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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네스 Feb 01. 2023

비올렛의 아빠들

인간적인 관계를 꿈꾸며

비올렛의 아빠들

    


“비올렛의 아빠들”(les papas de Violette)는 에밀 샤즈랑(Emilie Chazerand) 이 글을 쓰고, 가엘 수파르(Gaelle Souppart)가 그림을 그려 고티에 랑그로(Gautier Languereau) 출판사에서 2017년에 출판한 프랑스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은 두 아빠와 함께 사는 비올렛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학교 아이들은 비올렛을 놀린다. 비올렛의 아빠들이 둘이 같이 손을 잡고 포옹을 한다고 말이다. 심지어 남자가 다른 남자를 좋아하면 그건 ‘병’이라고 덧붙이며, 비올렛에게도 비올레투스라고 부른다. 아주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라고 말이다.

그 때문에 비올렛은 학교에서 친구가 없다. 그러나 비올렛은 친구가 없는 것보다 아빠가 없는 것이 더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아빠들을 어떤 엄마와도 바꾸고 싶지 않은데, 아이들이 자신의 아빠들이 병에 걸렸다고 하니 충격을 받는다. 비올렛은 집에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하는 아빠를 유심히 바라본다. 아빠는 기침도 안 하고 콧물도 흘리지 않는다. 병에 걸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비올렛은 두 아빠를 무척 좋아한다. 아빠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다른 아빠들처럼 비올렛이 아프면, 따뜻한 꿀차를 끓여주고, 밤에 나쁜 꿈을 꾸면 어느새 달려와 달래 주는데, 아빠들의 코골이 소리에 비올렛은 다시 잠들기 어려울 때도 있다. 가끔은 발 위에 비올렛을 올려놓고 탱고 춤을 가르쳐 주다가도 금세 발이 아프다며 은근히 발을 빼는 아빠이고, 수학을 가르쳐주다가도 비올렛이 이해를 못 할 때는 입을 손으로 가리고 혼자 중얼중얼거리기도, 잠자기 전 책을 읽어주다가 먼저 잠들어버리기도 하는 아빠이다. 비올렛이 늘 예쁘다며 사진을 많이 찍어 벽에 걸어놓는 ‘딸 바보’라 칭할만한 그런 아빠이다.


비올렛은 아빠들이 나오는 옛이야기를 많이 읽어서 이야기 속 아빠들에 대해 아주 잘 안다. ‘엄지 동자 ’ 아빠는 아이들을 숲에 버렸고, ‘당나귀 가죽’ 아빠는 자기 딸과 결혼하려고 했다. ‘신데렐라’의 아빠는 아주 나쁜 여자와 재혼을 했고... 뭐 엄마들이라고 아빠들보다 더 낫지도 않다. 옛이야기 속에서 부모들과 아이들과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대목이다. 비올렛은 자신의 아빠들이 마법의 부츠를 가지고 있지 않지 않지만, 적어도 자신의 보폭에 맞춰 함께 길을 가려고 한다는 것을 안다.

      

비올렛은 두 아빠와 사는 게 정말 행복하다. 그런데 가끔 아빠들에게 섭섭하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두 아빠는 한 번도 둘이 같이 오지 않는다. 다른 아빠들이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릴 때도 늘 둘 중에 한 아빠만 온다. 수영장에 갈 때, 천문대에 갈 때, 영화를 보러 갈 때 그리고 미술관에 갈 때도 그렇다. 비올렛은 학교에서 하는 활동을 할 때 두 아빠와 함께 할 수 없어서 섭섭하다. 그게 너무 싫다.


두 아빠는 우리 사회의 동성애를 바라보는 편견에 대해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자신들로 하여금 비올렛이 난처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지만 비올랫은 그 때문에 섭섭하다.  아빠들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아빠들은 비올렛에게 여지를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사회에 존재하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감안해서가 아니다. 비올렛에게 자신들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사회적인 편견은 나쁜 것이니 당장 없애야 한다,라는 논리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책의 첫 장면은 학교에서 비올렛이 세실을 비롯한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충분히 모욕적이다. 세실은 자기 엄마한테 비올렛 아빠들의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비올렛을 놀리기 시작한다. 두 아빠가 손을 잡고 포옹한다고 말이다. 옆에서 다른 아이들은 웩 웩 거리며 ‘징그럽다’ 고 한다. 심지어 비올렛에게 진짜 엄마가 없냐고도 한다. 비올렛이 정말 여자가 맞냐고도 묻는다.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은 ‘병’이라고 일갈한다. 최악이다. 그러나 세실을 비롯한 아이들의 괴롭힘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때문에 이 그림책은 비올렛을 괴롭히는 데 앞장섰던 세실을 나쁜 아이로 만들지 않는다.


어린이책 작가 토미 웅거러는 아이들의 질문 중에 ‘나쁜 사람들을 존중해야 하나요, 그들을 늘 고려해야 하나요?”에 ‘늘 존중해야 한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단지 그들이 현재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현재의 행동이 나쁘지만, 그들에게서도 다른 선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책, 아이들의 100가지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을 모아 만든 책 “NI OUI NI NON” (‘응’ 도 ‘아니’ 도 아닌)에서 그의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이 그림책은 비올렛을 괴롭히는데 앞장섰던 세실을 나쁜 아이로 만들지 않는다. 그림책은 세실을 동성애에 대한 편견에 놓인 우리 사회에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다리’로 만든다. 


비올렛의 두 아빠가 비올렛이 학교에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비올렛이 부딪친 문제가 두 아빠로 인해 생긴 문제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늘 편견, 예단, 선입견 등이 존재한다. 그들과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비올렛의 아빠들은 사회에 존재하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지만 비올렛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과 다른 생각에 대해서도 비난하지 않는다. 부딪치고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 만날 수 있는 건널목이 생기고 실마리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책은 하나의 실마리를 제안하고 있다.      


다음 날, 비올렛은 학교에 가는 게 두렵다. 온몸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 마침 세실이 울고 있는 것을 본다. 세실의 아빠가 전 날 잘 자라는 인사만을 남기고 사라진 데다가 이제 아빠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엄마 말에 절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을 놀릴 때는 주변에 여러 친구들과 함께 있었는데, 혼자다. 비올렛이 그런 세실에게 손을 내밀자 웬일인지 세실은 거절하지 않고 비올렛의 손을 잡는다. 비올렛은 잠시 생각한다. 세실이 자신의 손을 잡은 것은 아빠를 갖고 싶은 마음에 비올렛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싶은 거라고 말이다.     

비올렛과 세실은 친구가 되고 특히 세실은 자주 비올렛의 집에 놀러 간다. 피아노가 있고 벽난로가 있고 만화영화가 있는 비올렛의 집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중에서 특히 두 아빠들이 있어서이다.  


아이들이 어떤 것을 경험하는가에 따라 그들이 사는 세상은 달라진다. 편협하고 차별하고 탓하고 거부하는 사회를 경험하며 살 것인가, 늘 끊임없이 다른 세상을 발견하면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며 살 것인가. 세실의 엄마가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말로 비올렛의 아빠들을 겨눈 말을 전했지만, 정작 비올렛과 아빠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말들이다. 단지 사회에 떠돌고 있는 정체불명의 이야기들만 전했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나쁜' 사람으로 제단 하지 않는다. 그림책은 편견은 잘 모르는 것에서부터 비롯되고 정작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가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 몰랐던, 인간적인 면이 돋보이는 삶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책의 그림을 보는 즐거움 또한 크다."비올렛의 아빠들"의 그림책에서는 다양하고 밝은 색들을 사용해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첫 표지부터 두 아빠들과 비올렛의 옷차림이 참 경쾌하다. 그들은 한 가족이다. 각각의 옷차림에서 공통적으로 푸른 계열을 볼 수 있는데, 가족의 유대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책의 주인공인 비올렛의 이름은 보랏빛의 색에서 따왔다.  그림책의 첫 장에서, 아이들이 비올렛에게 비올렛투스 (비올렛 바이러스) 라며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라고 놀린다.  그러나 정작 비올렛의 옷차림에서는 보라색을 찾을 수 없다. 외려 비올렛을 괴롭히는 아이들의 옷색깔과 가방에서 보랏빛이 보인다.  그림책에서 비올렛투스(비올렛 바이러스)는 여러 가지를 함의하고 있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어우러져 살면서 상대방의 고유한 특성에 물들고 또 상대에게 나 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물들인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원하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때문에 아이들이 정작 비올렛에게 비올렛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보랏빛 옷을 입은 아이들은 이미 비올렛의 고유한 성향에 물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면서 산다. 때문에 아이들의 옷 색깔에서 혹 스스로 아직 발견하지 못한 내면의 비올렛투스의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림과 이야기가 참 잘 어우러져 풍성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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