁혀지지도, 서로 연결되지도 못한 채 끝이 났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네모의 세상에 작은 휘어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삶이 가져온 작은 충격과 관계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예전의 나는 갈등을 피하고, 틀 속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길 원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논리로 상황을 해결하고자 했지만, 인생은 논리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우리는 각기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서로의 가치관과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면 관계는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그 불편함은 나를 더 유연하게 만들었다. 갈등을 허용하니 내 안의 모난 부분들이 조금씩 다듬어졌고, 둥글게 변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심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신경망이 점차 변화한다는 것이 밝혀져 있다.
우리의 사고 패턴은 주변 환경과 관계에 따라 변할 수 있다.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은 뇌의 연결망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게 돕는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와 이해 속에서 점점 경계선이 흐려지고, 마침내 둥글게 깎여 나갔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직선만으로 나를 지키려 하지 않는다. 그 세계가 주는 안정감도 있지만, 곡선이 만들어내는 유연함과 아름다움도 알게 됐다. 인생은 단순히 일직선으로만 뻗어나가는 여정이 아니다. 다양한 굴곡이 더해지면서 흥미롭고 다채롭게 펼쳐진다. 우리는 직선과 곡선이 함께 있는 길 위에서 걸어가고 있다.
“잘난 어른의 멋진 이 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네모난 아이가 꾸던 꿈은 사실 둥근 세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굴곡을 만나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둥글게 깎여 나가는 과정을 겪으며, 이제 나는 더 많은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지금도, 앞으로도
나의 세상은 둥글다.
배경음식. 아보카도샐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