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서로가 최선의 선택지였음을 바라는 집사의 바람을 가득 담아서,
One who wears the crown, bears the crown.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인용된 유명한 구절이라고 한다. 현대에 와서는 여느 드라마의 제목에서도 차용되었을 만큼 범용적으로 쓰이는 명언이기도 한 이 말이 우리 가족에게 적용되는 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우리는, 스스로 짊어지기로 한 오둥이라는 왕관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결심이 선 과거의 순간부터 지금까지 부단히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붓고 있었다.
삼둥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그래도 조금은 보장되었던 우리 가족의 저녁 외식이나 가벼운 외출도, 삼둥이가 태어난 순간부터는 어느 순간 사치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잠시라도 집을 비우면 신나게 집안의 온 곳을 물어놓고, 심지어는 소변패드를 갈가리 찢어놓기까지 하는 사고뭉치 천방지축 삼둥이들의 사고 스케일이 몸집이 커지고 힘이 세지기 시작하면서 날로 규모가 커진 탓이었다.
송곳니가 자라나기 시작한 순간부터 잇몸을 뚫고 올라오는 이빨이 가려운지 집안의 모든 가구 귀퉁이를 앙앙 물어대는 삼둥이 때문에 순간의 실수로 바닥에 내려놓는 물건들은 모조리 이빨자국행?! 을 면치 못했다. 심지어는 개강을 맞아 새로 산 노트북을 충전하기 위해 바닥에 내려둔 고새를 못 참고 삼둥이들이 노트북의 양 끝을 왕왕 물어 이빨자국을 남겨놓을 정도였으니, 울상이 된 얼굴로 노트북 귀퉁이를 만지작 거리는 나를 보며 엄마도 한숨을 내쉴 뿐 특별한 대책이 있지는 않았다. 뭐, 타이밍을 놓친 사고에 대해서 혼을 내는 게 큰 의미는 없다는 걸 토니와 지바의 육아를 통해 톡톡히 깨달은 탓이었다.
그저 참고 견디는 인내의 시간만이 늘어가던 3개월의 무렵, 삼둥이들은 벌써 세 번째 예방접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산책이 가능해지는 순간이 되었다. 그동안 사고 치며 망가뜨린 물건은 손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늘어만 갔고, 생각보다 벅찬 왕관의 무게에 너덜너덜해지는 정신을 다집은 우리는 삼둥이의 첫 산책을 위한 하네스 주문을 마치곤 바닥에 늘어졌고, 태연자작하게 바닥 여기저기 널브러진 인형들을 왕왕 물어대던 삼둥이는 새로운 장난거리라도 찾았다는 듯이 발가락을 왕왕 물어댔다. 제법 날카로운 이빨이 아프게 발가락을 물어대는 느낌에 악-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킨 나는 태연하게 발가락에 매달려있는 이안을 한 손으로 안아 들곤 짐짓 엄한 목소리로 혼을 내는 시늉을 했다.
"이놈쉬끼! 고모 발을 물면 되겠어, 안 되겠어! 안 되겠지?! 잘못했지?!"
"멍! 멍! 멍!(내! 가! 뭐!)"
마치 그렇게 반박이라도 하는 것처럼 칼박으로 짖어대는 이안에 어처구니가 없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입술을 앙다물고 참아낸 나는 이내 에휴- 하는 한숨과 함께 이안을 제자리에 내려놓곤 장난감을 휘적거려 주었다. 신나게 흔들리는 장난감에 몸을 폴짝이며 따라다니던 이안은 장난감이 던져진 방향으로 쏜살같이 뛰어갔고, 그 광경이 재밌어 보였던 토니가 뽀르르 이안의 뒤를 따라갔다가 제 장난감이 아님을 확인하곤 쌩- 하니 뒤를 돌아 제 장난감을 물곤 내게 돌아와 자신도 던져달라는 것처럼 툭 바닥에 내려놓을 뿐이었다.
그렇게 쉴 새 없이 토니와 이안의 장난감을 던져주다 보면, 결국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는 건 언제나 사람이었다. 체력도 우리보다 한참은 우위에 있는 모양이었다. 요 작은 녀석들이 어디서 이런 체력이 솟아나는지 매번 사람을 이겨먹으며 승리를 거머쥐었고, 우리 가족은 매일매일 오둥이에게 완패하며 지독한 왕관의 무게를 견뎌나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사고뭉치 엉망진창을 만들던 삼둥이의 만행은 5차 예방접종이 끝나고 산책을 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뚝 멎어버렸다. 정말이지 칼로 무를 싹둑 잘라낸 것처럼 30분만 집을 비워도 난장판을 만들던 삼둥이가 한 시간, 두 시간 집을 비우는 시간이 늘어나도 배변 실수를 하지도, 소변패드를 찢어놓지도, 전선이나 가구를 물어놓지도 않았다. 산책을 시작하면서 에너지를 발산하는 새로운 출구가 생긴 것이 정답인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긴 인고의 시간을 거친 우리에게 선물이라도 선사하는 것처럼 삼둥이는 신기하게도 알려주지 않은 배변도 척척 가려내기 시작했다.
애들 천재 아니야, 사실? 산책 안 시켜줘서 행패 부렸던 건가?
진짜 웃기는 놈들일세.
정말 양심에 손을 얹고 다시 한번 말할 수 있지만, 삼둥이 사고 수습에도 벅찼던 우리는 배변훈련은 애초에 포기한 상태였다. 그저 수습이 가능한 장소에 볼일을 봐주렴- 정도만 바라던 우리가 안쓰러웠던 건지, 삼둥이는 기가 막히게 베란다와 화장실 앞 총 두 곳에 깔려있는 배변패드에 기가 막히게 대소변을 가리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추측을 해보는 부분이었지만, 지바와 토니가 매번 같은 장소에서 볼일을 보는 것을 보고 따라 배운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본다. 사람도 자기보다 큰 어른의 행동을 보고 옳고 그름의 행동을 배우곤 하니, 아마 요 작은 삼둥이들도 제 엄마 아빠의 행동을 보고 배운 모양이었다.
제법 기특한 행동을 하는 삼둥이에 또 바보처럼 실실 거리는 웃음과 내 새끼 천잰가 봐- 하는 설레발이 들썩이며 입꼬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정말이지 지금도 여전히 설레발 만렙인 집사이지만, 알려주지 않았던 것들을 하나둘씩 척척 해나가는 삼둥이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천재 모먼트처럼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왕관의 무게는 여전히 무겁고 벅차지만, 몇 배로 큰 보상들이 우리 가족의 머릿속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켜켜이 쌓여갔다.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보상은 하루하루 소중하게 빛나는 추억으로 우리 가족의 머릿속에, 사진첩의 한편에, 그리고 브런치의 한 귀퉁이에 소중한 글귀들로 기록되는 중이니 말이다.
소중한 추억이 부디 거쳐온 시간보다 더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의 보상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그렇게 어언 12년 차 집사로 성장한 오늘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