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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담 Nov 23. 2024

[한글로 한,글쓰기#5] 비움으로 나를 채우다

정리 후에 남겨진 것들

배경음악. 최유리 [생각을 멈추다 보면]

* 들으며 읽으시면 더 좋아요:)




나는 참 많이 모아둔다.
이를테면 작은 가격표부터 채 몇 번 찍히지 않은 카페 쿠폰, 손이 닿지 않은 채 쌓여가는 명함들까지.


누군가는 쓸데없다고 여길 지 모르지만, 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있다. 가격표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떠올리게 하고, 영수증은 지나간 소비를 돌아보게 한다. 카페 쿠폰과 명함은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나 기억을 불러온다.


그런데 물건이 늘어나면서 내 주변은 점점 좁아졌다. 나름의 원칙을 붙여 쌓아온 것들이 어느새 이유 없는 짐처럼 느껴졌다. 그제야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건을 정리하며 나를 알아가다

모아둔 물건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비슷한 패턴이 보였다. 옷장에 줄지어 있는 비슷한 색깔의 옷들. 주방 한편에 놓인 간식과 냉장고 속 재료들.

나는 무채색과 청색 계열을 좋아하는구나.
구황작물과 새콤한 맛을 선호하는구나.


물건 정리는 단순히 공간을 비우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필요 없는지,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발견한 취향은 물건의 선택 기준을 넘어, 나의 삶을 정리하는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취향이 보이니 선택은 쉬웠다. 필요 없는 물건은 과감히 떠나보냈다. 자연스럽게 내게 진짜 소중한 것들만 남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물건 정리만큼 복잡하고 뒤엉킨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내 머릿속 생각들이다.



생각도 정리가 필요하다

하루에도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갔다. 새로운 아이디어, 지나간 후회, 오늘의 고민까지. 난 물건처럼 생각도 자잘한 것들까지 놓지 못하고 있었다. 경계없는 무한한 공간에 방치된 생각들은 끝없이 확장됐고, 복잡해졌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인지 부하'라고 부른다. 머릿속에 너무 많은 정보가 쌓이면 사고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우리는 중요한 것에 집중하지 못한다. 물건을 정리하며 깨달았다. 내 머릿속도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글쓰기로 생각을 가꾸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생각을 돌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머릿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쏟아냈다. 글로 적기 시작하니 흐름이 보였다. 가시화된 생각들을 보며 어떤 고민이 반복되는지, 무엇이 나에게 중요한지 파악할 수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다는 건 단순히 불필요한 고민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떤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생각이 흘러가는지를 들여다보는 과정이었다.



생각을 사랑하기로 하다

한동안, 생각이 많아 힘들었다. 하루 종일 떠오르는 고민과 질문들에 지쳤고, 가끔은 컴퓨터 휴지통 비우기처럼 잠시 비워졌으면 했다. 하지만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많아서 힘들다면,
차라리 그 생각들을 좋아해보자.


좋아하는 생각들로 가득 찬 하루라면, 내 나날들을 더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하루를 채우는 동반자가 되길 바랐다. 그 이후로 생각을 억누르기보단 흐름에 올라타며, 조금씩 즐기는 법을 배워갔다.


여전히 생각에 휩쓸리지만, 그 생각들을 정리하며 나만의 방향을 찾고 있다. 생각이 많다는 건 나 자신과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물건, 생각, 그리고 나

물건을 정리하며 나를 알게 되었듯, 생각을 정리하며 나의 취향과 방향성을 발견했다. 물건은 내가 걸어온 길을, 생각은 내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곰돌이 푸의 말처럼, 매일이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다. 그 행복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생각과 순간을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다.


오늘도 나는 물건과 생각 속에서 나를 돌보는 시간을 보낸다


나를 이해하고,
하루를 사랑하며,
나만의 취향을 만들어가는
지금의 생각들이 곧 나 자신이니까.

배경음식. 호두가 듬뿍 들어간 고구마 범벅과 따뜻한 자몽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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