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의 초등학교 앞에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주변에 카페가 그 한 군데만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늘 그 카페를 애용한다. 그곳에서 혼자 책을 읽고, 어쩔 때엔 노트북을 챙겨가 글을 쓰고 온다. 커피가 맛있는 것도, 열 잔 마시면 한 잔 공짜 같은 쿠폰도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다른 카페를 늘 지나쳐서 그곳으로 향했다. 자주 가는 책방들도 그렇다. 나는 점점 새로운 곳보다 친숙한 곳을 좋아하게 됐다.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곳들은 많다. 하지만 내가 안정을 느끼는 곳들은 그런 곳들이 아니었다. 키오스크를 통한 주문이 당연시되고, 로봇이 서빙을 보는 곳들보단 계산실수를 하더라도 사람과 사람 간에 정이 느껴지는 곳들이 좋은 것이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신메뉴인데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
자주 가는 곳들은 이제 내가 좋아하는 음료와 음식이 무엇인지, 어떤 책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더 나아가서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 뭔지를 알고 있다. 로봇이 하지 못하는 나의 표정을 늘 살피고 분위기를 맞추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관찰하고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나도 늘 감사한 마음으로 같은 곳을 향하는지도.
2
최근에 전업주부의 애환을 담은 글, 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집안일만 하며 살고 싶지는 않은 마음을 글로 써서 <낫워킹맘>이란 책을 세상 밖으로 내보였다. 엄마를 두 부류로 단정 짓던 워킹맘과 전업주부 사이에도 무수히 많은 엄마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도전의 책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일을 실현하게끔 용기를 심어줄 수 있는 책이었다. 책홍보와 더불어 북토크를 다니면서 여러 독자들을 만났고,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시간을 쓰는 것을 눈치 보여하는 엄마들에게, “괜찮아요. 당신도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해주었다. 나도 당신들과 똑같았던 고민과 시간을 지나왔다고, 하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들었던 괜찮다는 말 한마디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입 밖으로 내뱉은 몇 단어로도 누군가의 인생에 지금보다 밝은 빛을 밝힌다는 건 생각보다 더 감격스러운 일이다. 진심은 늘 따뜻하게 마음을 달군다.
3
“나는 네가 내가 없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그걸 네가 얘기해 줄 수 있는 날이 언젠간 오겠지? 말하고 싶을 때 말해줘.”
“뭐라고?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네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글을 쓸 생각을 하게 됐을까 생각해 봤어.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
가끔은 마음속 진심을 들켜버렸을 때, 나는 얼굴이 붉어진다. 그런데 오히려 들켜버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먼저 말하기는 어려운데, 상대가 먼저 알아채주면 그냥 조용히 기댈 수 있으니까.
4
“수고했어.”
운동하는 아이의 중요한 대회가 있던 날, 아이의 땀에 젖은 등을 손바닥으로 어루만지며 내가 해준 말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질까 봐 덜덜 떠는 아이를 대신해 경기를 뛰어줄 수도, 결과에 원통해하는 아이가 흘리는 눈물을 대신 흘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언제나 각자가 책임져야 하는 그릇이 있다.
어릴 적 부모님은 내게 인생의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뭐든 내가 생각하고 선택하여 결과를 얻어냈다. 그럴 때마다 잘하던 못하던 부모님은 수고했다고 말해줬다. 예전에는 그 말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공들이고 애를 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따듯한 그 말을 나는 이제 내 아이에게 하고 있다. 그리고 뭔가를 더 채우지 않아도 아이의 그릇은 커질 것이다.
5
상대가 나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순 없지만, 나조차도 모르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가령, 나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야! 너는 상황에 맞게 되받아치는 경향이 있어. 말을 아낄 뿐이지 넌 말을 잘하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고 나면 어깨에 자신감이 장착되어 드디어 내게 숨겨져 있던 아이템을 잘 쓰는 사람이 된다. 그런 나의 의아한 구석이 찾아질 때면, 숨겨져 있던 보석을 움켜쥐고 마음속으로 되뇌어 본다.
‘그렇지. 나는 ~한 사람이지. 나는 ~한 것도 할 수 있지.’
6
이렇듯 우리는 말 한마디로도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안다. 그 말인즉슨, 무심코 건넨 뾰족한 말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말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를 향한 배려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세상에는 내 인생을 바꾸는 따듯한 말들이 언제나 떠다닌다. ‘따듯하다.’는 말의 뜻은 ‘따뜻하다’와 같다. 덥지 않을 정도로 온도가 알맞게 높을 때, 감정과 태도, 분위기 따위가 정답고 포근할 때 우리는 ‘따뜻하다’ 혹은 ‘따듯하다’를 쓴다. 그럼에도 내가 두 단어 중 ‘따듯하다’를 쓰는 이유는 어감이 좀 더 여린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말랑거려서 그 마음에는 ‘따뜻’보다 ‘따듯’이 어울리고 내가 상대에게 주고 싶은 말들도 그렇다.
말은 공짜로 상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오늘은 내 주변의 누구에게라도 따듯한 말선물을 해보자. 건조한 흑백의 글자들이 따듯하게 데워지는 것은 무엇보다 진심과 눈 맞춤이라는 것을 명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