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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엄마 곁에서

by 돌레인

주말 후 월요일, 엄마네로 가는 발걸음은 다른 날보다 좀 무겁다. 그래도 별일은 없겠지, 엄만 잘 계셨겠지를 되뇌며 집에 들어선다.


방충문을 열려는데 불을 꺼 어두운 주방 식탁 아래에서 엄마가 무릎을 꿇고 뭔가를 찾고 계셨다. 내 인기척이나 엄마~ 라고 부른 내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그 어둠 속에서 뭘 그리 찾고 계신 걸까. 뒤늦게야 돌아보며 들린 엄마의 손엔 커피믹스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싱크대 위에 놓여있는 컵 안엔 설탕이 수북이 들어 있었다. 아, 또... 올라오려는 화를 꾹 참고 혈압을 재자고 재촉했다. 동시에 식탁 위 약통을 보는데 어제 아침과 저녁약을 하나도 안 드신 거다. 참자, 참자... 엄마의 혈압을 재니 141이다. 어제 혈압약을 안 드신 걸 감안하면 양호한 편이다. 정오 전이라 혈압약을 챙겨드렸다.


점심을 차리려 냉장고를 열어보니 반찬과 밥, 샐러드 등이 그대로 있었다. 게다가 삶은 옥수수 2개도 그대로다. 도대체 엄만 주말 동안 뭘 드신 건지. 싱크대 안엔 먹다 남은, 뜨거운 물만 부어 먹는 컵면인 멸치 칼국수가 반이나 남아 있고, 인덕션 옆엔 끓여 먹는 멸치 칼국수 봉지가 있었다. 내가 본 적이 없는 거라 어제 편의점에서 사 오셨냐니까 집에 있던 거라고 우기셨다. 인덕션은 엄마한테 위험해 전자렌지에 데워드시기 편하게 내가 준비해 놓고 가는데도 자꾸 잊으시곤 끓여 먹는 봉지면을 사 오신다.


속상한 마음으로 분리배출 가방을 보니 또 뒤죽박죽이다. 비닐, 플라스틱, 종이로 나눠 담으시라고 해놔도 엄만 구분 없이 일반 쓰레기통에도 막 섞어 버리셔서 몇 번이나 잔소리를 했는지 모른다.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어서는 안 되는, 다 먹은 옥수숫대나 계란껍데기 등이 들어있을 땐 아주 환장한다. 엄마 물건도 분류가 잘 안 되는 걸 보면 이젠 내가 포기해야 하나 싶다. 하룻사이 떠먹는 플레인 요거트를 8개나 다 드셨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여기며 분류했다.


밥을 데운 후 세 가지 나물을 넣어 비빔밥을 만들고 계란을 부쳐 미소된장국과 함께 상을 차렸다. 엄만 반찬이 하나도 없는데 뭘 그리 차리냐며 계속 엉뚱한 소리를 하셔서 결국, 엄마!! 하고 소리 지르고 말았다. 엄마를 끌고 와 냉장고를 열어 내가 해놓고 간, 하지만 하나도 손을 안 댄 반찬들과 밥들을 손으로 일일이 짚었다. 엄만 이상한 일도 다 있다는 듯, 점점 모를 표정을 짓고 계셨다.


머릿속이 안개로 가득 찬 엄마 앞에서 더 이상 화내거나 울지 않으려 애쓰며 밥을 넘겼다. 그새 또 잊은 엄마는 맛있게 드시며, ”네가 매일 챙겨주니 내가 요즘에 잘 먹어~“ 하시는데 좋아해야 할지 서운해해야 할지 몰라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워낙 살림을 못 하시는 편이었으니 내가 이해해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엄마를 모시고 내가 일하는 문화센터까지 1시간 여 버스를 타고 갔다. 엄마가 원장쌤한테 마크라메를 배우시는 동안 나는 수업 자료를 정리했다. 4월부터 모시고 다녔으니 6개월째에다 다음 주면 끝이 난다. 손가락을 많이 쓰는 탓에 다음날엔 손가락 관절이 아프시다 해서 쉬엄쉬엄 하시라 해도 빠져들면 못 말린다. 모처럼 취미를 붙이셨는데 나도 아쉽긴 하다. 다음 주에 마무리를 하자 하고 다시 버스로 1시간을 달려왔다. 돌아올 땐 거의 퇴근 시간이라서 서둘러 차를 타야 한다.


엄마네 가기 전, 늘 가는 칼국수 가게에 들어갔다. 면 종류를 좋아하시니 칼국수, 우동, 국수 등을 돌아가며 사드리는데도 오랜만에 먹는다는 소리를 들으면 울고 싶어진다. 증거사진을 찍어 보여드리며 확인하는 것도 엄마한텐 스트레스일까봐 찍는 것도 그만뒀다. 하지만 좋은 곳에 구경을 갈 땐 꼭! 찍는다.


오늘도 엄만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셨다. 내일은 오늘보다 엄마한테 조금 더 너그럽길 기도하며 나도 크게 손을 흔들어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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