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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Jan 27. 2023

마당쇠가 필요해


또 눈이 왔다. 아침부터 내리던 눈이 저녁 무렵 그치길래 마당에 쌓인 눈을 쓸었다. 문경이 이렇게나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었나? 아니라고 들었는데 이사 온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6번째 눈이다. 나는 눈이 귀한 대구에서 자라서인지 눈은 언제나 반갑다. 아니다 반가워했었다. 눈을 쓸지 않아도 되었던 그때는 눈이 오면 좋아서 강아지처럼 뛰어다니거나 창밖의 눈에 감탄하며 차를 마셨다. 지금은 눈이 오면 얼어붙을까, 길이 미끄러워 넘어질까 눈 쓸 걱정이 앞선다. 아파트에 살 때는 내가 눈을 쓸지 않아도 되었고 혹여 내가 하고 싶어도 이미 끝난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우리 가족이 해야 한다. 집 앞 길도 쓸어야 하고 우리 가족들이 드나드는 마당은 무조건 쓸어야 한다.


마당이 있으니 좋다. 아직은 겨울이라 황토색뿐이지만 흙과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편안하다. 이유는 모르겠다. 푸릇푸릇 잔디가 올라오고 꽃이 피는 봄은 얼마나 예쁠까 싶어 벌써 가슴이 두근거리다. 날이 따뜻해지만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어도 된다. 바람을 맞으며 마당에 앉아 책을 읽으면 안구건조는 생기지 않고 책도 술술 읽힐 것 같다. 추석은 가든파티처럼 차례를 지내는 것은 어떨까 상상해 본다.


그런데 마당 때문에 할 일이 많다. 잔디를 심고 나서 정리를 했었다. 팍팍 밟아야 잔디가 잘 살아난다고 해서 하릴없이 왔다 갔다 하며 잔디를 밟고 또 밟았다. 돌도 골라내고 떨어진 건축 폐기물도 주워내고  깨끗하게 정리했는데 돌멩이들이 또 보인다. 한두 개가 아니다. 며칠 전 바람이 강하게 불 때 날아온 건가? 분명히 깨끗하게 골라냈는데 돌멩이들이 왜 또 있는 건가? 그뿐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누군가 누고 간 똥무더기를 보았다. 누구 똥일까? 밤새 어느 동물이 우리 집 마당을 화장실로 사용했다니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 어이없었다. 똥을 치웠다.


현관 앞 데크도 수시로 빗자루질을 해야 한다. 금세 뿌옇게 먼지가 쌓인다. 흙을 밟고 다니니 현관도 자주 청소해야 한다. 오늘도 눈을 쓸고 나서 야무지게 털고 들어왔지만 신발에서 녹아내린 눈과 묻어있던 흙이 떨어져 현관이 지저분하다.  여름철 뒤돌아서면 어느새 자라난 풀을 뽑아보지 않았으면 마당일에 대해서 입도 벙긋하지 말라던데, 나는 벌써 조금 지친다. 눈을 쓸어서 그런가.


그저께는 바람이 강하게 불어 데크에 놓여있는 매트가 날아갔다. 마당에서 데크로 올라오기 전 신발에 묻은 흙을 털기 위해 사용하는 매트다. 날아가다 잔디 위에 떨어진 매트를 주워왔다. 멀리 날아가지 않아서 다행이다. 별일이 다 있다.


마당뿐만 아니라 집 밖을 살피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20년 넘게 아파트에 살아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내부만 우리 집이라고 여긴다. 현관문 밖의 공간을 내가 청소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직 낯설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보며 이상이 생긴 곳은 없는지 살펴야 하는데 남편도 나도 깜빡한다. 빗물받이에 이상이 생긴 것을 이웃이 발견하고 말해줄 정도이다. 밤에는 외등을 켜두라는데 우리는 모두 집안에 있는데 왜 집 밖에다 전깃불을 밝혀야 하는지 처음에는 이해를 못 했다. 어느 날 밤늦게 집으로 들어오다가 암흙에 갇힌 우리 집을 보고 깨달았다. 가로등도 없는 시골길을 밤늦게 다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자주 깜박깜박한다.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대감마님집에는 마당쇠가 꼭 있었다. 마당쇠는 등장할 때마다 마당을 쓸고 있었는데 어릴 때 갸우뚱했다. 커서는 하인중의 한 명이려니 했다. 이제 알았다. 마당쇠는 마당만 쓸고 있는 게 아니다. 마당이 있으면 할 일이 엄청 많아 마당쇠가 필요하다. 남편과 내가 우리 집의 마당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브라보문경라이프??  일곱 번째 #문경일기 #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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