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 장만하다!
조율사 선생님한테 들은 야마하 사일런트 피아노 얘기가 계속 마음 속에 남았다. 처음부터 사이런트 시스템 내장되어 나온 야마하 피아노를 살 걸 잘못했다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돈 들여 사일런트 시스템 달고 나서 얼마 됐다고, 피아노를 바꿀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렇게 2년 정도를 보냈다. 팬데믹 기간이라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지만, 특별히 피아노 치는 시간이 늘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다 우리 집이 이사를 하게 되었다. 전셋집을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내 집을 수리해서 들어가는 것이라, 이사를 앞두고 오래된 짐들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김에 피아노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있던 낡은 소파를 처분하고 새로운 소파를 사려고 했었는데, 소파를 사는 대신 피아노를 바꾸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냥 야마하 업라이트 사일런트 피아노를 살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거실에 소파도 없애는데 피아노가 좀 크면 어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랜드 피아노, 그래 좋다!
하지만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 신품은 너무 비싸서 패스. 성인 전문 피아노 학원을 취재하러 갔다가 20년 정도 된 야마하 그랜드 사일런트 피아노를 쳐볼 기회가 있었다. 소리도 터치도 괜찮았다. 학원 원장은 중고도 잘 고르면 꽤 괜찮다고 알려줬다. 이후로 여러 중고 매장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사일런트를 원래 달고 나온 그랜드 피아노는 중고가 별로 없었다. 있다 해도 컬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든지, 아니면 너무 낡았다든지, 딱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그러다가 같이 아마추어 음악 동호회 활동 하는 후배한테 야마하 중고 피아노를 많이 취급한다는 악기상 소개를 받았다. 이 후배는 집에 야마하 그랜드 C3 모델을 사놓고 연습한다 했다. 그 집은 아파트가 아니고 빌라 복층이라 가능하다 했는데, 나한테도 야마하 C3는 중고로도 좋은 물건이 종종 나온다면서 권했다. 오! 야마하 C3? 좋다 좋아! 그렇지만 나는 아파트에 살아서 밤에는 연습을 못하는데? 그랬더니 밤에 가끔 연습할 용도로 디지털 피아노 작은 걸 하나 사서 방에 두라고 했다. 잠깐 솔깃했다가, 금세 정신을 차렸다. 디지털 피아노 안 써 본 것도 아니다. 뭐하러 좁은 집에 피아노를 두 대나 사서 들여놓는단 말인가.
몇 달 동안 그렇게 고민하고 있다가, 예전에 우리 집을 다녀간 조율사 선생님도 피아노 매매를 주선해 준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서 연락했다. 집에 있는 피아노를 처분하고 사일런트 시스템이 내장된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를 중고로 사려 하는데, 혹시 구할 수 있겠느냐고. 그랬더니 중고는 잘 나오지 않는다며, 차라리 신품을 사라고 했다. 보급형으로 나온 야마하 사일런트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가 있다는 것이다.
베이비 그랜드!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곧 영국 연수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에 젖어들었다. 딸의 피아노 레슨 선생님이었던 일본인 친구 집에 아담한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베이비 그랜드'라는 피아노 사이즈가 있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그랜드' 피아노인데 '베이비'라니, 어쩌면 형용모순인데 너무 귀엽지 않은가. 딸이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레슨 받는 동안, 거실에서 이 친구의 '베이비(아들)'를 봐주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래, 우리 집에도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 놓아보자!
조율사 선생님은 나의 '허영끼'를 일찌감치 간파한 모양으로, 아무리 '베이비'라도 그랜드 피아노가 업라이트보다는 훨씬 소리가 낫다며 신품을 사라고 권유했다. 요즘은 사일런트 기술도 더 좋아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일런트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의 인기가 높아져서, 주문한다고 당장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이사 날짜에 맞추려면 빨리 주문하는 게 좋다고.
결국 홀린 듯이 야마하 사일런트 베이비 그랜드피아노를 주문하고, 내가 갖고 있던 사일런트 시스템 장착한 야마하 업라이트는 그 조율사 선생님한테 이사 전날 중고로 팔았다. 그리고 이사한 집 거실에 드디어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가 들어왔다! 그게 2022년 여름이었다. 이로써 나의 피아노 방랑기는 끝인가?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