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기예보에 따르면 서울 지역 최고 기온이 33도까지 오른다고 한다. 아직은 24도, 그늘에 들면 시원함이 느껴지는 아침이다.
덥기 전에 끝내려는 조급한 마음은 이미 산 꼭대기로 향하고 있다.
한 시간 남짓 발걸음을 재촉하니, 한강과 하남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벼랑 끝에 놓인 평평한 바위에 돗자리 깔고 때아닌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는 산객들이 눈에 띈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네. 참 멋지다"
특급 명당자리 독차지하고 호사 누리는 저분들이야 말로 검단산의 진정한 신선(神仙) 같다.
등산객들이 앉아 있는 바위에 함께 올라서려니, 마치 남의 집에 들어가는 듯 어색하고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그렇다고 이 좋은 경치를 그냥 지나칠순 없지 않다. 염치 불고하고 산객들 앞으로 나가 사진 몇 장 찍는다.
전망바위검단산은 한강 유역에 자리 잡은 백제한성시대 하남 위례성의 진산(鎭山)이었고 하늘에 제사 지내던 신성한 산이었다고 전해진다.
백제라 하면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를 통치했던 국가라고 떠올리지만, 사실은 한강 유역에 자리 잡았던 시절이 훨씬 더 길었다.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아 백제 개로왕이 죽고, 웅진(공주)으로 천도하기까지 500년 넘게 이곳을 근거지로 삼았다.
그 시절 이 일대에 심성 착하고 부인을 끔찍이 아끼는 '도미'라는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빼어난 미모와 절개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 이야기가 백제 왕성(王城)까지 퍼졌고, 여색을 밝히는 개로왕의 귀에도 들어갔다.
개로왕은 도미 아내에게 흑심을 품고, 도미를 불러 활쏘기 내기를 제안했다.
"자네가 이기면 큰 상을 내릴 것이고, 내가 이긴다면 자네 부인을 왕궁으로 보내라."
아내에 대한 믿음이 컸던 도미는 "신의 아내는 권세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고, 보물로 유혹해도 두 마음을 품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은 도미의 처가 소문대로 절개 굳은 여인인지 확인하고자, 신하를 시켜 자신의 복장으로 변장하게 한 뒤 도미부인을 시험해 보게 했다.
왕의 모습으로 변장한 신하는 "도미와 활쏘기 내기를 했는데, 그 대가로 내가 그대를 가지게 됐다. 내 수청을 들라"라고 말했다.
그러자 도미부인은 "지아비 있는 여인이기에, 하늘 보기에 부끄럽습니다."라며 방의 불을 꺼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는 불 꺼진 방에 다른 여인을 들여보내 정절을 지켜냈다.
왕은 도미부인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격분해, 도미의 두 눈을 뽑고 빈 배에 태워 강에 떠내려 보냈다.
도미 부인도 궁(宮)으로 잡아왔으나, 그녀는 "오늘은 몸이 더러워 폐하를 모실 수 없으니, 몸을 깨끗이 하고 내일 다시 오겠다."며 또 한 번 위기를 모면했다.
왕으로부터 도망친 도미부인은 남편이 떠내려간 강나루에서 통곡했다. 그때 안갯속에서 한 척의 배가 다가왔고, 도미부인은 그 배를 타고 백제를 탈출하게 된다.
나룻배는 '천성도'라는 섬에 이르렀고, 거기서 남편을 다시 만났다.
이후 부부는 고구려로 건너가 도움을 받으며 여생을 행복하게 살았다는 설화가 검단산 아래 '도미나루터'에 전해져 내려온다.
시원한 조망 뒤로 하고, 능선 타고 더 걸으니 정자 쉼터가 나타난다.
난간에 걸터앉아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켜 봐도 더위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출발할 때 선선했던 기운은 다 사라졌고, 이글거리는 태양이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붙는 것 같다.
정상에 이르니, 널찍한 평지에 '검단산' 표지석 박혀있고, 양 옆으로 전망데크가 놓여있다.
검단산 정상서쪽 전망대에 올라서니, 잠실 롯데타워가 잔잔한 도시에 홀로 불뚝 솟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이다.
저 빌딩 근처 어딘가에 개로왕이 살았던 왕궁이 있었을 텐데, 그 자리에 123층짜리 고층빌딩이 세워졌고, 대문 바로 앞에는 '한성백제역' 지하철이 들어섰다.
개로왕은 무덤조차 남기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한성백제 관련 유물이 대량으로 발견되며 1,500년 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역사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반대쪽 전망대로 가 보니, 서울 도심과 대조되는 시골 풍경이 까마득하게 펼쳐진다. 고구려땅에서 흘러 내려오는 북한강과 백제땅에서 흘러드는 남한강이 두물머리 앞에서 만난다.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두 줄기 강물이 충돌하니, 과거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치열하게 땅따먹기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는 형국이 떠오른다.
양평 두물머리무리한 토목공사를 벌여 민심을 잃은 개로왕은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국방을 튼튼히 하고 영토확장에 힘썼던 장수왕은 무려 97세까지 장수하며 고구려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부부간에 사랑과 의리를 끝까지 지킨 도미부인은 훗날 춘향전의 근원설화가 될 정도로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고,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이름 올린 원조 열녀(烈女)로 전해진다.
도미부인 떠난 나루터에는 지금 돛단배 흔적은 없지만,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 볶고 빵 굽는 냄새가 그윽하게 풍긴다.
가는 길에 도미나루터에 들러 시원한 강바람으로 샤워하고,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강 조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