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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마음의 댐
(윤슬의 이야기 2)

마음 깊은 곳의 작은 균열

by 부엄쓰c

※이 이야기는 현실을 바탕으로 한 감성 소설입니다. Olafur Arnalds의 'Near Light'를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고, 천천히 감정을 따라가며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그날 아침, 윤슬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했다. 버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아침 풍경은 흐릿했고, 그녀의 마음처럼 무겁고 답답했다. 회사 문 앞에 도착했을 때 깊게 숨을 들이쉬며 하루를 견딜 힘을 다져야 했다.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책상 위에 쌓여있는 업무와 미처 읽지 못한 메일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회의가 시작되자 윤슬은 어제 밤늦게까지 정리한 자료를 발표했다. 하지만 상사의 얼굴에 만족감은 없었다.


"윤슬 씨, 이 정도면 좀 부족한데 다시 한번 보세요."


상사의 무심한 말이 윤슬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주변 동료들의 침묵과 시선은 더욱 그녀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자리로 돌아오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책상에 앉았지만 화면 속 글자가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윤슬은 늘 정시 퇴근을 꿈꿨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일 늦게까지 남아 일을 해야 했다. 업무량이 많기도 했고, 팀 분위기상 정시에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칠까 봐, 인사팀에서 관리 대상으로 분류되어 승진이나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늘 불안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작은 용기를 내기로 했다. 평소보다 일찍, 아주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팀 메신저 창을 열고 짧은 메시지를 입력했다.


"오늘 개인적인 일정이 있어서 평소보다 일찍, 6시에 퇴근하겠습니다. 급한 업무가 있으면 미리 말씀 부탁드릴게요."


메시지를 보내기 직전까지 윤슬의 손가락은 망설임으로 떨렸다. ‘내가 이렇게 일찍 퇴근한다고 말해도 될까?’ 하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결국, 윤슬은 눈을 질끈 감고 메시지를 전송했다. 화면 위에 답장이 떴다.


"넵! 수고하세요."


간단한 답장이었지만 긴장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시계를 볼 때마다 마음속 불안이 더 커졌다. 하루 종일 동료들의 작은 표정 하나까지 신경 쓰였고, 혹시라도 자신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퇴근 시간이 되었을 때, 윤슬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작고 떨렸지만 동료들은 별다른 반응 없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회사 문을 나선 순간, 예상했던 차가운 시선이나 따가운 눈총 같은 건 없었다. 거리에 아직 저녁 햇살이 남아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이 풍경에 윤슬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밝은 하늘을 보니 낯설면서도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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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올라 창밖을 바라보며 윤슬은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정을 느꼈다. 평소보다 밝은 풍경, 하루의 끝자락에 찾아온 작은 여유. 그녀의 마음속에는 두려움과 죄책감, 그리고 조심스러운 희망이 함께 존재했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민호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엄마, 오늘 일찍 왔어?"
"응, 오늘은 일찍 왔어."


민호의 놀라움 섞인 표정을 보면서 윤슬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오래간만에 긴장이 풀리고, 작은 쉼표가 생긴 기분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소파에 앉아 오늘의 작은 변화를 천천히 곱씹었다. 하지만 여전히 앞으로의 불안과 두려움은 남아 있었다. 윤슬은 마음 깊은 곳에서 작고 미세한 균열을 느끼고 있었다. 낯설고 불안했지만, 이 균열이 어쩌면 그녀가 찾고 있던 진정한 삶의 여백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침대 위에서 윤슬은 천장을 바라보며 잠을 청했다. 작은 용기로 인해 찾아온 이 낯선 평화를 천천히 음미하며, 앞으로 조금 더 용기 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조용히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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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밀리의 서재에서도 연재를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과 밀어주기를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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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