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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담 Nov 29. 2024

결핍이 있던 아이라서 다행이야

잘 자라줘서 고마워

배경음악. Ludovico Einaudi [Nuvole Bianche]

*들으며 읽으시면 더 좋아요:)




어릴 적 난 풍족하진 못해도,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늘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다.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고, 엄마는 늘 외로워 보였다. 시집살이라는 단어를 몰랐던 어린 나이에도, 엄마의 표정 속에서 그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아이답게 칭얼대는 대신, 묵묵히 숨을 죽였다.


그렇게 나는 사랑이 고팠다. 특히 엄마의 사랑이.

엄마의 손길은 언제나 오빠에게 더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으로 항상 칭찬받던 오빠는 엄마의 자랑이었다. “ㅇㅇ(오빠 이름) 엄마”라는 이름이 엄마에게 얼마나 큰 자부심이었는지, 어린 나는 질투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오빠와 달랐다. 평범했다.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특출 난 건 아니었고, 친구 관계도 평범했다. 그 어중간함이 나를 작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다. 무언가를 이뤄야만 했고, 누군가를 이겨야만 했다.


그런 마음은 가시처럼 자라나 내 안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가시는 나를 보호하는 동시에 나를 찔렀다. 뾰족한 마음은 대인관계를 어렵게 만들었고, 그럴수록 나는 더 외로워졌다.



결핍과 마주하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가시는 여전히 나와 함께였다.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 나는 여전히 인정받는 것에 집착했다. 직장에서 맡은 프로젝트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면, 잘했다는 말 한마디에 하루의 기분이 좌우되곤 했다.


한 번은 회사에서 능숙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동료를 보며 질투심이 피어올랐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잘할까? 짜증 나.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건 그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부족한 확신이었다.


우연히 찾은 오래된 일기장에서 어린 시절의 기록을 읽었다. 그 속에는 사랑이 고팠던 어린 내가 있었다. 표현하지 못하고 참고 버텼던, 유약했던 아이. 그때의 나는 결핍 속에서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자라고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의 결핍이 지금까지도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결핍은 내가 지우고 싶었던 상처가 아니라,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든 중요한 조각이었다.



결핍이 준 변화

그때부터, 나는 결핍을 단순히 부족함으로만 보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키워주는 밑거름이었다. 나는 결핍을 통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내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사소한 성취도 의미 있게 받아들였다.


어려운 업무를 마무리하거나, 동료와 짧은 대화를 나누며 격려하는 일, 가족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일들이 모두 나를 채워주는 순간이 되었다.


한 번은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저는 늘 부족한 사람 같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모자라 보이거든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나는 말했다.

“저도 제가 늘 미흡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결핍이,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될 기회를 주더라고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그 결핍을 어떻게 다루며 성장하느냐 인 거 같아요.”


그 후배와의 대화는 내게도 큰 울림이 있었다. 결핍은 단순히 아픔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결핍이 준 공감

엄마와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도 있었다. 엄마 역시 어린 시절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결핍을 안고 살아왔다고 했다. 그래서 오빠를 통해 그 결핍이 채워지는 걸 보며 위안을 얻었다고. 나는 비로소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결핍은 나를 유연하게 만들었다. 공허했던 마음이었기에, 타인의 마음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삶에서 불안정함을 경험했기에, 나와 비슷한 결핍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결핍이 준 선물

결핍은 더 이상 나를 상처 내지 않는다. 이제는 나를 회복시키고, 성장으로 이끄는 자양분이 되었다. 그렇게 스스로의 가시를 다듬는 법을 배웠다. 그 과정에서 나는 결핍을 동력 삼아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갔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가끔은 흔들리고, 가끔은 다시 작아진다. 하지만 그 결핍 덕분에, 나는 나를 돌아보고 채우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다

사랑이 고팠던 아이, 더 나아지려 애썼던 아이.


그 아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불완전했기에 가능했다. 결핍은 나를 아프게 했지만, 그만큼 나를 성장시켰다.


“아이야, 잘 자라줘서 고마워.”

너의 부족함이 나를 더 깊고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줬어.



어린 나의 결핍은
어른이 된 나에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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