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새로운 연대기 시작하기
봄기운이 만연하고, 예쁜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하는 작년 4월에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갑상선저하증으로 약을 먹고 있었고, 정기적으로 초음파 검사도 했었기 때문에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을 때도 “약은 지금처럼 먹으면 되겠네요. 6개월 후에 봅시다.”라는 10초 정도의 인사를 받을 거라 예상하며 의사 선생님 맞은편 의자에 가볍게 걸터앉았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종양 모양이 좋지 않다며 다시 추가적인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고, 결과는 암 진단을 받은 환자가 되어 버렸다.
병원에 앉아 눈물 콧물 다 쏟아내며 한 시간 남짓을 그저 서럽게 울었다. 머릿속에 영화관 영상을 틀어놓은 듯 아이들의 모습, 남편, 나만 믿고 의지하는 친정어머니, 그리고 나의 과거의 모습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나의 눈물샘을 더 자극했다. 까만 암흑 같은 시간 속에서 한참을 울다 보니 눈물샘이 바닥이 났는지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으면서 적막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작게나마 희망이 생기면서 신기하게도 정신이 맑아졌다.
그때 내 삶에 가장 소중한 본질적인 바람 외에는 다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살아야겠다고 말이다.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소소한 추억을 쌓아가며, 일상을 기록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중 수술 후 회복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은 나의 유년 시절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곳, 고향을 방문해 보는 것이었다.
40대 후반인 나는 아주 가끔 책꽂이 꽂힌 『나니아 연대기』 책을 펼친다. 총 7장 중에서 2장 사자와 마녀와 옷장 편의 시작은 피터, 수잔, 에드먼드, 루시 중 막내인 루시가 옷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나니아 왕국에 들어가게 된다. 내 삶도 루시가 옷장이라는 통로를 통해 나니아 왕국을 만났던 것처럼 유년시절의 보냈던 그곳을 다시 밟으면서 내 삶의 새로운 연대기를 쓰고 싶었다.
암 수술과 회복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분주하기만 했던 삶에서 단순한 삶으로 들어가는 예상치 못한 선물을 얻게 했다.
수술 후 6개월이 지났다. 시간이 약인지 지금은 많이 회복되어 목에 있는 수술 자국만이 갑상선암 환자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이들과 함께 어릴 적 살았던 고향을 방문하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다. 내일이면 아주 오랜만에, 강변역에 위치한 동서울 터미널에 가서 전라도 광주로 향하는 버스를 탈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처음으로 타보는 고속버스 여행은 어떨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