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 수업을 모두 마무리했다.
엄마의 백내장 수술일은 10월 21일과 23일로 잡혔고, 9월까진 엄마가 남은 수업을 계속 받을 수 있게 모시고 갈 계획이지만, 내 수업은 이제 더 이상 연장할 수도, 새로 시작할 수도 없게 되었다. 지인인 원장쌤한텐 잠시 쉬겠다 했으나 엄마의 상태에 따라 일을 계속할지는 아직 미지수고 또 자신이 없다. 당장은 엄마의 수술 후 회복과 관리를 위해 내 온 신경을 쏟을 생각이다.
이 나이에 일자리가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은 정말 감사한 일이나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니 엄마를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틈틈이 수업 커리큘럼을 정비하고, 그림 실력을 쌓고 싶은 마음은 늘 있지만, 현실은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아 속상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다. 지금의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이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전엔 16년만에 오랜 벗을 우연히 만났다. 내 아들과 그 친구의 딸은 동갑으로, 돌도 되기 전에 어느 놀이방에서 알게 된 인연으로 아이들이 중학생 무렵까지 친분을 이어가다가 서로 바빠 중간에 소식이 끊겨 버렸다. 50대 후반이 돼서야 다시 만나니 보통 인연은 아닌가보다 했다. 친구 딸은 벌써 결혼해 3살 난 딸이 있어 친구는 할머니가 됐다.
더 기막힌 우연은 친구의 시어머니도 우리 시어머니가 계신 같은 요양병원에 4년째 입원중이시라는 거다! 지난 주말, 어머니와 친정엄마를 모시고 외식을 다녀오면서 친구 시어머니도 뵈러 갔는데 몸이 너무 마르셔서 못 알아볼 뻔했으나 정신만은 온전하신 덕에 나를 알아봐 주셨다.
친구랑 우연히 만난 다음날 우린 다시 만나 밤중까지 밀린 이야기를 나눴었다. 친구는 나와 소식이 끊길 무렵 초등학교 방과후 국어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었는데 그 일을 아직도 하고 있었다. 게다가 현재 친정엄마가 이사오신 집 바로 앞에 있는 초등학교에 수년 간 다니고 있는 거다.
친구와 오랜만에 긴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그간 쓴 책들을 선물로 주면서, 나도 다시 내 일을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았다. 오래도록 쌓아둔 그림과 수업 준비, 그리고 미뤄둔 계획들이 떠오른 거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작은 불씨가 타오르고 있었다.
엄마의 수술과 회복이 우선이지만, 그 속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 나를 채워줄 일을 조금씩 이어갈 방법을 찾아보리라 다짐한다. 친구를 만나 느낀 설렘과 용기는, 내게 다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새삼 그 친구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