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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대화

3. 그 사랑은 진짜였을까요?

by 무 한소

그 어떤 날 보다 자유로운데 그녀는 자유를 누릴 수 없었다.


넘치는 자유로움이 수애를 묶어두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지 아니면 그녀가 자유를 착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수애는 자유로움을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시집 하나를 천천히 집어 들었다.


이성이 자유로웠던 어느 날, 그녀 눈에 띈 건 제 멋대로 바람이 부는 방향에 맞춰 또 그 빠르기에 의지해서 낙엽이 굴러가고 있었다. 낙엽 하나에 그녀의 이성은 자유로움을 바탕으로 철학의 향연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또한 그곳에서 감성과 이성이 맘껏 이동하는 자신을 살피며 극대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이성이 자유롭다고 느끼던 어느 날, 봄이 지나치게 앞서 왔는지 겨울이 미련을 버리지 못해 아직 떠나지 않았는지 아니면, 타이밍을 놓쳐서 미처 떠나지 못했는지 오묘한 계절로 접어들어 떨어지는 벚꽃 잎이 함박눈이 되어 내렸다. 자동차를 운전하며 달려갈 때는 그 모습이 아니었다. 벚꽃 잎이 원주율의 모습으로 떨어질 때의 아름다움과 시작점은 불분명했지만 하늘에서부터 떨어지는 함박눈은 제각각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하지만, 갇혀있는 프레임에서는 프레임 밖의 세상을 보고 있는 건지 또 다른 프레임 안에 갇힌 세상을 보고 있는 건지 그것이 일체가 되어 보였다.


수애는 눈을 비벼가며 확인하고 또다시 확인했다. 당당하게 봄의 왈츠를 노래하고 춤을 추고 있는 벚꽃 잎을 함박눈으로 착각했는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른 세상의 계절에 침범해서 평온한 듯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양심은 없지만 순결하고 포근한 함박눈을 멀리서 보고 착각을 한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녀는 눈을 다시 비벼댔지만 오히려 그 착각이 점점 더 깊어질 뿐이었다.


풍경을 이루고 있는 그 놀라운 일은 오랫동안 수애의 시선에 머물렀다. 이제 곧 그것이 무엇인지 증명되리라. 그녀의 착각이 그려낸 그것은 겨울 숲 속 차가운 눈 속에 숨어있는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싶은 맘에 스스로 그린 봄 안에 들어와 있는 겨울 풍경은 아니었을까? 바닥으로 떨어지던 함박눈은 녹지 않고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며 그녀를 향해 미소 짓는다. 그리고 한쪽 눈을 찡긋하며 혀를 내민다. 그 순간 수애는 스스로 벅찰 만큼 가슴 가득 느낀 자유가 온전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종종 이상과 현실 속에서 방황하기도 하고 구분하지 못하며 헤매기도 한다. 수애가 머물러 있는 5월의 벚꽃길이 이상에 머물러 있는지 현실인지 종잡을 수는 없다. 하늘을 향해 손을 펼쳐 보이며 손바닥에 떨어지는 벚꽃 잎을 보고 현실이라는 믿음이 생기기도 하나, 만개한 벚꽃 잎이 손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그 세계가 완전히 사라질까 봐 그녀는 제대로 눈을 깜박일 수가 없었다.


수애의 두려움이 실현되며 현실은 사라져 버렸다. 한 번 눈을 깜박거리고 찰나의 시간을 지나 눈을 뜨니 그녀는 12월 중순에 들어와 있다. 함박눈이 쏟아지는 깊은 12월이다. 그리고 함박눈은 그녀를 다시 과거 깊은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새로움이 수애를 긴장되게 하는 걸 보니 무엇인가 시작하는 시기로 보인다. 맞다. 그녀의 결혼. 그때 수애는 12월의 신부였다. 여린 몸이었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만큼 자신감도 열정도 많았던 그때를 돌아보니, 사실 더 깊이 들어가는 게 두려워진다. 하지만 그 속에 잠시 머물렀다. 그해 12월은 그녀의 결혼식까지 아니 신혼여행을 다녀올 때까지만, 기온과 날씨가 좋았던 걸로 그녀는 기억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전후로 정말 많은 눈이 왔었다. 크리스마스에는 남편의 친구들이 두 사람의 보금자리를 처음으로 찾는 날이었다. 집들이 겸 간단한 피티를 열었다. 그때 꼭 해야 할 것들, 집중할 것들, 누리고 싶었던 감성들, 또 이성보다 늘 앞서있는 즉흥적 감정들... 그런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집중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삶을 살아가는 건지 살아야만 했던 건지도 잘 몰랐다.


수애는 감정과 이성 그리고 삶에서 일을 처리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순차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법이 없었다.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빠르게 문을 두드리는 것부터 처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행하면서도 마음은 늘 무겁고 답답했다.


집들이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있었는데 그 시간도 함박눈이 쏟아졌다. 온 세상이 하얗게 된 이후에도 내리던 눈은 멈출 줄 몰랐다. 그들은 집들이에서 어떤 음식을 준비했으며 누구누구가 왔었는지 분위기가 어땠는지 대부분 기억이 이제는 희미해졌다. 하지만, 그때의 함박눈은 좀 달랐다. 함박눈이 쏟아지면 수애는 자유로움을 그 이상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뛰고 다시 뛰어올랐다. 이곳저곳 강아지들과 밸런스를 이루고 함박눈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최소 15~20cm 이상을 뛰어오르며 자유로움을 가능한 크게 표출했다. 그녀는 그때 자유로움을 온몸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수애는 그게 자유로움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도 소녀는 프레임 밖 세상에서 자유로움을 찾고 그것으로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 또한, 오늘처럼 자유로움이 두려움으로 불현듯 수애를 찾아오면 미리부터 긴장하고 부담감을 느꼈다. 그러던 중 떨어지는 낙엽이 때 마침 만난 바람에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것에 따라 방향과 속도가 결정되고 여러 바퀴를 구르는 낙엽의 모습에서 자신을 찾게 되었다. 자유의지로 움직임과 자유를 표현하고 있었던 낙엽의 본성은 자신의 의지가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녀는 낙엽의 갇힌 자유에서 자신이 생각해 온 자유를 엿보았다. 그녀 자신이 갈망하던 자유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고 결과적으로 그것을 찾아 프레임 밖으로 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어떤 날보다 너무나 지나치게 자유로운 오늘, 수애는 자유를 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유로움 대신 집어 든 시집을 읽고 감성과 마음을 그려내고 있다. 시집에 쓰여 있는 시의 꽃말들이 그녀에게 말을 걸어준다. 꽃말들이 건넨 사랑과 행복에서 수애가 찾고 있는 자유의 그림자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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