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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후의 나에게.

제1장. 사랑.

by 시골서재 강현욱


무얼 써야 하지

찢어진 종이들만 흩날린다

무의미의 세계에 진상하듯 문장들을 던진다

그렇게 천년이 지났을까 이천년이 흘렀을까

낡은 문의 노크 소리.


무의미의 세계를 부수는 성스러운 꽃 한송이

방 안은 하얀 빛으로 물들고

가련한 꽃을 위한 노래가 방 안 가득 쓰여진다

나의 입술과 손길에 몸을 비틀던 꽃

꽃이 펼쳐놓은 유일한 비밀들.


꽃의 슬픈 이야기에 침잠하면서

아름다운 모습 위에 기지개를 켜면서

욕망이 나를 잠식함을 바라보면서

희망이 나를 침범함을 받아들이면서

빼곡한 이야기가 쓰여진다.


어디에서 솟아나는 거지

영혼의 영감들과 결연한 의지들은

가난한 문장 속에 보석처럼 빛나는

지친 듯한 꽃의 울음과 현실들이

무람없이 나를 지배한다.


낡은 문이 다시 힘겹게 열린다

꽃이 시들며 빛과 어둠은 일제히 사라진다

무의미의 세계는 더 이상 나의 세계가 아니다

심장이 벌떡거리는 존재의 세계 안에

꽃을 향한 이야기는 여전히 하늘을 수놓는다.


다시 천년이 지났을까 이천년이 흘렀을까

무의미의 세계를 벗어났으나

끝나지 않을 부재(不在)의 고통에

나의 이야기인지 꽃의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는 현전(現前)한다.


격렬한 고통이여

그마저도 나는,

속절없이 사랑하게 되었구나.


덧. 하얀 이슬의 백로가 지났는데 덥습니다. 참으로 덥습니다. 시간도, 공간도 증발해 버릴듯 열기만 가득한 나날입니다. 건강도, 마음도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작가님들, 독자님들. 항상 강건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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