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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유예의 시간.

제3장. 삶.

by 시골서재 강현욱


내게 남은 유예의 시간

나는 무엇을 기대하는가

투쟁의 망각 달콤한 언어 부드러운 죽음

얼마나 거대한 바람이자 이 무슨 욕망인가

웅크리고 드러누운 가련한 영혼.


구름에 가려진 달빛 아래

수많은 춤과 영광과 승리의 하찮은 순간들

기울어가는 황혼 아래

한낱 모래알처럼 부서지는 무의미의 향연들

봉긋한 기억의 봉분조차 풍화되는 무의 시간들.


주름진 손바닥에 새겨진 전리품들

무한의 세계 속에서 발버둥치던

티끌도 안되는 증오의 조각들

그걸 갖기 위해 길 바닥에 버려온 수단의 시간들

의미없는 삶에 드리워진 의미없는 죽음의 그림자.


구름을 벗어난 달빛의 광휘

남아있는 길을 비추는 가녀린 광채

내가 부여할 수 없는 삶의 의미

그건 남겨진 자들에게 맡겨진 특권

내가 할 수 있는 건 후회없는 선택뿐.


타고 남은 뼛가루가 나를 용서할 수 있게

단지 가슴펴고 걸어가는 일

다시 안녕과는 거리가 멀어지더라도

단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내게 남겨진 유예의 몫을 따라


나는 오늘도 걷는다.


덧. 의미없는 일을 하느라 정작 바쁘게 보내야만 하는 시간 앞에 고개를 떨굽니다. 사라지고야 말 시간인 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제 자신이 가끔 아니 자주 한심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의미로 삶을 채울 수 있는 나날이 하루 빨리 다시 돌아와주길 바라봅니다,

작가님들, 그리고 독자님들. 항상 강건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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