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네스 Feb 16. 2024

어린이는 어떻게 생겼어요?

제목이 흥미롭다.      

과연 '어린이'란? 어린이를 어떻게 정의할까?  

         

(표지) 어린이는 어떻게 생겼어요?

            

이 책은 혼자서도 읽기가 가능한 어린이가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나탈리 쿠페르만이 쓰고, 솔다드 브라비의 그림으로 2022년 엘꼴데로와지르의 출판사에서 발행되었다. 이 책은 어린 사자, 레옹의 이야기이다. 레옹은 '어린이'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어린이를 찾아 나선다. 어린이를 먹기 위해서다. 레옹의 아버지는 자칭 대초원의 왕이라 일컬으며, 어린 사자가 어른 사자가 되려면, 특히 진정한 사자임을 증명하려면 어린이를 먹어야 한다는 전통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옹은 엄마와 아빠와 함께 산다. 엄마 아빠는 자주 다툰다. 둘은 의견이 일치한 적이 거의 없다. 다투는 게 일상인 그들과는 달리 레옹은 그런 엄마 아빠를 보는 게 맘이 편치 않을뿐더러, 다투다가 이혼할까 봐 걱정이다. 그러나 한편 엄마 아빠의 다툼을 보면서 또한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 역시 발견하게 된다.                

특히, 이 "전통"이라는 것에 대해서 둘의 의견은 전혀 다르다. 세상은 변했고, 사람들과 동물들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엄마와는 달리, 아빠는 아직 시기상조다라고 단호히 말한다. 레옹은, 과연 '진정한 사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바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다. 그러나 부모에게 섣불리 물을 수가 없다. 진정한 사자가 따로 있냐며 아빠의 의견에 반해서 나올 수 있는 엄마의 폭소, 그리고 그런 엄마의 반응에 반한 아빠의 노여움이 폭발할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레옹의 고민은 깊어지고, 결국 레옹은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해 선택을 한다. 어린이를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어린이를 먹으러 집을 떠나겠다고 말한다. 아빠는 흔쾌히 레옹의 결심을 지지하지만, 레옹은 사실 일단 집을 떠나 모험을 해보고 싶었고, 이후 모험담을 친구들한테 이야기하고 싶은 욕심이 더 컸다. 여하튼 레옹은 괴나리봇짐 하나 지고 집을 나선다.   

        

아기 사자 레옹은 괴나리봇짐을 지고 집을 떠나며 엄마 아빠에게 인사를 한다

          

어린이란?      

학교에서 들었던 어린이에 대한 단 하나의 정보, "어린이는 낮잠을 잔다", 만을 가지고 레옹은 어린이를 찾아 나선다. 어린이를 먹으면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아빠 말에 전적으로 동의는 하지 않지만, 일단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용기를 내어 달리고 또 달린다. 드넓은 사반나에서 레옹은 코끼리, 기린을 만나고, 뱀, 원숭이를 만난다. 그때마다 다소 떨리는 마음으로 "당신이 어린이예요?" 하고 묻고, "왜?"냐는 질문에 "어른이 되기 위해 어린이를 먹으려고요"라는 내키지 않는 대답을 한다. 역시나 돌아오는 것은 다소 비웃음 섞인 조언들이지만, 레옹은 그들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코끼리에게서는, 어린이를 먹지 않고 풀만 먹어도 어른 사자보다 세배는 더 크다는 것을 발견하고, 기린에게서는, '사자가 이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세고, 제일 지혜롭고, 제일 멋지다'라고 아빠에게서 들은 것과는 달리 아름다움과 다정함을 느낀다. 길 떠난 후 첫 번째 밤을 맞아 잠을 청하는데, 갑자기 나타난 뱀에게서 두려움마저 느껴 그의 노여움을 사지 않으려고 뱀의 마음을 달래고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순발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또한 각각의 동물들은 어린이를 찾는 레옹에게 각자가 생각하는 어린이에 대한 정보를 준다. 어린이는 '목이 길다'는 코끼리, '혓바닥을 내민다'는 기린, '손과 다리가 있다'는 뱀이 주는 정보를 얻는데, 다들 자기 기준에서 생각하는 어린이의 모습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드디어, 모든 정보를 종합해 가장 근접한 어린이의 모습을 닮은 존재를 만난다. 그는 예쁜 두 손으로 망고 열매를 먹고 있다. "당신이 어린이예요?"를 묻는 레옹에게, 자신을 원숭이라고 소개하며, 망고 하나를 레옹에게 건넨다. 배고팠던 레옹은 단숨에 망고를 먹고 '맛있다'라고 감탄을 한다. 일반적으로 사자는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 원숭이는 레옹이 놀라울 뿐이다. 원숭이는, 어쨌든 어린이를 찾는 레옹을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안내하면서 덧붙인다. "네가 해야 하는 것을 해라, 그러나 네가 해야 하는 것이 네 생각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면, 하지 마라" 원숭이는 자기 길을 가고 레옹은 "그게 대체 무슨 말"인지를 생각하며, 혼자 남는다.         

        

어른이 되려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정말 복잡하고 어렵다는 것을 되뇌면서 어린이를 먹는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커진다. 그때 운명이 레옹에게 미소를 건넨다. 드디어 "어린이"와 마주친다. 어린이는 머뭇거리지 않고 레옹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는다. "너 정말 부드럽구나, 난 사자가 정말 좋아"라고 하면서. "사람은 우리를 무서워하고 우리 앞에서 벌벌 떤단다"라는 아빠 말이 생각나 어린이의 반응이 놀라웠지만, 레옹은 겸연쩍게 아이에게 물었다 "넌 내가 안 무서워?", "아니 전혀. 너 참 순해 보인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레옹은 난감해졌다. 적어도 상대에게 한 입에 잡아먹겠다고 미리 말을 해야 하는데, 그래야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일인데....라고 머뭇거리다가 드디어 나름 큰 소리로 "어흥" 하며 "내가 널 잡아먹을 거야" 하고 아빠 흉내 내어 큰 소리로 말해보지만, 레옹을 다정하게 바라보던 어린이는 그만 웃음을 터뜨린다. 그렇게 레옹은 아이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결국 왜 내가 이 어린이를 먹어야 하지?라는 자문에 이르고, 원숭이가 남기고 말을 그제야 다시 떠올리며, 어른이 되기 위해서 어린이를 먹는 일 따위는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존재와 존재의 관계에서 먹고 먹히는 관계, 이기고 지는 관계 등의 원초적인 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사이에서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아기 사자와 어린이 역시 그들이 만났을 때부터 그들 둘만의 이야기가, 물레로 실을 뽑듯, 베틀로 옷감을 짜듯이 한 올 한 올 이어지고 엮이어 만들어진다.                

레옹은 여행을 통해, 그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는다. 일상에서 자신도 모르게 맞닥트리는 일들이 있다. 예를 들어 '전통'이 그렇다. 어린이를 먹어야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전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에 대한 고민을 자기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찾는다. 자신의 생각을 담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둘 사이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비로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던 전통에서 자유로움을 얻는다.          

      

이 책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며 더불어 사는 사는 삶을 살기 위한 방향을 보여준다. 성장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존의 관계의 틀을 깬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해방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레옹처럼 말이다. 레옹은 부모의 곁을 떠난다. 부모는 때론 자녀가 성장하는데 길을 안내하기도 하고 조언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엔 충분하지 않다. 세상은 끝없이 펼쳐져 있고, 어린이 역시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있다. 어린이와 세상이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레옹의 아빠는 전통을 중시하는 것 같지만, "어린이가 어떻게 생겼냐?"는 레옹의 질문에 "직감적으로 알게 될 거"라고 대답한 걸로 봐서, 레옹이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든 그것을 존중할 것 같다. 그의 아내와 의견이 늘 달라 자주 다투어도, 자기 자신만을 옳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존중한다. 서로 사랑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우리 고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가 있다. 그러기 위해, 기존의 좁은 관계의 틀을 벗어나 넓은 세상을 만날 필요가 있다. 





  

작가의 이전글 일상이 우리를 예기치 않은 세계로 끊임없이 이끌지라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