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아니고
얼마 전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얘기를 하는데 그 친구가 갑자기 한 달 전쯤부터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다고 밝혔다. 우리 둘 다 직업이 없는 상태였기에, 이 나이에 직업 없는 사람 만나주는 사람도 있냐며(농담 반 진담 반) 놀람과 동시에 어디서 만났고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지 물었다.
친구는 내 질문에 답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이전과 달라. 진짜 사랑인 것 같아.'
진짜 사랑이라고? 나는 다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고, 친구는 이번에 만나는 여자친구는 앞전에 만났었던 여자친구들 하고는 사귀게 되는 과정이 달랐다고 말했다. 보통은 외모에 이끌려서 좋아하게 되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알아가며 사귀게 된 반면에, 이번에 만난 여자친구는 외적으로는 본인의 이상형이 아니어서(그 여자친구분도 내 친구가 외적으로 이상형이 아니라고 한다.) 관심이 없었는데, 대화를 해보니 서로 너무 잘 맞고 둘이 하는 대화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5시간이고 6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점점 친해지다 사귀게 되었고 말이다.
나는 '그렇구만'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그 뒤에 친구와 다른 이야기들을 더 하다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카페에 가서 각자 사는 얘기와 앞으로 어떻게 할지 등등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다시 주제로 사랑이 올라왔는데 그때 내가 이런 말을 하였다.
'사랑이란 게 존재하는 것이 맞나?'라고 말이다.
사랑이라는 게 뭘까? 만약 내가 A라는 사람을 사랑한다면 일단 기본적으로 전 세계 81억 명(방금 검색해 봤다.) 중 A만을 유일하게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내가 A를 사랑한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를 A가 내 이상형이서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의문이 하나 생긴다. 내 이상형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정말 A 하나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내가 A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뭘까? 내 이상형에 교집합에 속해있는 사람들 중 내가 만난 사람이 A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교집합에 속에 있는 사람들 중 A가 아닌 B를 만났어도, C를 만났어도 나는 그 B와 C를 좋아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랑이란 게 뭘까? 정말 그 사람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맞는 걸까? 물론 내가 위에서 한 말이 다 틀렸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가? 일생동안 한 명의 사람(그 이하일 수도 있지만)을 만나서 살 수도 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사귀고 헤어지고를 반복한다. 헤어진 사람과 했던 것은 가짜 사랑이었을까? 우리는 그저 지금 만난 사람이 진짜 사랑이라고 믿을 뿐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 나이가 들고,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만나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고 말이다.
이렇게 돌이켜보니 사귄 지 한 달 된 사람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 내가 쇼펜하우어 관련 책을 읽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부러워서 그런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