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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Dec 15. 2021

그대 내게 햄버거 주는 사람

햄버거... 드실래요...?

 1983년 해바라기의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이 노래를 영화 파파로티에서 이제훈 씨가 부르는 장면을 보고 처음 들었다. 그땐 영화 내용에 집중해서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란 구절만 귓가에 맴돌았다.     


 다시 떠오른 계기는 이 말장난을 들은 최근이다. 그리고 원곡을 찾아 듣고 싶어졌다. 전체적인 가사가 상대에게 고마움을 표현한다.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이리저리 둘러봐도 제일 좋은 건

 그대와 함께 있는 것     


 ‘그대 내게 햄버거 주는 사람’을 들었을 때 웃음과 특별한 의미가 함께 다가왔다. 햄버거가 내게 진정한 위로를 깨닫게 한 계기를 내게 줬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나는 채소를 잘 먹지 않았다. 채식주의자의 정반대인 육식주의자가 나다. 매운 음식과 신 음식은 전혀 먹지 못한다. 그리고 채소를 싫어한다. 세 가지가 합쳐져 소위 ‘초등학생 입맛’이다. 초등학생 입맛에게 허락되는 음식은 몇 없다.     

 

 이런 나에게 한 줄기 빛이 찾아왔으니, 바로 햄버거다. 햄버거는 특별히 맵지 않고, 시지도 않고, 특히 채소가 거슬리지 않는다. 떫고, 아삭 거리지도, 특유의 향이 튀지도 않고 어우러진다. 이런 기적이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우울함에 빠지거나 기운이 없을 때 이 한마디가 나를 힘나게 한다.

  

“햄버거 먹을래?”     


 극심한 우울이 나를 괴롭힌 몇 달 동안 나는 햄버거를 나 자신을 위한 명목으로 계속 먹었다. 혼자만의 ‘절망 세상’에 갇혀 실낱같은 희망을 햄버거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하면 부담될까 봐. 내 우울이 전염될까 봐. 혼자 말 못 하는 햄버거에 의지했다. 그렇게 절반의 속을 햄버거로 채우면 나머지 절반은 씁쓸함이 채웠다.


 그럭저럭 ‘절망 세계’를 부수고 나온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많은 응원을 줬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넘기지만 그땐 얼떨떨하고 아직 내 몸에 붙어있는 우울이 계속 괴롭혔기에 막연히 웃을 수 없었다.     

그때 언니가 말을 꺼냈다.


“... 햄버거 먹을래?”    

 

 언니는 내게 말했다. 네가 그렇게 힘들어한 걸 알지만,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면 그거 나름대로 너에게 부담이 될 수 있으니까 평소대로 행동하겠다고. 평소처럼 언니는 나에게 내가 좋아하는 햄버거를 먹겠냐고 물어본 것이다. 단순한 물음이었는지 위로의 의미였는지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내겐 가슴 따뜻한 말이었다.

   

 고맙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매, 형제, 남매 사이라면 알 것이다. 막상 고마운 일이 생겨도 껄끄럽고 부끄러운 느낌. 그때 저 노랫말이 생각났다. 나의 고마움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말.


“그대 내게 햄버거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햄버거 주는 사람~”


 노래를 듣자마자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워왔니?”


 그동안 고맙다고 말했을 때 반응보다 더 좋은 답이 나왔다. 자연스럽게 감사하다고 전하는 방법을 찾았다. 원래도 장난치길 좋아했기에 쑥스럽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다.   


 진정한 위로의 의미를 알았다. 위로는 타인과 함께 하는 것. 자신에게 하는 위로가 필요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때 손을 내민다면 누구든 당신의 손을 잡아줄 것이다.     


 이 글을 본 당신도 위로해준 그 사람에게 재치 있게 감사를 표현해보는 것은 어떤가? 아재 개그라고 놀림당하더라도 고마움이 담겨있다면 상관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필자 탓은 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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