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황혼의 그림자, 이혼과 세금의 딜레마

by 하기


황혼의 그림자, 이혼과 세금의 딜레마


파경, 그리고 위자료의 덫


강남의 고즈넉한 빌라, 그곳에 스며든 30년 결혼 생활의 황혼은 차가웠다. 대기업 임원 출신인 남편, 김민준(60세)과 전업주부였던 아내, 이수현(58세)은 결국 이혼에 합의했다.


"민준 씨, 나는 이 집만 있으면 돼. 당신이 그동안 벌어들인 돈, 난 계산할 능력도, 마음도 없어." 수현은 낡은 가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 집은 부부가 평생을 바쳐 마련한 보금자리이자, 현재 시가 25억 원에 달하는 유일한 재산이었다.


민준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복잡한 계산을 시작했다. '위자료' 명목으로 이 집을 아내에게 주기로 결정했다. 변호사는 간단히 서류를 준비했다. 소유권 이전 등기 원인은 깔끔하게 '이혼 위자료'였다.


몇 주 후, 등기 이전이 완료되었다는 통보와 함께 세무서로부터 한 장의 고지서가 날아왔다.


"양도소득세 5억 2천만 원?" 민준은 떨리는 손으로 고지서를 들었다. 집을 준 것은 아내에게 위자료를 '지급'한 행위로, 세법상 '양도(팔았다)'고 간주된 것이다. 10년 전, 이 집의 매입가는 8억 원이었다. 17억 원의 차익에 대한 세금 폭탄이었다.


민준은 벽에 기대 주저앉았다. "집을 줬는데, 왜 내가 세금을 내야 해? 이혼은 아픈 일인데, 세금이 날 두 번 죽이는구나!" 그는 분노와 절망감에 휩싸였다. 수현에게 위자료를 준 것이 아니라, 집을 매도하고 그 대가로 위자료를 탕감 받은 셈이 된 것이다.


구원의 손길, '재산분할'이라는 마법


양도소득세 납부 기한이 임박했을 무렵, 민준의 사정을 들은 후배 변호사 한 명이 찾아왔다. 박민우 변호사는 고지서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선배님, 너무 성급하셨습니다. 위자료 명목은 세무 당국에 '양도 행위'의 빌미를 줍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민준은 절박한 눈빛으로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재산분할을 이용해야 합니다. 민법 제839조의 2, 부부가 공동으로 이룩한 재산을 나누는 것은 양도가 아닙니다. 그저 공동 재산을 각자의 몫으로 가져가는 것뿐이죠."


박 변호사는 설명했다.


"선배님이 25억짜리 집을 아내에게 '위자료'로 전액 주면, 세법은 '25억짜리 자산을 팔고, 그 대가로 위자료 채무를 갚았다'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이혼 시 '재산분할 청구'를 통해 집을 아내의 기여분(예를 들어 50%)으로 인정받아 이전하면, 국세청은 이를 '공동 재산의 분할'로 봅니다. 이 경우, 세금은 없습니다!"


마지막 희망, 등기 원인의 변경


다행히 소유권 이전 절차는 완료되었으나, 민준과 수현은 이혼 후 2년이 지나지 않았다. 박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민준은 수현을 다시 만났다.


"수현 씨, 미안하지만 이 집 등기를 다시 해야 할 것 같아. 내가 양도소득세 폭탄을 맞았어. 당신은 세금 낼 일 없지만, 나는 파산할 지경이야." 민준은 5억 원이 넘는 고지서를 내밀었다.


수현은 놀랐다. "집을 받았는데 당신이 왜 세금을 내요? 이혼한다고 나라에 세금을 이렇게 많이 내야 해?"


민준은 재산분할 청구의 원리를 설명했고, 수현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두 사람은 법원에 '재산분할'을 원인으로 하는 소유권 이전 등기 정정 절차를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이 집의 등기 원인은 '이혼 위자료'에서 '재산분할'로 정정되었다. 세무 당국은 이 정정된 등기를 바탕으로 양도소득세 5억 2천만 원의 고지서를 취소했다.


민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혼의 아픔은 컸지만, 적어도 세금이라는 더 큰 불행은 피할 수 있었다. 그는 깨달았다. 이혼은 감정의 문제이지만, 재산 이전은 냉철한 세법의 문제라는 것을. 수현에게 넘긴 집은 2년 이내에 재산분할 명목을 이용했기에 세금 없이 무사히 그녀의 몫이 될 수 있었다.


"이혼은 아프지만, 세금은 더 아플 수도 있기에…" 민준은 읊조리며, 이혼의 아픈 교훈과 세테크 비법을 가슴 깊이 새겼다.


https://brunch.co.kr/brunchbook/taxstory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2화사장님의 눈물과 확정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