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귀희, 2025.11.18~12.1 KT&G 상상마당 춘천 아트갤러리
그림에 선명한 칼라가 입혀졌다. 색은 면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나타난다. 끊어졌다 이어졌다 숨었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듯 선은 아주 가늘고 때로는 그 가늘음 속에서 굵기가 다르게 나타난다. 흐름은 형식을 갖추었으나 형태를 벗어난 자유로운 바람의 물결 같다. 언 듯 붓끝의 선을 따라 나타나는 글자의 흔적을 좇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선들이 중첩되고 중첩되어 하나의 면을 만들며 그 색의 형상을 드러낸다. 작품 전체를 바라보며 한 발짝 물러서면 작품의 흐름이 느껴진다. 그 속에는 꽃밭도 있고 숲도 있고 숨겨놓은 듯 머물러있는 공간도 드러난다. 선이 만들어내는 입체적인 변화의 흐름이다. 그러다가 면 일부분의 공간이 보이면 이곳은 하늘 위의 하늘이 된다. 깊이 들어가 숨 쉴 여유조차 없는 순간에 잠시 휴식을 취하듯 열려있다. 가끔은 실오라기 풀리듯 선이 이어진 공간에서 자연을 본다. 사각의 면에 공간과 흐름을 함께 보여준 작품에서는 삶의 모습을 대비하듯 바라본다.
이렇듯 그의 작품은 심상을 자극한다.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된 이미지가 관객에게로 넘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화두 하나를 들고 수많은 글을 써보며 단어를 찾아내는 고행의 시작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의 심상이 나타내고자 하는 빛과 형상은 무엇일까. 그녀가 심취했다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 속에 있는 무위자연의 그런 길일까.
그의 작품에 변화가 생겼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색과 표현 방법이 달라졌다. 그동안 그녀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색이 흑백의 명암처럼 깊은 감정을 가졌다면 오늘 그의 작품은 화려한 외출을 시도한 빛을 뿜어내는 고급스러움이 느낌이다. 화면도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깨끗한 면 처리에서 이번에는 선의 중첩을 통해 면과 색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심상의 깊이가 짙은 색에서 차츰 밝아지는 화려함으로 표현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작품이 지닌 색은 노랗고 붉고 보라와 녹색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아마도 오늘 이후 그의 작품 변화는 색의 변화 속에서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의 작품이 회색과 짙은 색을 통해 강열함과 심상의 깊이를 드러냈다면 지금은 다양한 색의 표현을 통해 더 깊은 내면의 다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고행자의 화두처럼 오랫동안 지속되며 자신만의 색을 찾게 될 것이다. 하나의 색으로 완결될지 또 다른 구성을 통해 변화를 추구할지는 오늘이 시작점일 것이다. 선을 통해 면을 만들고 입체를 드러내는 작업은 긴 시간의 배려가 필요하다. 정열 되지 않은 그 선의 흐름은 손끝에서 녹아나는 땀과 에너지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선을 통해 드러내는 색은 중첩된 모양이지만 그 속에는 색의 변화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자신의 철학적 사유가 함께 녹아내린다. 앞으로 그가 만들어내는 색에 따라 관객의 감정도 변화를 거듭할 것이다. 작가는 자기의 작가노트에서 “희지도 누렇지도 않은 까실한 무명천을 닮은 한지... 먹으로 첫 선을 그리고 빛깔의 선으로 살포시 덮고 붉은 빛깔의 선으로 또 그 위를 덮고 서로 다른 셀 수 없이 많은 선들과의 인연은 함께 섞이고 스며들어 마침내 하나의 빛깔을 만든다. 순간의 기적들이 모이고 쌓여 만들어진 우리들 지금 모습과 닮아있다.”라고 표현했다. 한지 위에 색을 입히는 작업은 시간과 싸움이자 자신의 철학에 대한 감정의 삽입 과정이다. 선 하나하나를 통해 그는 감정의 깊이를 드러낸다. 선은 일정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으나 그 결과물은 다르게 드러난다. 작업 과정에 심어지는 마음의 언어를 담기 때문이다.
처음 그의 작품을 보면서 면을 보고자 했으나 드러나는 것은 선뿐이다. 중첩의 효과를 통해 색을 만들고 형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가느다란 선은 하나의 선에 그 칠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지만 인간의 눈은 그 중첩된 선의 흐름을 모두 좇을 수 없다. 그러면서 단절된 선이 만들어낸 면을 찾아내게 되고 그 면은 자신이 바라보는 사물의 형태로 드러난다. 나는 그의 작품에서 라벤더 농장을 찾았고 초가을의 자작나무 숲을 찾았으며 노란 꽃이 가득한 꽃밭을 보았다. 그리고 사각의 음양 대비 속에서 삶의 한 부분을 찾은 듯한 느낌을 얹었다. 색의 대비는 묘하게 자극적이지 않다. 무언가 말을 거는 것이 아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던듯한 느낌이다. 현재의 삶과 대비되고 미래를 바라보는듯한 조화와 균형의 느낌이다.
작가의 작품 흐름은 시간의 변화이기도 하지만 메시지의 변화가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삶이 달라지듯 작품도 변화를 가져온다. 작품과 오랜 대화는 시간의 흐름이지만 작가와 삶의 대화이기도 하다. 그의 심상에 드리운 이야기를 함께 보면서 가는 것이다. 그의 이번 작품에서 평안을 보았다. 자신의 울타리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벗어나 더 넓은 대지의 화원으로 관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예전의 그림(self -so)이 작가의 심상 속으로 초대받은 느낌이라면 이번 작품에서는 심상 속에서 함께 화려한 공간을 거닐어 보는 느낌이 드는 것도 그 작은 변화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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