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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일 Sep 01. 2024

도미부인

검단산 산행기

오늘 일기예보에 따르면 서울지역 최고기온이 33도다. 아직은 24도, 그늘에 들면 시원함이 느껴지는 아침이다.


"후딱 갔다 와야지...."  

덥기 전에 끝내는 조급한  이미 산 꼭대기로 향하고 있.

한 시간 남짓 발길을 재촉하니, 한강과 하남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장소에 도착한다.


벼랑 끝에 놓인 평평한 바위에 자리 고 때아닌 중한(閑)즐기는 산객들이 눈에 띈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  멋지다"

특급 명당자리 독차지하고 호사 누리는 저분들이야 말로 검단산의 진정한 신선()이다.


등산객들 앉은 바위에 같이 올라타려니, 남의 집 들어가는 것처럼 어색하고 살짝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그렇다고 이 좋은 경치를 그냥 지나칠순 없지 않은가. 염치 구하고, 산객들 앞으로 나가 사진 몇 장 찍는다. 

전망바위

검단산은 한강유역에 자리 잡은 백제한성시대 하남 위례성의 진산(鎭山)이었고 하늘에 제 지내던 신성한 산으로 전해진다.  

백제라 하면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를 통치했던 국가 떠올리지만, 한강 유역에 자리 잡았던 시절이 훨씬 더 길었다.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 백제 개로왕이 죽고, 웅진으로 천도할 때까지 500년 넘게 이곳에 터를 잡았. 


그 시절 이곳에 심성 착하고 부인을 끔찍이 아끼는 도미라는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빼어난 미인이었고, 절개 있는 부인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소문은 백제 왕성(王城)까지 퍼졌고, 여색을 밝히는 개로왕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


도미 아내에흑심을 품은 개로왕은 도미를 불러 활쏘기 내기를 하자고 제안다.

"자네가 이기면 큰 상을 내릴 것이고, 내가 이긴다면 자네 부인을 왕궁으로 보내라."는 조건 달았다.


부인에 대한 믿음이 컸던 도미는 "신의 아내는 권세 앞에서도 흔들림 없고, 귀한 보물로 유혹해도 두 마음을 품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도미의 처가 소문대로 절개 굳은 여인인지 확인해 보고자, 신하를 시켜 "왕의 복장을 하고 도미인을 시험해 보라" 명했다.


왕의 모습으로 변장한 신하는 "도미와 활쏘기 내기를 해서 부인을 가지게 됐으니, 내 수청을 들라" 말했다.

그러자 도미부인은 "지아비 있는 여인이,  보기에 부끄럽습니다."라고 말하며 방의 불을 꺼 달라고 요청했다. 도미부인은 불 꺼진 방에 다른 여인을 들여보내 정절을 지켰다.


도미부인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왕은 도미의 두 눈을 뽑아버리고, 빈 배에 태워 강에 내다 버렸다.

 

개로왕 도미의 처(妻)를 궁(宮)으로 잡아와 겁탈하려 했지만, 도미부인은 "오늘은 몸이 더러워 폐하를 모실 수 없으니, 몸을 깨끗이 하고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아뢰고 이번에도 위기를 모면했다.


왕으로부터 도망친 도미부인은 남편이 떠내려간 강나루에서 통곡했다. 그때 안갯속에서 한 척의 배가 다가왔고, 도미부인은 그 배를 타고 백제를 탈출할 수 있었다.

나룻배는 '천성도'라는 섬에 이르렀고, 거기서 남편을 다시 만났다.

그 후 부부는 고구려 땅으로 건너가 고구려인들 도움 받으며 여생을 행복하게 살았다는 설화가 검단산 아래 '도미나루터'에 전해진다.


시원한 망 뒤로 하고, 능선 타고 더 걸으니, 정자쉼터 나타난다.

난간에 걸터앉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켜 보지만, 더위가시질 않는다. 출발할 때 선선했던 기운은  사라, 이글거리는 태양은 가는 곳마다 따라오는 것 같다.


정상에 이르, 널찍한 평지에 검단산 표지 박혀있고, 양쪽으로 전망데크가 놓여있다.

검단산 정상

서쪽 전망대에 올라서니, 잠실 롯데타워가 잔잔한 도시에 홀로 불뚝 솟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이다.

저 빌딩 근처 어딘가에 개로왕이 살았던 왕궁이 있었을 것인데, 그 동네에 123층짜리 고층빌딩이 세워졌, 대문 바로 앞에 '한성백제역' 지하철이 들어섰다.


그는 무덤조차 남기지 않았지만, 근래에 들어 한성백제 유물이 대량으로 발견되며 1500년 동안 베일에 싸여있역사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반대쪽 전망대로 나아가니, 서울 도심 대조되는 풍경이 까마득히 펼쳐진다. 고구려땅에서 내려오는 북한강과 백제땅에서 흘러는 남한강두물머리 앞에서 만난다.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두 줄기 강물이 충돌하니, 백성들도 이곳에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오랜 기간 고구려, 백제, 신라가 땅따먹기 싸움을 치열하게 벌였던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다.

양평 두물머리

무리한 토목공사를 벌여 민심을 잃고 어려움에 처해 있던 개로왕은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반면 국방을 튼튼히 하고 영토확장에 힘썼던 장수왕은 무려 97세까지 장수하며, 고구려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부부간에 사랑과 의리를 끝까지 지킨 도미부인은 춘향전의 근원설화가 될 정도로 성들의 사랑을 받았고, 삼국사기(記)에 이름 올린 원조 열녀() 남았다.


도미부인 떠난 나루터에 돛단배 흔적 만,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 볶고 빵 굽는 냄새 윽하 퍼진다.

가는 길에 도미나루터 들러 시원한 강바람으로 샤워하,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 하고 가야겠네....   

한강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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