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리듬
배경음악. Billie Eilish [Ocean Eyes]
* 들으며 읽으시면 더 좋아요:)
서울에서의 삶은 한강으로 시작되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학창 시절부터 서울을 동경했다. 끝없는 속도감, 편리한 인프라, 다양한 문화와 공연 등 모든 것이 새롭고 매혹적이었다. 인턴이라는 기회로 처음 서울에 발을 디딘 날, 시골쥐에게 서울은 설렘 그 자체였다.
특히 한강.
서울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이 강은 마치 이 도시에게 생명력을 전하는 심장처럼 느껴졌다. 지하철 터널을 지날 때 눈앞에 펼쳐지는 한강은 반짝이며 경이로움을 더했다. 한강의 물결은 자부심 어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서울을 관통하며 흐르고 있는 내가 바로 한강이야! 눈부시지?"
그 순간, 거대한 풍경 속에서 나의 심장은 뛰기 시작했다. 지하철 안의 사람들 모두가 한강을 바라보며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듯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한강이라는 강물은, 그렇게 나를 압도시켰다.
서울에서의 시간이 흘렀다. 반짝이던 두 눈은 점점 회색 빛을 머금으며, 시골쥐였던 나는 서울쥐가 되어갔다. 한강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처음의 화려함과 자부심은 8년 사이 차분함과 잔잔함으로 변해있었다. 지친 하루 끝에 마주한 한강은 나의 나날들을 안아주었다. 한강은 이렇게 위로했다.
"괜찮아. 천천히 흘러가도 돼."
사실, 그 때나 지금이나 한강은 변하지 않았다. 달라진 건 나의 상황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어느샌가 한강은 조용히 현재를 살아내는 법을 알려주는 위안으로 다가왔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내게 상기시켜 주는 존재로,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흘러가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한강을 닮아가고 있다. 천천히 흘러가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조용히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아가고 있다.
그 무렵,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자주 들었던 한 마디가 떠올랐다.
"부산에서 바다를 볼 수 있어서 좋았겠어요."
처음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게 멋진 한강이 있는데 왜 바다를 보고 싶어 할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 한강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달라졌을 때,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바다는 한강과 달랐다. 쉼 없이 움직였다. 물결은 밀려나고, 밀려오며 끊임없이 움직였다. 아득히 펼쳐진 수평선, 철썩이는 파도 소리, 그 너머에 아무것도 없는 무한함. 한강이 주는 고요한 위안과는 또 다른, 바다가 가진 씩씩한 활기가 자꾸 생각났다.
부산에서의 나는 바다를 닮아 있었다. 철썩이는 파도는 언제나 나를 앞으로 밀어내며 더 나은 삶을 꿈꾸게 했다.
"멈추지 마. 더 멀리 나아가야 해."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은 늘 도전의 시간이었다. 파도는 나를 흔들며 새로운 다짐을 심어주었다. 그 마음을 안고 서울로 올라왔고, 한강이 주는 또 다른 에너지에 압도되던 나였는데. 지금의 나는 과거의 바다 같던 나를 기억하며, 현재의 한강 같은 나를 받아들이고 있다.
지하철에서 같은 감정일 거라 생각했던 그날의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나에게 바다를 자주 봐서 좋겠다고 말한 사람들은 지금의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걸까.
그들도 자신만의 바다와 한강을 품고 있었던 걸까.
이제 나는 한강과 바다, 두 물결이 만나는 자리에 서 있다. 두 물결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를 움직이게 한다.
한강은 나를 다독이며 현재를 살아가는 힘을 주고, 바다는 앞으로 밀어내며 내가 더 나아갈 용기를 준다.
삶이란 두 물결 사이를 오가며 자신만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한강처럼 고요하고 차분하게, 때로는 바다처럼 활기차고 강렬하게.
고요함과 역동성, 잔잔함과 에너지. 이 두 물결이 만나 이루는 조화 속에서 나는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두 물결이 만들어낸 나의 여정 끝에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삶은
두 물결 사이를 오가며 만들어진
멋진 여정이었다.
배경음식. 수프와 깜빠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