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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과 안도 사이

by 돌레인

대형마트에 남편과 차를 몰고 가 필요한 물품들을 샀다. 우리 집에 들러 한 짐을 내려놓고, 시어머니 병원으로 가서 또 한 짐을 내려놓았다. 평소보다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낮잠을 주무신 터라 얼굴이 조금 부으셨지만, 혈색도 기분도 좋아 보여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엄마네로 가려던 순간, 차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배터리 충전을 해주던 ‘제너레이터’가 완전히 수명을 다한 거다. 2002년부터 남편의 사촌 형수에게서 물려받아 23년째 몰아와 이젠 고물차가 됐지만 정이 든 탓에 바꿀 시기를 놓친 채 지금까지 왔다.


하는 수 없이 남편이 짐을 한가득 들고 걸어서 엄마네로 향했다. 그런데 현관문이 굳게 닫혀 있어 가슴이 철렁했다. 위치 앱을 보니 공원에 가 계셨다. 다행이었으나 운동화가 아닌 높은 굽의 슬리퍼를 신고 나가셔서 걱정이 앞섰다. 남편이 짐을 내려놓고 차로 되돌아가는 걸 배웅하며 전화를 드리니, 내가 오기로 한 걸 잊으셨단다. 천천히 오시라고 당부하고 냉장고에 음식물을 채워 넣었다.


아침에 드셔야 할 혈압약이 약통에 없는 걸 확인하고 집안을 둘러보니 분리배출이 또 뒤죽박죽이었다. 엄마의 ‘맑은 날’이 연속적이지 않다는 걸 실감하며 쓰레기를 정리했다. 제자리에 걸려 있어야 할 부엌 타월이 보이지 않아 찬장들을 열어보니 엉뚱한 곳에 처박혀 있었다. 새 것으로 교체하고, 낡은 것은 손빨래해 널었다. 저녁을 준비하는데 엄마가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오셨다.


전엔 사람이 없어서 심심했는데, 오늘은 사람이 많아 앉을 자리가 없었다고 불평을 늘어놓으셨다. 그 사이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행히 시동이 다시 걸려 대형마트 안 단골 정비소로 올라가고 있는데, 오르막길에서 차가 서버렸다는 거다. 사람들 도움으로 차를 옮긴 뒤, 정비사의 긴급 충전 덕에 정비소까지 겨우 몰고 갔다 한다. 옆에서 엄마가 또 엉뚱한 말씀을 해대셔서 인내심이 바닥날 뻔했다.


저녁을 먹고 약을 챙겨드리니, 얼른 집에 가고만 싶어졌다. 하도 시장에 가고 싶다길래 두번이나 먼 걸음을 했는데도, 또 잊으시고 시장 타령을 해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걱정과 죄책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머리까지 어지러워 더는 있을 수 없어 월요일에 오겠으니 내일 하루는 서로 푹 좀 쉬자고 다독이며 나왔다.


골목 어귀에서 돌아보면, 엄마는 집 앞에 서서 조심히 가라며 손을 흔드신다. 나도 손을 흔들며 돌아서는데 잘못한 내 행동만 떠올라 속상했다.


오늘은 먹구름이 낀 흐린 날이었다. 하지만 그리 최악은 아니었음에 안도했다. 다음 주도 엄마와 함께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래도 마트에 들러 엄마가 소소하게나마 돈 쓰는 재미를 느끼실 수 있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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